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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돈가방 주웠더니…쌓이는 건 시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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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돈가방 주웠더니…쌓이는 건 시체뿐!"

[김용언의 '잠 도둑']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

"뭘 하든지 점점 더 나빠진다."

스콧 스미스의 데뷔작 <심플 플랜>(조동섭 옮김, 비채 펴냄)을 읽는 내내 저 문장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코엔 형제의 영화들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어떤 영화들은 대단히 불편하고 힘겹게 감상했었다(<분노의 저격자>, <밀러스 크로싱>, <파고>, <번 애프터 리딩>). <심플 플랜>의 느낌이 바로 그랬다(코엔 형제의 <파고>가 <심플 플랜>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1987년 12월 31일, 미국 오하이오 주 작은 시골 마을 아셴빌.

사료상에서 회계부장으로 일하는 행크와 무능력한 형 제이콥, 제이콥의 친구 루는 트럭을 타고 가던 중 자연보호림 안에서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한다. 가장 체구가 작은 행크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고, 주변의 나무들을 점령하고 있던 까마귀들이 으스스하게 그들을 공격한다. 까마귀 한 마리가 행크의 이마 한 가운데를 공격한다.

행크는 죽은 조종사를 발견하고, 조종사 뒤쪽에 놓여있던 더플백에선 440만 달러의 돈이 나온다. 지금까지의 지리멸렬한 삶을 바꿔버릴 수 있는 거액의 돈 앞에서 이들은 잠깐 망설이다가 3등분하여 나눠 갖기로 한다. 단, 눈이 녹고 비행기가 발견되고 시체의 신원이 밝혀진 다음 추적당할 우려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그들은 그렇게 딱 6개월을 기다린 다음 돈을 나누고 이 동네를 떠나기로 한다.

▲ <심플 플랜>(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비채 펴냄). ⓒ비채
행크의 임신한 아내 사라는 "이 돈 때문에 우리가 곤경에 처하지 않을까"라는 위험성 때문에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실용적 판단에 의거해) 망설이다가 행크의 설득에 마음을 바꾼다. 행크 부부는 지금까지 큰 걱정거리 없는 '탄탄한 중산층'이라고 자부했지만, 이 돈을 앞에 두고 비로소 자신들의 삶과 못다 이룬 꿈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를 절감한다. 느닷없는 잉여를 통해 비로소 결여와 부재를 확인한 셈이다.

"어릴 때 꿈꿨던 것보다 못한 처지에 안주했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나 깨달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아내와 내 삶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내 발밑에 놓인 돈 더미는 가능성에 불을 밝혔다. 우리 포부가 얼마나 시시한지, 우리 꿈이 얼마나 어두운지 강조하고 있었다."

행크는 강조한다.

"우리 범죄는 너무 사소해 보였고, 우리 행운은 너무 커 보였다."

모든 것이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제이콥이 우발적으로 동네 노인을 죽임으로써(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였다고 생각함으로써) 계획의 첫 단추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행크는 당황한 형에게 끊임없이 "괜찮아. 다 해결할 수 있어. 나만 믿어"라고 뇌까린다.

이렇게 시작된 균열은 점점 커지고 시체는 걷잡을 수 없이 쌓여간다. 행크는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이 범죄와 자신을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안을 껴안은 채 살아갈 수 있다"라고 자신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행크는 끊임없이 제이콥과 루의 방정맞은 입, 한계를 모르는 탐욕에 분노하고 비난을 퍼부으며 그들 때문에 자신이 이런 함정에 빠졌다고 다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번 크게 펄쩍 뛰어서 그런 간극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작은 발걸음들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정말이지 전혀 못 알아차렸다. 우리는 서서히 여기까지 왔다. 크게 변한 것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행크는 모든 결정적 순간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해야만 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계속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편리한 변명 앞에서 그는 '악의 평범성'을 온몸으로 체현한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김선욱 옮김, 한길사 펴냄)에선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가 딱 한번 나온다. 이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상상력은 굉장히 거대한 범죄, 이를테면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 같은 '악마'의 짓거리에나 어울릴 법한 이름처럼 여겨진다.

심지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김재혁 옮김, 세계사 펴냄)도 '평범한 여성'인 주인공이 '나치에 부역'했다는 조건 때문에 결국 거대한 죄악의 공모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제시하며 '죄의 무지'를 어디까지 용서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그러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의 조건은 사실 대단히 보편적이다. 그녀는 악의 평범성을 '상상력의 결여'이자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라고 표현한다.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그렇다면 <심플 플랜>에서 사라가 남편 행크를 위로하는 이런 문장은 어떨까.

"우리가 한 일이 끔찍하긴 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악한 건 아냐. 우리가 올바르지 않았던 것도 아냐. 우리는 살아야 했어. 자기가 한 일, 자기가 쏜 총알, 모두 정당방위였어."

다시 말해 "우리 행동의 잔혹함은 우리 계획과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상황에서 나왔다고. 그래서 우리 잘못은 전혀 없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이 비극의 가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그저 비극 속에서 불행하게 희생되는 여러 조연 가운데 두 사람"일 뿐이라는 위안으로, 우발적인 폭력이 계획 살인으로 옮겨가는 아주 쉬운 과정을 단지 불운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함으로, 죄의 파급력이 타인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에 대해 애써 눈감아버리는 무감각으로 <심플 플랜>은 숨 가쁘게 질주한다.

스콧 스미스는 '당신 앞에 아무도 찾지 않는 440만 달러가 떨어진다면'이라는 아주 평범한 전제로 소설을 시작한다. 총 531쪽, 주요 등장인물은 채 10명도 되지 않는다. 장소도 작은 시골 마을이다. 적은 수의 등장인물과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불신과 의혹과 분노의 교환만으로도 스미스는 독자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아매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차갑게 얼어붙은 한겨울의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핏빛 살육전을, 중산층 스펙트럼 중에서도 약간 아래쪽에 있는 평범한 가장의 입을 통해 기술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무겁게 만든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섰으며, 돌아갈 수 없다. 그 돈 덕분에 꿈꿀 기회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현재의 삶을 경멸하게 되었다."

당신이라면 그 돈을 보자마자 즉시 신고할 수 있었을까? 돈을 훔치려는 계획이, 알고 있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그 계획이 자꾸만 어그러질 때 상대방을 어떻게 통제하려 했을까? 아내와 자식을 위해 내 손을 핏물에 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토록 소중했던 가족의 생명마저도 어느 순간엔 견딜 수 없는 짐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나는 갑자기 앞에서 말했던 코엔 형제의 어떤 영화들을 왜 그토록 힘들어하며 봤었는지 깨달았다. 그 감정의 정체는 일종의 폐소공포증이다. '갇힌 곳'이라는 물리적인 배경 때문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좁은 마음과 영혼으로부터 느끼는 갑갑증과 공포였다. <심플 플랜>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연쇄 살인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가끔 그 음악에 맞춰 지휘도 하며 미식가에 고귀한 취향을 가진, 그러나 타인의 감정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공감의 능력은 제로 상태인 그런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나의 비밀이 탄로가 날 것이라는 급박한 긴장감 속에, 조금 더 재고하고 가늠해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어느 순간에 자기 보호와 자기 보존의 본능에 압도당한 것뿐이다. 한계 상황에 내몰린 것이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였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까마귀가 쪼았던 행크의 이마에 난 상처, 그것을 단지 악행을 위해 선택받은 '카인의 운명적인 표식'으로만 단정 짓기 힘들다.

스콧 스미스는 이런 설정을 두 번째 소설 <폐허>에서 극한까지 밀고 나갔다. 여기서도 등장인물은 단 여섯 명뿐이다. 즐거운 휴가를 기대하고 떠난 젊은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폐허에 갇히면서 공포의 존재를 맞닥뜨린다. 그 초자연적인 공포의 존재는 이들의 두려움과 야비함과 불안을 감지하고 빨아들이며, 그것을 소리 내어 발화함으로써 주인공들의 관계를 교란시키고 파괴한다.

주인공들의 육체를 말 그대로 먹어치우는 그 존재의 촉각적 공포뿐 아니라, 주인공들을 무력화시키고 패배시키는 것은 그들 자신의 마음이다. 바깥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자신만이 비밀스럽게 마음속에 떠올렸던 어떤 생각이 큰 소리로 울려 퍼질 때 이들의 영혼은 순식간에 붕괴한다.

공포는 아주 작고 좁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콧 스미스는 <심플 플랜>(1993년)과 <폐허>(2006년)에서(그는 13년 동안 저 두 편의 소설밖에 쓰지 않았으며, <폐허> 이후로 지금까지 6년이 지나도록 세 번째 소설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 비겁하고 평범한 인간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어리석은 행로를 따라감으로써, '스릴러'가 동작의 액션이 아니라 어쩌면 마음의 액션에서 비롯된 장르일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 했다.

스티븐 킹이 스콧 스미스의 열렬한 팬이라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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