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티머시 리어리 같은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심리학자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 약물 연구 프로젝트의 지휘자였으며 죄수였던 사람이 1960~70년대 미국이라는 격동기 한복판의 자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장과 자기변호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리어리의 자서전 <플래시백>(김아롱 옮김, 이매진 펴냄)은 닉슨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불렀던, 그러나 그렇게 호명함으로써 오히려 이 순진무구한 남자가 자아도취와 망상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본인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가감 없이 보여준다.
▲ <플래시백>(티머시 리어리 지음, 김아롱 옮김, 이매진 펴냄). ⓒ이매진 |
리어리는 16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 카이저 재단 병원의 정신 병리학 연구소 책임자로서 높은 심리 치료 성공률을 보였고 꽤 유명한 인성 진단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심리학이 "의미 있고 예측할 수 있게 인간 행동을 바꾸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고 사직서를 냈다.
리어리는 심리학자들이 연구하는 모든 사건들에 관련되길 자청하면서 학생 혹은 환자들에게 평등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의견이 받아들여지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 자리를 꿰찬 그는 인성 연구 센터에서 정신 병리학 고급 대학원 세미나를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1960년 여름 동료 심리학자 프랭크 배런의 권유로 인간 정신의 근본적 개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약물 '마법의 버섯'을 먹고서 그의 인생은 영원히 달라진다. 환각제를 통해 전혀 다른 층위의 인식과 경험이 가능한 다중 현실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두뇌는 동떨어진 수십억의 신경 단위를 포함한, 충분히 활용하지 않은 바이오 컴퓨터"이기 때문에 "그 의식과 지성은 체계적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재프로그램"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리어리는 하버드 대학에서 합법적인 약물을 투여하되, 먼저 약물 사용법과 실험 과정을 가르치고 '안정된 조건'을 갖춘 환경에서 '안전한 인솔자'와 함께 의식의 변성 과정을 실험하고 인간 지성의 확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일 수 있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그는 이것이 사회 운동이자 신경학적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는 데이터만을 모으는 심리학자가 아니었다. 데이터를 창조하고 있었다."
리어리는 "미국적 평등주의를 적용해 대중에게 열린 접근법"을 채택하자면서, 무조건적으로 금지하고 억압하는 것은 더 나쁜 음성적 악영향만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호의를 보이고 동조한 이들은 비트 제너레이션의 아이콘 앨런 긴즈버그, 잭 케루악, 닐 캐시디, 윌리엄 버로스 그리고 과학 소설(SF) 작가이자 환각제 지지자였던 올더스 헉슬리, 메리 핀쇼(1960년대 사교계 명사이자 화가,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의 연인 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케네디의 암살 후 그녀 역시 수수께끼의 죽음을 맞는다) 등이며, 반대자들은 좀 더 다양한 층위를 보이는 조직들로 구성되었다. 기독교적 신념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반대하는 평범한 시민들부터, 훨씬 큰 조직의 비밀스런 압박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그러니까 제2차 세계 대전 중 약물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포로들을 세뇌하는 방식에 대해 이미 국가 차원에서 연구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CIA가 거기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리어리의 프로젝트가 1960년대 초반 하버드 대학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며 미국 전역으로 명성이 퍼져나가면서부터, 미국 정부와 리어리 사이의 기나긴 악연이 시작된다. 정부에선 리어리를 표본으로 처벌하여 '약물은 해롭고 금지되어야 할 것'임을 알리려는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마약이 사이키델릭 문화와 저항 담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도 사실이며, 또 마약 과용으로 인한 죽음과 고통이라는 부작용도 현실이다.
앞서 말했던 자서전의 악영향처럼, 리어리 정도의 전문가였다면 그 두 가지 모두를 균형 잡히게 기술해야 옳았겠지만 리어리는 <플래시백>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1960년대를 휩쓴 (잘못된) 마약 열풍에 대해 지속적으로 선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너무 안타깝다는 태도로 적절한 규제와 훈련과 정신만 있으면 모두가 행복해지고 사랑과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1960년대라는 암흑기에 살게 된 21세기에서 온 인류학자라고 믿었다. 우주 식민지에서 우리는 새로운 쾌락주의와 삶을 예술로 만드는 새로운 공헌을 하려고 했다."
리어리는 국가의 수상쩍은 위협이나 보수적인 학계의 냉담한 태도에 대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되풀이 선을 긋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선택 아닐까. 그는 "지능을 낮추는 아편 종류와 중독성을 지닌 다른 현실 도피성 마약은, 감성이 예민해지고 인간이 직면한 현실의 다양한 측면에 관한 이해를 높이는 환각 마약과 달리 역효과를 낸다"면서, LSD라든가 실로시빈 같은 '유용한' 마약을 합법화해야 하고 LSD는 신체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누차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LSD 때문에 고통 받게 된 예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그것은 잘못된 인성이라든가 잘못된 환경 탓으로 돌린다.
심지어 리어리는 자신과의 불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첫 아내에 대해서도 "우리가 모닥불 앞에 앉아 낄낄 웃으며 마리화나를 피우며 결혼 문제를 토론했다면"이라는 아쉬움을 표하고, 가족을 버리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죽어간 아버지에 대해서도 "야만적인 아일랜드 사람의 불안을 날려버릴 LSD를 복용했다면"이라고 회상한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택의 행로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주변 환경 모두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나름대로의 진리 이외의 것들은 잘못되었다고 규정짓는 배제의 태도는 '지도자'로서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리어리가 주장하는 마약 사용의 올바른 예는 안락한 환경, 고통이나 불안 없는 평정한 마음 상태(그는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LSD가 지나치게 강렬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한적하고 조용하며 음악과 회화와 시가 갖춰진 비밀 공간이나 시골을 추천한다. 불교, 힌두교, 도교,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 등도 중요하다)가 필수 조건이다.
어떤 의미에서 리어리가 주장하는 합법적이고 좋은 약물은 계급적으로나 계층적으로 상위 쪽에 가까운 이들의 '정신적 휴양지'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약물을 먹기 위해서는 바쁘게 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 참가자들은 며칠 동안 축하 파티, 세미나, 음악, 풍요를 비는 의식, 별 보기, 달 보기, 습지 연회, 연극, 수영, 종교 토론 등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리어리 자신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바로 이런 조건의 규제는 마약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들과 아닌 이들을 구분 짓는 행위 아닐까. 그가 약물을 실험한 대상이 (1)하버드 대학에서 선별한 대학원생 및 교수들 (2)교도소 죄수들이라는 극단적인 대조를 보인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특히 죄수들에게 행한 실험의 목적은, 약물로 인한 '정신적으로 좋은 여행' 덕분에 "오래된 현실은 잠시 희미해지고 새로운 현실과 합쳐"짐으로써 현실을 재각인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함이다.
죄수들은 약물 덕분에 "우울증이나 적대감이나 반사회적 성향이 줄고, 에너지가 넘치고 책임감과 협동심"이 커졌다고 주장하면서 리어리는 약물이야말로 새로운 인생의 대안이라고 결론 내린다. 만일 그 죄수가 교도소 바깥으로 나가 예전의 환경으로 돌아간 다음에 다시금 과거의 행로를 되풀이한다면, 혹은 재각인의 효과 지속을 위해 끝없이 약물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서는 <플래시백>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잠깐 다른 책으로 눈을 돌려보자. <해시시 클럽>(샤를 보들레르 외 지음, 조은섭 옮김, 싸이북스 펴냄)에 수록된 테오필 고티에의 에세이 '해시시 클럽'에서도 '분위기 조성'에 대한 세심한 묘사를 읽을 수 있다. 클럽 멤버들은 17세기에 지어진 유명한 고딕 풍 건축물의 비밀 방에 모여들어 일부러 기묘하게 생긴 그릇들에 해시시를 담아먹는다.
그리고 온갖 그림과 화려한 가구들에 둘러싸인 채 기존의 그 사물들이 괴상하고 환상적으로 변화하는 환상, "더 커지고 더 풍성해지고 더 경이롭게" 바뀌는 환상으로부터 기쁨을 누린다. 이런 환상은 희구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해석할 수 있고, 무엇보다 '구매'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쾌락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또 같은 책에 수록된 샤를 보들레르의 '해시시의 시'에서 보들레르는 매우 냉철한 태도로 해시시의 환상과 공포를 분석한다.
"해시시 영향을 받은 뇌나 신체 기관의 에너지가 몇 배로 상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해시시는 인간에게 일상적으로 떠오르는 인상과 생각을 확대시켜 주는 거울이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거울인 것이다."
보들레르는 마약으로 인한 도취감이 어떤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이 아니라, '나 자신의 환각'일 뿐임을 거듭 지적한다. 환각이 "광폭한 주인처럼 당신을 압도"한다고. 그는 해시시를 두고 "자유 의지가 사라지는 위험한 실험"이라 불렀다. 그는 약물이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보여주고 예술의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19세기 중반 파리의 모처에서 테오필 고티에, 제라르 드 네르발, 외젠 들라크루아, 알렉산드르 뒤마 등의 동지들과 함께 해시시를 흡입하는 '해시시 클럽'을 결성했으나 끝내 이 '한 스푼'이 안겨주는 너무나도 쉽고 달콤한 지고의 행복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보들레르의 이런 태도와 토머스 드 퀸시의 고백록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1821년)을, 리어리의 <플래시백>과 비교해본다면 어떤 차이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리어리의 주장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수긍할 수 없다. 리어리는 마약 합법화를 주장하며 정부 관계자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수십억 달러가 여기에 걸려 있어요. 어마어마한 농산물이죠. 마약은 10년 안에 미국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5개 산업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술을 생각해 보세요. 35년 전에는 불법이었는데, 요즘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를 하고 있어요. 술은 텔레비전보다 더 큰 산업이에요. 정부에 이로운 산업도 되고 세금도 걷을 수 있는데, 왜 암시장으로 내몰까요?"
글자 그대로만 놓고 봤을 땐 맞는 말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는 거대한 시장이 된 남아메리카의 정치 사회적 소용돌이에 대해서는 리어리가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결과적으로 <플래시백>을 읽으면서 리어리를 무조건 사기꾼, 과대망상 환자로 몰아갈 순 없겠지만, 그의 유명한 구호 "흥분하라, 함께하라, 이탈하라(Turn on, Tune in, Drop out)"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빠져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플래시백>은 리어리라는 논쟁적인 인간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아니기 때문에, 자서전이라는 양식을 이용하여 약물 요법의 환상적인 장점을 확신하는 그의 장광설을 읽는 동시에 그의 순진무구한 약점과 모순을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읽느라 두 배로 고된 독서 체험이라고 해두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리어리를 하나의 '포털'로 놓고 그를 스쳐가는 1960년대 카운터컬처의 면면을 구경하는 것은 꽤 재밌다. 예를 들어 잘생기고 매력 넘치는 배우 캐리 그랜트 역시 LSD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리어리를 만났던 1962년 LSD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고, 영화감독 오토 프레밍거와 로만 폴란스키, (이후 불교학자 로버트 서먼과 결혼하여 배우 우마 서먼을 낳게 되지만, 그 전에 티머시 리어리와 잠깐 법적 혼인 관계였던)유명 모델 나네트, 뮤지션 비틀즈와 롤링스톤스, 무디 블루스, 지미 헨드릭스, 과격 정치집단 블랙 팬더와 웨더맨,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 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 에디 세즈윅 등이 리어리를 스쳐간다.
리어리가 캘리포니아 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자 존 레논이 만들어준 캠페인송이 바로 'Come Together'였다는 사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베드 인 시위' 당시 리어리가 침대 끝 쪽 바닥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그러나 그 이외, 약물 문화에 대한 포괄적이고 냉철한 분석을 찾기 위한다면 <플래시백> 한 권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PS. SF(Science Fiction)를 여전히 '공상과학'이라고 표기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