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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12…"노동자는 '잡초', 아이는 '용역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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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12…"노동자는 '잡초', 아이는 '용역 놀이'!"

[분노의 목소리] 변영주 감독이 읽은 <여우의 화원>

가치 동화를 표방한 <여우의 화원>(이병승 지음, 원유미 그림, 북멘토 펴냄)은 첫 인상이 그리 매력적인 읽을거리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출판사의 이름에 들어간 '멘토'라는 것도 이젠 들으면 겁부터 나는 단어가 되어 버렸고, (내가 20대의 멘토예요! 바로 나라고요! 하고 외치는 확성기들에 질려버렸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가치 동화라는 조금은 낯선 말도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다룬 동화라는 정보에 지레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쉽고요.

하지만 <여우의 화원>은 이런 선입견을 몇 페이지 안에 날려버릴 정도의 섬세한 결을 지닌 동화입니다. 우선 설정이 그렇습니다. 대를 이어 자동차 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의 못난 막내아들인 '민수'와 해고 노동자의 아들인 '륜'의 불안하고 날선 우정이 이야기의 중심축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정표 : 용역 놀이

▲ <여우의 화원>(이병승 지음, 원유미 그림, 북멘토 펴냄). ⓒ북멘토
<여우의 화원>의 시작은 민수의 어느 날 아침입니다. 미국에서의 조기 유학에 실패하고 잠시 아버지의 자동차 회사가 있는 도시의 학교에서 시간을 때우게 된 그에게 아버지는 돈을 쓰는 법, 그리고 돈을 씀으로 얻게 되는 권력을 이야기합니다. 민수는 그런 아빠가 양손 검을 휘두르는 얼음산의 전사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의 모든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만난 억삼이(륜)와 아이들은 민수에게 적대적입니다. 그리고 이 동화에서 가장 마음 아픈 아이들의 놀이가 선보입니다. 용역 놀이. 아이들이 패를 나누어 용역과 농성하는 노동자로 역할 놀이를 하는 겁니다. 놀이는 간단합니다. 용역에게 잡히면 맞는 겁니다.

해고 노동자 가족의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용역 놀이를 하고 있다는 기사가 마음이 아팠다는 작가는 이 놀이를 민수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그리고 글을 읽는 우리에게는 용역 놀이를 통해서 신문의 사회면에서 보던 남의 일 같던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아픔을 생생히 전합니다.

용역 놀이는 동화 <여우의 화원>이 가고자 하는 길의 첫 번째 이정표입니다. 당신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 투쟁을 알고 계십니까? 문자로 아는 것 말고, 동영상으로 아는 것 말고, 그곳에서 몇 년째 해고 상태로 용역에게 폭력을 당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 쉬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과 가족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본적이 있나요?

'해고를 당하다니 안 됐네요'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멀리서 보내는 메일 같은 태도 말고 왜 해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또 그들과 가족을 위한 심리 치유 센터 '와락'이 왜 필요했는지, 같이 와서 분위기라도 느끼지 않겠어요? 이것이 <여우의 화원>의 첫 번째 이정표입니다.

두 번째 이정표 : 잡초와 나무

"잔디밭이 회사고 공장이라고 생각해 봐. 아빠의 목표는 멋진 잔디밭을 가꾸는 거고. 그런데 잡초가 점점 많아져. 그럼 어떻게 해야겠니? 잡초를 뽑아야겠지? 그게 해고라는 거다. 그런데 뽑혀 나간 잡초들이 반발을 하는 거야. 자기들끼리 모여서 다시 잔디밭에 들어가서 살게 해 달라고 생떼를 쓰는 거지. 그런데 잡초는 잡초일 뿐이거든. 게으르고, 불평불만만 일삼고, 일도 제대로 안 해. 그런데 잡초들이 막무가내로 회사에 쳐들어오는 거야. 잔디밭은 점점 엉망이 되고. 그럼 공장이 멈추는 거야. 그래서 아빠는 할 수 없이 아빠 대신 잡초들을 내쫒아 줄 사람들을 부르게 되지. 그런 일을 해 주는 사람들이 용역이다."

<여우의 화원>의 두 번째 이정표는 바로 민수 아버지가 용역을 설명하는 이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민수 아버지의 말에 다른 것들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대신 넣어보세요. 일상의 것들을 삽입할수록 저 대사의 공포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의 청춘도, 로또 같은 잔디밭을 위해 뉴타운에 목숨을 거는 우리네 서민의 부푼 꿈도, 그리고 강의 길을 막는 토건 업자의 태도도 모두 아버지의 대사에 그 근거를 두고 있지요. 잔디밭. 어떤 잡초도 허용치 않는 골프장의 잔디 같은 바로 그런 곳이 인간의 행복과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그런 말말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공장 앞 텐트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억삼이 즉 륜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공장 안에는 아주 커다란 사과나무들이 있단다. 정말 멋지고 근사한 나무지. 그런데 그 멋진 나무들을 어느 날 갑자기 무작정 뽑아서 공장 밖으로 던져 버리면 어떻게 되겠니? 여기 있는 아저씨들도 그래. 다 10년 20년 넘게 저 공장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뿌리째 뽑혀져 길거리에 버려졌어.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약속을 해 놓고 말이다. 그래서 아저씨들은 이렇게 말라 죽어 가고 있단다. 네 아빠한테 전해 주겠니? 제발 약속은 지켜 달라고. 사람이 사람한테 지켜야 할 예의는 지켜 달라고."

이윤만을 생각하며 인간을 보지 않는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해고 문제를 이렇게 단순명료하게 아이들의 시선에서 쓰인 글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뽑혀진 나무들이 쌍용자동차의 이름으로, 재능교육의 이름으로 한진중공업의 이름으로 전국의 길거리에 버려졌습니다.

세 번째 이정표 : 악몽 같은 현실

<여우의 화원>의 세 번째 이정표는 제목과 같은 이름의 성탄절 연극입니다. 민수는 륜과 또 다른 해고 노동자의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자 합니다. 연극을 통해 어른들을 화해시키고 싶은 거지요. 그러나 공장 앞 농성장에서의 연극은 끝내 성공하지 못합니다. 민수 아버지의 명령으로 다시 용역의 폭력이 시작되고, 민수는 아버지에 의해 집으로 보내집니다.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민수는 다시 미국으로 보내질 것입니다. 연극으로 이 모든 지옥도가 끝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륜에게 민수는 자신은 달라질 거라고, 자신을 지켜봐 달라고 말합니다. 언제 어디에 있던 자신은 아빠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륜은 믿지 않습니다.

둘의 우정이 어떻게 될지, 몇 십 년이 지난 후 민수가 정말 착한 기업가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우의 화원>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미래의 민수와 륜의 모습과 상관없이 <여우의 화원>은 이미 화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마치 세상의 모든 폭력과 비인간적인 태도가 모든 것을 장악한 곳입니다.

여우의 화원이라는 연극도 어쩌면 민수가 혼자 방에서 현실을 목도한 스스로의 용기 없음이 만들어낸 꿈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동화 <여우의 화원>은 마지막에 와서야 당신이 읽은 이 모든 악몽이 사실은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조심스레 속삭여 줍니다. 그것이 바로 이 동화의 세 번째 이정표입니다.

동화 <여우의 화원>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삽화에 있습니다. 삽화도 동화의 문장들처럼 조심스럽고 경계에 서있습니다. 너무 부드럽지도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은 조심스러움이 모든 그림의 선들에 미덕처럼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동화 <여우의 화원>은 때로는 읽는 책이기도 하고 보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아이들이 읽고 나서 그들이 쌍용자동차 앞 텐트에 가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수익금이 그러하듯 책을 읽은 어른들은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 치유 센터 '와락'으로 작은 기부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이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또 하나의 희망 버스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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