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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3위는 '피임'…1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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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3위는 '피임'…1위는?

[프레시안 books] 존 판던의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

아이디어 넘치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는 적다. 그러나 아이디어'만' 넘치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는 많다. 일 벌려놓기는 귀신 같이 잘하면서 그것을 끝까지 실행하는 경우는 드문 친구 한두 명 어디에나 꼭 있다. 그래서 '아이디어맨'이란 이야길 들었다면, 칭찬인 듯해도 듣는 순간 한번쯤 의심해봐야 마땅하다.

'말은 쉽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아이디어의 세계, 그렇기에 현실로 실현된 아이디어는 위대하다. 아니, 거꾸로 우리는 실현된 어떤 사물, 제도, 이념 등을 보고 저 멀리에 원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진짜 위대한 것은 '그것이 어떤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누군가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다.

이런 진술에 이르면, 주변에서 천재의 작품 아닌 걸 찾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 두드리고 있는 노트북이나 가장자리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 메모지, 그 옆에 USB형 마우스나 두루마리 휴지, 음료 캔 등. 그렇지만 가장 처음 내 머리에 떠오른 건 '숫자 영(0)'이었다. 언젠가 본 <0의 발견>(요시다 요이치 지음, 정구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이란 책이 아니었다면 '숫자 0이 발명(혹은 발견)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0은 우리에게 당연한 듯 자연스레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마치, "'나를 무시해 주세요'라고 간청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0이 발견되기 이전 수 표기와 계산을 들여다 보면, 이 무심하고 투명한 동그라미가 수(數)라는 우주, 그리고 문명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격상되기 시작한다. 10의 배수, 100의 배수를 나타내는 '자리지기(place holder)' 역할을 할 0이 없던 고대 이집트에선 999를 표기하기 위해 나선 아홉 개, 뒤집어놓은 U자 아홉 개, 수직선 아홉 개가 필요했다.

이 '0'은 15위를 차지했다. 그 위로는 민주주의, 그 아래로는 전화가 있다. 갑자기 웬 순위냐 하면, 아이디어에도 '서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결코 절대적인 건 아니다. 2010년 영국의 출판사 아이콘북스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The World's Greatest Idea)'를 가려보기로 기획했고, 패트리셔 파라(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등 열일곱 명의 지식인이 뭉쳐 50가지를 선정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홈페이지(www.theworldsgreatestidea.com)를 통해 누리꾼의 의견을 수렴해서 줄을 세웠다. 그 결과를 <이것은 질문입니까?>의 작가 존 판던이 책으로 써냈다.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강미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이다.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존 판던 지음, 강미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위대한'도 '아이디어'도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목록을 보면 수긍하지 못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42위), 민주주의(14위) 마르크스주의(27위) 같은 이념들이 있고, 불(5위)이나 음악(4위)처럼 '자연 현상'으로까지 여겨지는 것들도 있다. 농사(24위), 바퀴(13위), 도기(36위)처럼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원형의 아이디어부터 비행기 날개(47위), 증기기관(37위), 전화(16위), 백신(17위)처럼 근대의 발명품들이 혼재한다. 무엇보다 여성 해방(19위)이나 노예제 폐지(6위)처럼 거의 누구나 이견 없이 높이 평가할 만한 제도들이 눈에 띈다.

이 책은 그 50가지에 대한 짤막한 백과사전식 기술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영국인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교양인이자 지적 모험가"라는 솔깃한 설명에 값하는 저자의 정리 솜씨, 글 솜씨 때문이다. 책은 그래서 첫째로, 한 분야에 대한 교양을 눌러 담은 포켓북보다 더 짧으면서 종류도 다양한 '미니 교양 총서'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이 책을 보면서 교육방송(EBS)의 간판 다큐멘터리 <지식채널e>를 떠올렸는데, 발견에 얽힌 일화들을 잘 건져 올린다면 그대로 미니 다큐멘터리 각 편의 소재로 쓸 만하다. <지식채널e>의 강점은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에 있는데,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 각 꼭지에서도 바로 그게 강점이다.

두 번째 가치라면, 이 책의 기획 자체가 무엇을 살펴보게 하는가에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라는 아이디어는, 영국 출판사가 기획했고 영국 지식인들이 후보를 선정했으며 영국 누리꾼들이 투표하고 영국 작가가 써서 완성된 프로젝트다. (물론 투표한 누리꾼들은 영국인만이 아니겠지만, 여기서 영국은 문명화된 유럽을 말하는 상징어일 뿐이다.) 그리고 때는 현재다. 종합하자면 21세기 초두 '서구 활자층'의 지적 호기심, 가치 체계,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기회다. 결혼은 50위, 연애는 33위인데 피임은 무려 3위라는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조금 오버한다면 자본주의(42위)와 마르크스주의(27위), 정부(26위)와 은행(38위)의 순위 차이에서도 모종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이건 50년만 흐른 뒤에 봐도 재밌는 자료이지 않을까? (물론 29위에 중국어 간자체가 오른 건, 습관적 사고 경로론 예상하기 힘든 경우다.)

다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위대한 아이디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불처럼 누가 처음 그 현상을 일으켰는지 추적 불가능한 것도 있지만, 민주주의처럼 여러 명이 켜켜이 쌓아 올린 것도 있지만, 우리의 눈이 머무르는 건 통찰력을 가진 천재적 인간과 우연한 사건이 스파크를 일으켜 전에 없던 생각이 폭발하는 장면이다. 이를테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우연히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어릴 때는 '그 사람 참 운도 좋네' 하고 넘겼을 테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은 우리가 '아이디어'라 부르는 것의 탄생을 한 눈에 함축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사과가 떨어졌고, 생각에 잠겨있던 뉴턴은 그것이 떨어진 이유를 '그냥' 이해했다. 그러나 "그보다 반세기 전 케플러는 행성은 타원형 궤도로 돈다는 것을 입증했고, 갈릴레이는 사물은 땅에 떨어질 때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조차 없었다."(190~191쪽) 아이디어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 줄 거대한 선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그렇게 '삐약' 하고 탄생한 아이디어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실체화되거나 구현되었고 고유의 역사를 펼쳐 왔다. 그리고 바로 그 역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이 책에 나열된 아이디어가 위대하다는 데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착하기만 한 아이디어 혹은 나쁘기만 한 아이디어는 없다. 애초부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최소한의 합의된 아이디어-이를테면 정부-도 있다. 그리고 그 의도가 어땠건 그 생각이 구현된 역사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마을과 정부를 만들고 문명을 낳게 한, 무엇보다 우리를 먹여 살린 신의 선물 '농사'만 해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제이 스톡)라거나 "우리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제레드 다이아몬드)라는 등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신교(46위), 대량 생산(32위) 등에서 그것이 초래한 인류의 피와 눈물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선악을 논할 수 없으며, 그것이 진행되어 온 역사에서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함께 보여 왔다. "인류의 역사 안에는 빛나는 영광과 말하기도 부끄러운 악덕이 함께 존재한다. 악덕은 그저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문제는 인간이 그 아이디어와 관계 맺는 방식에 있다고 말한다.

자, 끝으로 누구나 관심 갖는 1위의 정체를 벗겨 볼 차례다. 이 순위의 꼭대기엔, 여러분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이 있다. 책을 펼치기 전에도 예상한 바라 뻔해서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 다른 게 있다면 더 허탈했을 것 같다. 이 '아이디어의 박물지'도 그것을 소개하는 이 글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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