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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이 이대 앞에 오면? 이 질문만은 꼭!

[프레시안 books] 린 마굴리스·에두아르도 푼셋의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린 마굴리스가 한국에 왔어. 아들이랑. 두 사람이 인사동을 관광한다고 해서 통역해 주기로 했어."

언젠가 천문학을 하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마치 미국에 사는 친척이 놀러 와서 안내해 준다는 듯이 가볍게 말이다.

"칼 세이건의 첫째 부인, 린 마굴리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쓴 아들, 도리언 세이건?"
"응!"


그날 그 친구가 얼마나 멋져 보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쓴 지 50년이 지난 후에 DNA가 발견된 이후의 생명의 정의와 기원, 그리고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던 그 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 그들과 함께 거닐면서, 차를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얼마나 부러웠는지 인사동에 갈 때마다 그 생각이 난다. 헛것을 본 적도 있다. 작년 여름이었다. 인사동을 거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런데 제인 구달처럼 생긴 여인이 비를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우산을 건네주면서 인사를 나누어야할 것 같은데 주저주저 하는 사이에 그녀는 멀어졌다.

그 아쉬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자 한 이화여대 학생이 "제인 구달이 오늘 이화여대에도 왔었어요."라는 글을 달아서 리트윗하였다. 난 가슴을 쳤다. 그리고 "정말로 제인 구달이었구나. 이런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제인 구달을 만나고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기회를 이렇게 날리고 말다니!"라는 트윗을 날렸다. 다음 날 아침 그 여학생이 "어제는 그냥 농담한 건데 죄송해요."라는 DM(쪽지)을 보내왔고,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른 나는 그녀를 블록(block)했다. (그녀의 아이디는 잊었지만, 미안하다.)

요즘 '북 콘서트'라는 게 유행이다. 작가들을 코앞에서 보면서 직접 질문하고 작가가 책에 쓰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는다.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 작가뿐만 아니라 외국의 과학 저술가들도 만나고 싶다. 이젠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아인슈타인이나 칼 세이건 또는 갈릴레이나 찰스 다윈을 보고 싶다는 게 아니다. 지금 살아 있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그 과학자들을 직접 만나서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다.

그런데 이건 분명 사치다. 그 사람들이 독자들을 일일이 만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할 테니까. 마치 내가 그 작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누가 대신 이야기를 나눠주면 안 될까? 뭐, 안 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대화를 구경하지 못했다. 어떤 사건이 터지거나 새로운 책이 나왔을 때 작가를 인터뷰한 기사는 많지만 대개 형식적이다. 내가 묻고 듣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다.

▲ <과학자처럼 사고하기>(린 마굴리스·에두아르도 푼셋 엮음, 김선희 옮김, 이루 펴냄). ⓒ이루
우연히 <과학자처럼 사고하기>(린 마굴리스·에두아르도 푼셋 엮음, 김선희 옮김, 이루 펴냄)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사람이 제인 구달, 에드워드 윌슨, 대니얼 데넷, 올리버 색스, 제임스 러브록, 스테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폴 데이비스 등 37명의 과학자들과 인터뷰 했다는 거다. 당연히 흥미가 생겼다. '이런 최고의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과학적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좀 어려울 것 같고, 재미가 썩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궁금한 주제 아닌가! 잘하면 나도 그들처럼 사고하는 방식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다행히) 그런 '과학철학' 책이 아니다. 스페인에서 나온 이 책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마음, 생명, 우주를 마주보며>인데, 이것은 한국어판의 부제 '우리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 37인이 생각하는 마음, 생명 그리고 우주'에 녹아들어 있다.

내가 누군지도 몰랐던 인터뷰어는 에두아르도 푼셋. 그는 스페인의 인기 과학 프로그램의 연출가이자 사회자라고 한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다. 대학에서 '과학 기술 사회(STS)'를 강의하기는 하지만 전공은 법학과 경제학이다. 그는 직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질문을 던진다. 그가 과학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는 36회의 인터뷰(한 번은 인터뷰이가 두 명이다.)를 통해 현재 최고 과학자들의 속내를 유쾌하게 읽어낸다. 푼셋은 단순한 질문자가 아니다.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과학자들과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서 가장 발전된 컴퓨터와 두뇌를 동등하게 만들고 결합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유행입니다. 우리는 기계를 가지고 느낌과 정서를 시뮬레이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지능을 개발할 것이고, 그것이 매우 뛰어난 컴퓨터 능력과 결합하여 인간의 두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우리가 제대로 해 나간다면 그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파괴하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초지능이 우리를 구원해 주고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까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인류의 기원과 인관관계를 포함해서 세계를 더 온전히 이해하게 해 주는 한,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97~98쪽)

책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인터뷰어인 것 같다. 푼셋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선다. 푼셋의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인터뷰이들은 당연히 푼셋 이상이다. 그들은 재치 있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 개미 100만 마리가 모여야 인간의 무게와 똑같아집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모든 개미의 무게는 대략 모든 인간의 무게와 같습니다. 개미의 두뇌는 인간 두뇌의 100만 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그 작은 뇌로 성취해 온 일들을 분석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96쪽)

이 책에서는 내가 천문학자 친구를 부러워하게 되었던 린 마굴리스와 그의 아들 도리언 세이건도 만날 수 있다. 린 마굴리스는 이 책의 편자이면서 서문을 썼고, 그의 아들 도리언 세이건은 인터뷰이로 참여한다. 천문학자 친구가 두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나를 대신해서 에두아르도 푼셋이 나눈 이야기와 거의 같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제는 만약 인사동에서 비를 맞는 제인 구달을 본다면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우산을 씌워 줄 수 있을 것 같다. 주저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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