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서울법대 교수들, 용산 참사 재심 청구 나선다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서울법대 교수들, 용산 참사 재심 청구 나선다면…

[親Book] 손아람의 <소수 의견>

손아람의 <소수 의견>(들녘 펴냄)을 읽는 것은 오랜 숙제였다. 2011년 1월, 용산 2주기 즈음에 강제 퇴거 금지법 제정 토론회에 갔었다. 까맣게 우그러든 현장 물건이 유리장 안에 몇 점 놓여 있었다. 나는 토론회장 구석 보조의자에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댔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다.

다음 날에는 용산 참사 2주기 추모 상영회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보았다. 고통스러웠다.

용산에 관한 모든 것은 무겁고 어둡고 축축했다. 잠깐의 불길 뒤로 비와 눈물이 뒤따랐다. 분노조차도 젖어 있었다. 영화는 작가입네 하는 이의 양심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죄책감과 부채감을 자극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되어, '개발된 공간'에 있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 부은 눈을 손으로 덮고 조금 더 울었다.

그 며칠 뒤에 <소수 의견>을 추천 받았다. 추천한 이는 공익 변호사였다. 법률가가 아닌 소설가가 용산 참사와 같은 강제 철거 과정에서의 사망 사건을 소재로 쓴 법정 소설인데 대단히 인상 깊었다며, 작가라면 꼭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고 제목을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접어 넣었다. 부채감, 시대정신, 사회적 책임 같은 말들과 함께.

▲ <소수 의견>(손아람 지음, 들녘 펴냄). ⓒ들녘
몇 번이나 이제 <소수 의견>을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어떤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사이에도 서울 곳곳에는 새로운 아파트와 새로운 상가 건물이 올라왔다. 두리반이 있었다. 명동 2, 4구역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 있던 운전면허 시험장과 화원도 내가 땅을 보고 걷는 사이에 사라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2012년 1월 20일은 용산 참사 3주기였다. 나는 그제야 이 책을 샀다. 1월 20일 전에 읽겠노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주문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처음 몇 장을 읽은 다음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것은 소설이구나. 망루나 죽음이나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기 이전에, 소설가가 빚어낸 좋은 '이야기'구나.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소수 의견>은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사업 부지 강제 철거 과정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에서 출발한다. 망루를 세우고 강제 철거에 저항하던 철거민 중 열여섯 살 학생이 죽었다. 학생의 아버지는 진압 경찰을 둔기로 내리쳐 살해하고 특수 공무 집행 방해 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러나 진압 경찰은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고, 경찰은 경찰이 아니라 철거 용역들이 학생을 폭행했다고 주장한다.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국선 변호인으로 일하고 있던 '나'는, 이 아버지의 변호인이 된다.

'나'는 진압 경찰이 아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둔기를 휘둘렀다는 아버지 박재호의 말을 듣고, 사건 당일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한 기자 준형을 만나며 철거 현장에서 박재호의 아들을 죽인 이가 진압 경찰일 뿐 아니라, 사건의 수사와 재판의 진행 과정에 은폐와 거짓이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결국 '나'는 국선 변호인을 아예 그만두고, 한때는 격렬한 운동권이었으나 지금은 '못' 나가는 변호사가 된 대석 형의 허름한 사무실에 얹혀 이 사건에 매달린다. 공정하고 엄격한 법조인의 현현인 사법연수원 교수 염만수,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의 젊은 천재 교수 이주민이 힘을 보탠다.

하나의 형사 사건은 점점 더 주목을 받고, 마침내 역대 최대 규모의 국민 참여 재판 사건이 되기에 이른다. '나'에 대한 압력도 커진다. 개개인이 국가 기관인 검사의 힘, 학연과 인맥의 거미줄, 현장 경찰의 재빠른 증거 인멸로 증명하기 어려워진 실체적 진실의 무게가 주인공을 죄어든다.

이 소설에는 용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형사 재판 절차에 관한 여러 쟁점과 판례들 또한 반영되어 있다. 법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주요 판례(leading case)의 흔적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싶은 이야기들은 모두 현실이다.

'제발 이렇게 되었으면' 싶은 부분들은 모두 가상이다. 젊고 유능한 서울대 법대 교수가 주인공을 도울 뿐 아니라 현장에서 체포되어 언론의 관심을 모아 주는 장면,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조계의 큰 어른이 공정함을 무기로 주인공을 지켜준다는 설정,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 주는 결정적인 증인. 실제로는 이 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여섯 구의 시신과 지금도 실형을 살고 있는 여덟 철거민이다.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귀에 익어버린 재개발지구와 뉴타운과 강제 철거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고 오로지 이야기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은 현실이니 가상이니 하는 기준으로 나눌 수 없는 가장 '소설적인' 부분이다. 도리어 방해가 되고 마는 작고 졸렬한 승리감과 욕심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위대한 용기. 이 책에는 법정 소설의 전형적인 클라이맥스구나 하면서도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믿고 싶은, 현실이기를 간절히 원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소수 의견>은 현실에서 출발했지만 독립한 소설이고, 소설이기에 다큐멘터리나 현장 기록과는 다른 거리감과 존재감을 갖는 책이다. 이 소설은 나의 예상보다 덜 고통스러웠고, 더 아름다웠다.

저자 손아람은 작가의 말에서 "그 어떤 창조적인 상상력으로도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현실을 바꾸는 것은 바로 그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선의에 대한 상상, 신념에 대한 상상, 실천에 대한 상상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믿을 수 있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추동하여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기억과 이야기의 힘을 생각했다.

이 현재 진행형인 비극 속에 아직 살아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기억하는 것, 다른 현실을 상상하는 것, 실천이 다른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