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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지구 종말? 진실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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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지구 종말? 진실이 궁금하다면…

[이정모가 사랑하는 저자] 마이클 셔머

'프레시안 books'는 2012년 신년호를 '내가 사랑하는 저자'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열두 명의 필자가 사랑하는 저자와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사랑하는 저자와 만나는 기쁨을 누리길 기대합니다.

맙소사! 마침내 2012년이 오고야 말았다!

두렵다.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던 종말의 때가 온 것이다. 딱 두 해 전 설날에 엄마는 세 며느리를 앉혀놓고 말씀하셨다. "아등~바등~ 저축하면서 살지 마라. 곧 이 세상은 끝나고 좋은 세상이 온다." 다행히 아내는 엄마의 말씀을 흘려듣고 여전히 알뜰하게 살림하지만, 어른 말씀을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나는 지난 두 해 동안 흥청망청 살았다.

역시 엄마의 말씀은 괜한 게 아니었다. 올해 4월이면 창간 92주년을 맞는 한 정통 민족지는 1월 4일자 21면 기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2012년은 종말론이 '예고'된 해다. 고대 마야인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는 '마야 달력 종말론'이나 2012년 말 미지의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해 인류가 멸망한다는 '플래닛 X 충돌설'이 그럴싸하게 나돌았다. 미국 디스커버리채널이 신년 특집으로 2012년 종말론을 다루기도 했다.

울라, 어쩌라는 거야! 아무리 엄마 말이 맞는다고 해도 종말은 싫은데……. 내가 좋아하는 동짓날(올해는 12월 21일) 모임은 작년이 마지막이었던 거야? 우리는 작별 인사도 못했는데……. 다행히 다음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정치와 경제 위기로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고조되는 분위기를 타고 국내 출판계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종말과 범종교적 의미의 영성을 다룬 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책은 <아포칼립스 2012> <2012년 지구 멸망> <종말론> <종말 문학 걸작선> <하루하루가 세계의 종말 2> <로보포칼립스> <의식 혁명> 등이다. 그리고 UFO와 초고대 문명을 연구해온 우석대학교의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맹성렬의 저서가 곧 출간된다는 소식도 실렸다. (다른 책은 몰라도 그의 책은 꼭 사서 읽어 볼 생각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2012 내일 최후의 날이 온다면…'이지만 종말론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화성과 달 크기의 두 행성이 충돌하는 멋진 사진을 걸면서도 그 옆에는 "천문학자들은 '올해 지구와 충돌할 행성은 존재하는 않는다'며 '행성 충돌 멸망설'을 일축한다"라는 캡션을 달아 놓기도 했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2000년 이후 종말과 영성을 다룬 책은 꾸준히 출간됐지만 올해는 지속적인 경제 불안에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더해져 관련 분야의 책들이 특수를 노리고 줄줄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평소에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넘치는 아내가 엄마의 말씀을 흘려들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엄마는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나 보수 정통 교단의 개신교회에 오랫동안 다니다가 이후에는 (우리 형제들이 '남녀호랑나비교'라고 부르는) 동양 종교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교를 순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비술(秘術)에도 관심이 많으시다. 5년쯤 전에는 엄마 방에 이불이 대각선으로 깔려 있는 걸 보았다.

아들 : 엄마,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주무셔요?
엄마 : 글쎄 여기에 수맥이 흐르지 뭐냐? 그 동안 어쩐지 몸이 괜히 아프더라고.
아들 : 엄마~~, 여긴 12층이에요. 무슨 수맥이에요?
엄마 : (철사로 된 이상한 수맥 찾는 도구를 가지고서) 이것 봐. 여기 수맥이 흐르지 않니?
아들 : 그건 어디서 났어요?
엄마 : 동사무소에서 하는 문화 센터에서 수맥 찾는 법을 배우고 있어.
아들 : 엄마, 아들이 과학자인데 이건 너무하시는 것 아니에요?
엄마 : (웃으시면서) 과학자들이 뭘 아니?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우리 엄마는 책을 읽고 믿는다고 하신다. 실제로 엄마는 다독가다. 문제는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책들만 주로 보신다는 것.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책을 읽고 믿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사실 우리 엄마도 먼저 믿고 나서 거기에 대한 책을 찾아보시는 게 맞을 거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그냥' 믿을까?

그 이유를 궁금해 할 뿐만 아니라 그 이유를 찾고 최전선에 서서 그 '이상한 것'들과 싸우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셔머(1954년 미국 출생)다. 그는 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과학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년 동안 대학에서 심리학과 진화론 그리고 과학사를 강의했다.

셔머가 주목 받는 이유는 1992년 과학 잡자 <스켑틱(Skeptic)>을 창간해 지금까지 발행인을 맡고 있으며, 1997년에는 '회의론자 학회(Skeptics Society)'를 설립해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잡지와 학회 그리고 출판과 강연 활동을 통해 과학의 최전선에서 사이비 과학, 창조론, 미신과 맞서 싸우고 있다.


▲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우리나라에 출간 된 그의 책은 모두 다섯 권. 이 가운데 내가 읽은 것은 <과학의 변경 지대>(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왜 다윈이 중요한가>(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등 세 권이며, 모두 출판사에서 선물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만약에 한 권만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고를 것이다.

초능력, 임사 체험, 외계인 납치, 창조 과학, 홀로코스트 부정론, 마녀…. 우리는 왜 이런 이상한 것을 믿을까? 셔머에 따르면, 우리는 그냥 믿는다. 우리는 진화 과정 속에서 믿음이라는 엔진을 두뇌에 장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불신, 회의, 과학 이런 게 훨씬 더 어렵다.

300만 년 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사바나 지역을 걷고 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상상해 보자. 일행 중에는 유명한 루시(Lucy)도 있다. 덤불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서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그냥 바람 소리라고 여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맹수가 접근하는 소리라고 경계하는 것이다.

만약에 맹수라고 생각했는데 바람이었다면, 괜히 쫀 게 씁쓸하기는 해도 별 탈이 없다. 그런데 바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맹수였다면, 방심에 따른 혹독한 결과가 이어진다. 맹수의 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현상에서 패턴을 찾고 그 패턴에서 공격적이고 의도적인 위험을 상정하는 경향이 강한 개체들이 진화 과정에서 선택될 수밖에 없다.

진화의 산물인 우리는 항상 패턴을 찾는다.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느낌이 드는 경우에는 심지어 없는 패턴마저 발견한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수비에 관한 미신이나 징크스는 거의 없다. 수비수는 90~95퍼센트의 성공률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격수에게는 온갖 미신이 있다. 그들의 성공률은 기껏해야 20~30퍼센트에 불과하고 열에 일곱 여덟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편집증, 망상, 환각 이런 것들은 틀린 패턴을 발견한 결과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항도파민제인 L-DOPA를 주입하면 그런 경향이 사라진다. 반대로 코카인 같은 도파민 촉진제를 주면 도취적이고 창의적인 상태가 되어 더 많은 패턴을 보게 된다. 도파민 수치가 너무 높으면 어디서나 패턴을 발견하고 망상에 빠지게 되며, 도파민 수치가 너무 적으면 지나치게 회의적으로 변하여 진짜 재미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놓치게 된다. (중용은 항상 어렵다.)

어떤 패턴은 진짜고 어떤 패턴은 가짜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승진 여부가 궁금했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점을 보러 갔다. 점쟁이는 "기다리면 아버지는 과장이 될 것이고 큰아들은 교수가 될 거다"라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과장이 되셨고, 큰아들은 (비정규직이기는 하지만 잠시 동안이나마) 교수가 되었다.

광장시장 수영복 가게의 외동아들인 한 친구는 "스무 살까지는 물을 조심해야 해"라는 점쟁이의 말 때문에 정말로 스물다섯 살까지 수영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으며, 점쟁이 덕분에 아직 살아 있다. 맞춘 부분만 믿으면 미신이고 맞춘 부분뿐만 아니라 틀린 부분도 따져보는 게 과학이다.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총 회수보다 맞춘 회수가 두드러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과학은 현상이 아니다. 과학은 동사다. 현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이다. 모든 현상에 대한 자연스러운 설명을 찾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크롭 서클을 지구에 남기기 위해 엄청난 거리의 성간 공간을 여행해 왔을지, 아니면 누군가가 장난으로 했을지 모든 경우를 따져봐야 한다. UFO는 외계 우주선인지 아니면 지각 인지 오류이거나 아예 속임수인지 따져야 한다.

마이클 셔머는 모든 사물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회의론을 전파하고자 강연 및 저술, 대중 매체 활동을 벌이면서, 대중을 현혹하는 심령술사와 창조론자, 사이비 역사학자와 컬트 집단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 왔다. 과학과 이성 나아가 인류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정면으로 맞서며 대중을 선도해온 과학계의 전사라 할 수 있다. 그를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평했다.

"그는 이성의 힘으로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는 행동가이자, 대중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마이클 셔머의 나머지 두 책은 <진화 경제학>(박종성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과 <마법수학>(김명남 옮김, 민음인 펴냄)이다. 아마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 책이 나왔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책을 주문했다. 가슴이 살짝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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