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 송년호(71호)는 '2011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독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1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2030 세대'가 2012년 선거판에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서민 복지 정치'라고 한다. 어느덧 복지와 복지 국가는 한국 사회와 정치를 뒤흔드는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화두를 둘러싼 토론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나라가 북유럽의 스웨덴이다. 물론 복지 국가 스웨덴에 관해 그간 나온 책들은 꽤 있다. 많은 책들이 오늘날 스웨덴의 훌륭한 복지 제도에 관해 어떤 것은 거칠게, 어떤 것은 세밀하게 소개하고 서술한다. 그런데 복지 국가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토론이 이제 막 시작된 우리나라의 현 단계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오늘날의 스웨덴이 아니다.
그보다는 스웨덴 모델의 큰 얼개가 형성된 1930~40년대가 우리에게 더 많은 시사점을 준다. 홍기빈의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책세상 펴냄)가 바로 그런 책이다. 이에 반해 그간 다른 책들에서는 1990년대 이후의 새롭게 변모하는 스웨덴 모델만을 다루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 세밀한 묘사들에 불과하다.
▲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웨덴 모델의 커다란 전체적 설계도이지 미세 부품에 관한 상세 소개도가 아니다. 임노동자기금과 중앙 노사 교섭 등 부분적 제도의 상세 설계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기업 및 금융에 대한 사회적 통제 등 더 큰 얼개의 개요였던 것이다.
더구나 비그포르스가 살았던 시기의 스웨덴에서 진행된 여러 가지 정치경제적 논의 지형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먼저 1930년대의 스웨덴 사회는 세계 대공황에 직면하여 자국의 경제 사회 구조 전체를 어떻게 자유 시장 만능주의로 벗어난 새로운 길, 즉 복지 국가로 전환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그 동안의 시장 만능주의를 벗어나 어떻게 사회 경제의 전체적 메커니즘을 새롭게 전환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 이 책에서 홍기빈은 비그포르스의 사상을 빌려 '잠정적 유토피아'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게 크게 결여된 것은 먼저 유토피아에 대한 열정인데, 왜냐하면 '당장 실현 가능한 현실적 개혁'에 매달려온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진보적 시민운동은 불가피하게 커다란 꿈과 이상(理想), 즉 유토피아적인 이상을 상실한 채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보편적 복지 국가 패러다임과 병행하여 새롭게(?) '경제 민주화' 패러다임이 떠오르고 있다. 최근 문재인과 김부겸, 유종일, 이종걸 등 유력한 차기 야당 정치인이 앞 다퉈 "2차 분배인 복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1차 분배인 경제 민주화"이며 따라서 "재벌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서민 복지 이슈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렇듯 기업 세계와 노동 세계의 민주화를 향한 유용한 이념으로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듯이 비그포르스가 이끌었던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기업과 노동의 민주화'를 위해 제시했던 해법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것은 연대 임금과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산업별 노동조합과 중앙 교섭, 그리고 선별적 산업 정책과 결합된 대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 등 사회민주주의만의 고유한 해법이었다.
총선과 대선의 드라마가 펼쳐질 2012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올해 너도나도 '복지 국가'를 입에 올렸던 정당·정치인들이 내년에 벌어질 투전판에서 그것을 잊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들이 시장 만능주의의 폐해와 새로운 정치,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삶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올해를 이 책으로 마무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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