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 투자자-국가 분쟁)' 제도를 놓고 논란이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31일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의 공공 정책 자율권 확보 현황'이라는 보도 자료를 내 "ISD로 인해 한국 정부의 공공 정책이 무력화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ISD 제도를 연구해온 남희섭 변리사가 이런 외교통상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다음은 지난 3일 첫 번째 기고에 이은 두 번째 반박이다. (☞관련 기사 : "2006년 ISD 결사 반대한 홍준표가 옳았다!") |
간접 수용의 문제점
지난 3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한 이 글의 제1편에서는, 공공 정책 재량권을 확보했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협정문에는 어떠한 공공 정책에 대해서도 유보를 하지 않은 의무가 2가지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유보하지 않은 의무 중 하나인 '최소 대우 기준'을 중심으로 이러한 유보의 포기가 왜 타당하지 않은지 설명했다.
이제 나머지 의무인 '수용 및 보상' 의무를 살펴보자. 제1편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투자자의 재산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몰수하겠다고 하기는 어려우므로, 이 의무 역시 성질상 포괄적으로 유보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어떠한 투자 협정에서도 '수용 및 보상' 의무를 유보한 예는 없다. 그래서 이 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ISD 분쟁이 많이 있었다.
홍석모에 따르면, 2009년 9월 현재 총 61건의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ISD 사건 중 간접 수용과 관련된 주장이 포함되어 있는 사건이 42건으로 68.9퍼센트에 달한다. (홍석모, '간접 수용을 둘러싼 한미 FTA 투자 분쟁 예측 및 대책', <법학연구> 제36집, 2009, 333쪽)
그럼, 이 분쟁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국가가 마구잡이로 수용을 해서 생긴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가는 정당한 공공 정책의 집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투자자들은 자기의 투자를 수용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쟁이 생긴 것이다. 한미 FTA에도 이런 가능성이 그대로 존재한다. 협정문의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면, 한미 FTA에서 말하는 '수용'이 재산을 몰수하는 '직접 수용'만 포함하지 않고, '간접 수용'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ISD 분쟁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예를 하나 들자. 캐나다 정부가 ISD에 회부된 최초의 사건(1996년 3월)은 재산의 몰수와는 상관없는 의약품 허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멕시코 제약 회사 시그나(Signa)는 독일계 다국적 제약 회사 바이엘(Bayer)이 판매하는 시프로(Cipro, 9·11 이후 탄저병 예방제로 유명세를 탔다)의 복제 약을 만들어 캐나다 식약청에 품목 허가 신청을 냈다.
그런데 바이엘이 시그나의 복제 약이 자신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캐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관련 법률에 따라 시그나 복제 약의 품목 허가를 30개월 동안 보류했다. 시그나는 이 품목 허가 보류 조치가 수용에 준하는 조치 즉, 간접 수용에 해당한다며 ISD를 제기하면서 약 5000만 캐나다달러의 보상을 요구했다. (☞바로 보기 : 시그나의 ISD 청구서(중재 의향서))
(이 사건은 더 진행되지 않았는데, 시그나 측 변호사의 진술에 따르면, 캐나다 대법원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고, 캐나다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야 하는 멕시코 제약 회사 입장에서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한 분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미 FTA에서 간접 수용에 대한 국가의 보상 의무를 규정한 또 다른 문제점은 이것이 우리 헌법과 맞지 않다는 데에 있다. 법무부가 펴낸 <한국의 투자 협정 해설서>(2010년)의 표현을 빌리면 "간접 수용이란 의미는 우리 법제상 없는 개념"이다(210쪽).
원래 투자 협정에서 '수용 및 보상' 규정을 두게 된 이유는 외국인 자산의 국유화 조치에 대한 보상 문제 때문이었다. 투자 유치국의 법률에 따른 보상이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불만이었던 것이다. 이런 국유화 조치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나라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신생 독립국에서 많이 단행되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양자 간 투자 협정(BIT)을 맨 처음 맺은 나라는 제2차 세계 대전에 패한 독일이고, 유럽 국가들은 독일을 따라 BIT를 체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이러한 국유화나 직접 수용은 크게 줄어든 반면 과세 조치나 환경 조치 등으로 인해 직접 수용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는 조치 즉, 간접 수용이 문제되기 시작하였다(<한국의 투자 협정 해설서>, 104쪽). 그래서 미국은 양자 간 투자 협정 모델에 간접 수용에 대한 보상 원칙을 도입하는데 이때가 1982년이다(법무부 국제법무과, <국제 투자 분쟁 공무원 교육 자료>, 2010년, 104~105쪽).
이처럼 간접 수용이 포함된 모델 협정에 기반을 둔 FTA가 바로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그런데 1994년에 NAFTA가 발효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간접 수용을 근거로 ISD를 제기하여 국가의 환경이나 보건 등에 관한 규제를 공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간접 수용을 인정한 최초의 NAFTA 사례인 메탈클래드 사건(Metalclad vs. Mexico, 2000년)에서 중재 판정부는 간접 수용의 법리를 확장 해석하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도 간접 수용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되었다. 국가의 공공 정책 재량권이 훼손되고 미국인 투자자보다 외국인 투자자가 더 많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여 미국 의회는 2002년에 투자 협정의 간접 수용을 미국 판례법에 따른 간접 수용 법리와 일치하도록 변경하고, 외국 투자자가 미국 투자자보다 더 보호받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리고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 2004년판에서는 간접 수용 법리를 제한하는 내용의 부속서를 채택했다.
한미 FTA의 수용과 관련된 내용 대부분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정부가 주장하는 간접 수용의 제한들은 극히 일부분(특별 희생, 부동산 가격 안정화)을 빼면 모두 미국의 모델 협정에서 따온 것들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미국의 법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국가의 조치가 수용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로 <부속서 11-나>에 열거되어 있는 (1) 정부 행위 경제적 영향, (2) 합리적 기대의 침해 정도, (3) 정부 행위의 성격 등 3가지 요소는 모두 미국 대법원의 판결(Penn Central Transportation Co. vs. City of New York, 438 U.S. 104 (1978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공공 정책을 간접 수용으로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 안정화" 등을 열거해 두었지만, 단서를 달아 공공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추어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에서는 간접 수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김종훈 현 통상교섭본부장. 이들 통상 관료, 통상 법률가에게 대한민국 공공 정책의 미래를 맡기는 게 과연 민주주의인가? ⓒ연합뉴스 |
통상 관료와 통상 법률가의 손에 맡긴 공공 정책의 운명
한미 FTA는 공공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사법 기관이 아닌 행정부의 통상 관료 또는 개인 법률가(중재인)들이 판단하도록 했다. 이를 제도화하는 통로가 바로 ISD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의 신분이 아닌 개인 자격의 중재인이 ISD 사건에서 판정을 내린다는 점은 이제 상식이 되었으므로, 통상 법률가들의 손에 공공 정책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데에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통상 관료들은 공공 정책을 어떻게 좌지우지하나?
협정 제11.23조에 이런 조항이 있다. 투자자가 ISD를 제기한 조치가 공공 정책으로 유보되었다고 국가가 항변하는 경우 중재 판정부는 분쟁 당사자인 국가의 요청에 따라 공동위원회의 해석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공동위원회가 해석 결정을 내리면, 중재 판정부는 이 결정을 따라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공동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될까?
협정 제22.2조에 따르면, 공동위원회는 한미 양국의 공무원으로 구성되고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과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공동의장을 맡는다. 공공 정책의 정당성이 통상 관료들의 손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동위원회는 공공 정책의 정당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설립하는 조직이 아니다. 협정문에는 "한미 간 무역 관계를 보다 증진시키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공동위원회의 임무로 명시되어 있고(제22.2조 제2항 다호), 한미 FTA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투자 환경을 창출"하고, 한미 간의 "투자를 자유화하고 확대"하며, "투자에 대한 장벽의 축소 또는 철폐를 추구"하는 협정이다(협정문 서문).
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장벽으로 작용할 우리 공공 정책을 통상교섭본부장이 얼마나 옹호하는 해석 결정을 내릴까? 그 동안 통상교섭본부는 우리 농산물 우선 사용을 규정한 지방자치단체 조례(전라북도, 경상남도)를 무효화시킨 바 있고, 중소상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법(유통산업발전법), 상생법(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는 국회에 어깃장을 놓았고, 건설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굴삭기 수급 조절 제도를 좌절시킨 바 있다.
한미 FTA의 ISD가 국제 표준인가?
정부는 한미 FTA에 포함되어 있는 ISD가 "우리가 체결 발효한 85개 투자 협정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2500여 개에 달하는 투자 관련 국제 협정에 규정되어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한다. 국제적으로 모두 다 하는데, 웬 트집이냐는 얘기다. 정부의 설명처럼 국제적으로 많은 투자 협정에 ISD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ISD가 한미 FTA에 포함되어 있는 ISD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사실 왜곡이다.
ISD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중재의 기본인 동의에 대한 재량권이 보장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협정 의무 위반인 경우에만 제기할 수 있는 ISD와 협정과는 무관한 별도의 투자 계약에 대해서도 제기할 수 있는 ISD, 투자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등으로 ISD의 유형을 나눌 수 있다. 한미 FTA에 포함되어 있는 ISD는 가장 포괄적이고, 동의에 대한 국가의 재량권을 박탈한, 그래서 과거의 ISD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보도 자료 제11-1004호, 2011년 11월 3일), 2011년 9월 1일 현재 우리나라에 발효 중인 7개 FTA 중 6개, 양자 간 투자 협정(BIT) 85개 중 81개에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한미 FTA와 같이 사전 동의 규정이 존재하는(그래서 동의에 대한 국가의 재량권이 박탈된) 협정은 30개에 불과하다.
전체 81개 협정 중 사건 동의 규정 대신 동의 의무 규정이 포함된 협정이 40개인데, 정부는 동의 의무 규정과 사전 동의 규정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정부 입장을 지지할 수 없다. 동의 의무 규정이란 ISD 절차에 참여할지를 국가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동의를 하지 않으면 협정 위반이 되도록 한 규정을 말한다.
협정 위반이 되면 투자자-국가 분쟁이 아니라 국가-국가 분쟁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동의를 하지 않으려면 상대국과의 분쟁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점에서 동의 의무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한국 정부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조치(예컨대, 보험 약가를 미국 제약 회사가 신청한 것보다 낮게 정한다거나, 미국 제약 회사가 신청한 품목 허가를 거절한다거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에 대해 ISD가 제기된 경우, 외교적 해결을 위해 ISD 절차에는 동의를 하지 않을 재량권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미 FTA는 ISD의 대상이 되는 투자의 개념도 매우 넓게 정의한다. 가령 한-칠레 FTA, 한-싱가포르 FTA에서는 협정 의무 위반인 경우에만 ISD를 제기할 수 있지만, 한미 FTA에서는 투자 인가, 투자 계약 위반인 경우에도 ISD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한-칠레 FTA에서는 이미 설립된 투자에 대해서만 ISD를 제기할 수 있지만, 한미 FTA는 '설립 전 투자'도 투자 개념이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ISD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한미 FTA의 ISD와 아무런 구별도 하지 않고 2500개의 투자 협정에 규정된 국제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ISD는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가?
ISD에 대한 정부의 마지막 반론은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유용"하다는 것이다. 그럼 85개에 달하는 투자 협정을 체결한 나라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그 동안 ISD를 통해 얼마나 안전을 보장받았을까? 정부가 국회 박주선 의원의 질의에 제출한 공식 답변을 통해 그 실상을 알아보자. 아래 표가 정부 답변이다.
○ 질문 : 현재 ISD가 포함된 BIT를 체결한 국가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ISD를 제기한 사례. ● 답변: 현재까지 우리 기업이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ISD를 제기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음. ○ 질문: 현재 ISD가 포함된 BIT를 체결한 국가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ISD를 제기하지 않고 투자 유치국의 국내 법률에 따라 손해 배상을 청구하거나 투자 유치국의 조치를 철회 또는 변경시킨 사례. ● 답변: 상기 사례에 대해서는 외교통상부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음. 상기 사례에 대해서는 소관 부처(법무부)에서도 파악하고 있지 아니함. |
정부의 공식 답변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 기업이 해외 투자를 하여 ISD를 통해 보호받은 사례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결국 정부가 얘기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실증되지 않은 일종의 무증거(evidence zero) 영역이다.
실제 활용은 되지 않았지만, ISD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또 다른 논거는 투자 유치국의 법정이 아닌 제3의 중재 기관에서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분쟁 해결을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ISD 사건을 처리하는 중재 기관이 사법부보다 더 공정한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주장은 국가의 사법 작용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만약 미국 법원이 소송에서 한국 기업을 차별한다면, 이는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사안이다. (계속)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