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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드라마 없었던 대구, 아쉽고 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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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드라마 없었던 대구, 아쉽고 또 아쉽다!

[예병일의 '스포츠 뒤집어보기'] 불운한 대구

1988년 서울올림픽 100미터 달리기 경기에서 2연패를 노리던 미국의 칼 루이스는 자신의 최고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우승자는 라이벌인 캐나다의 벤 존슨이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존슨을 축하하며 함께 경기장을 돌 때만 해도 자신이 우승자로 남게 될 줄을 몰랐을 테지요. 그러나 경기 직후 존슨의 소변에서 금지 약물이 검출됨으로써 존슨은 3일 만에 쫓기듯이 한국을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도 모두 말소되었습니다.

9.92초라는 루이스의 기록은 1987년에 로마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존슨의 기록(9.83초)을 대신하여 세계 신기록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올림픽에서 세운 9.79초라는 최고 기록이 말소된 것은 물론 1년 전에 세운 세계 기록까지 말소되면서 존슨은 육상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습니다.

이번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승을 다투어야 할 세 선수 중 두 명이 부상으로 출전을 못하게 되더니 마지막 한 선수는 출발선에서 단 한 번의 실수로 경기에 출전조차 못하고 쫓겨남으로써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을 허전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앞으로 두고두고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남자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유력한 우승후보 우사인 볼트가 뛰어보지도 못하고 퇴장을 당해 경기장에 모인 관중을 어이없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듯합니다. 다행히 볼트는 3일 남자 200미터 달리기에서 우승해 100미터 달리기의 한을 풀었습니다.

▲ 3일 남자 200미터 달리기에서 우승한 우사인 볼트. ⓒ뉴시스

볼트보다 앞서 부정 출발을 한 김국영

볼트의 부정 출발은 이번 대회의 여섯 번째 부정 출발이었습니다. 한국의 김국영도 남자 100미터 달리기 예선 경기에서 부정 출발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내심 한국 신기록을 노리느라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며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우사인 볼트가 쫓겨나는 걸 보니 김국영에게도 아쉬움이 더 크게 남습니다. 이렇게 큰 대회의 수많은 관중 앞에서 한국 신기록이라도 세워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대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서말구가 10.34초의 기록으로 한국 신기록을 세운 것은 당시 신문에 작게 나왔을 뿐입니다. 그 때만 해도 서말구의 기록이 장차 우리나라 매스컴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한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몇 년간 서말구는 자신이 세운 기록에 스스로 도전하는 경기를 계속하다 은퇴를 했습니다. (서말구는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트 팀에서 트레이닝 코치로 일하면서 1984년 한국 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트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남자 200미터 달리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장재근이 등장했습니다.

장재근이 1985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20.41초의 기록으로 200미터 한국 신기록을 수립할 때만 해도 100미터와 200미터 달리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겠다는 그의 목표는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서말구의 기록에 0.01초 차이로 접근한 상태였고, 1962년생인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런 기대는 당연했습니다.

당시 남자 200미터 달리기 아시아 신기록인 장재근의 20.41초는 1983년에 개최된 제1회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캘빈 스미스(20.14초)에 이어 2위에 오른 엘리엇 쿼의 기록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26년째 한국 기록으로 남아 있는 채 누군가가 새 기록을 세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1985년에 10.39초를 기록한 심덕섭에게 한국 신기록의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으나 강산이 한 번 변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994년에는 진선국이 10.37초를 기록하면서 한국 신기록 수립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기는 했으나 그러나 그 후로 누구도 한국 기록에 근접한 기록조차 내지 못한 채 또다시 강산이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전덕형, 임희남이 맞수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100미터 한국 기록이 깨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2009년이 되자 20세 전후의 여호수아, 김국영, 김민균이라는 신예가 등장하여 10.4~10.5초대의 좋은 기록을 보여줌으로써 100미터 한국 기록은 백척간두에서 새 기록 보유자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6월 7일, 전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김국영, 임희남, 여호수아가 각각 10.23초, 10.32초. 10.33초를 기록하면서 세 명이 동시에 한국 기록을 수립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김국영의 기록 10.23초는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 같은 조에 출전한 8명의 선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이었는데, 부정 출발로 경기도 못해서 정말로 아쉽습니다.

볼트의 퇴장이 만들어낸 저조한 100미터 달리기 기록

4일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는 전반적으로 기록이 나쁜 대회로 폐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사인 볼트가 경기장을 빠져나간 후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승을 한 요한 블레이크의 기록 9.92초는 13차례의 세계 선수권 대회 100미터 기록 중 9번째입니다. 1997년 이후 가장 나쁜 기록으로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승한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킴 콜린즈로 그는 2003년 대회에서 10.07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 2, 3위의 기록을 합산해 봐도 1983년(10.07+10.21+10.24=30.52초)과 1987년(9.93+10.08+10.14=30.15초, 벤 존슨의 9.83초 기록은 후에 말소)의 첫 두 대회와 2003년(10.07+10.08+10.08=30.23초) 대회를 제외하면 이번 대회 기록은 끝에서 13차례의 대회 중 10위에 해당합니다(9.92+10.08+10.09=30.09초).

가장 기록이 좋았던 2009년 대회에서는 우사인 볼트, 타이슨 게이, 아사다 파월이 각각 9.58, 9.71, 9.84초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2년 전 세계 100미터 달리기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이끌어 낸 세 선수 중 두 선수가 불참하는 바람에 애초 이번 대회 남자 100미터 달리기는 김이 빠진 상태로 예선 경기가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부상으로 제대로 훈련을 못했다고는 하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할 수 있는 우사인 볼트에게 은근히 세계 신기록을 기대하는 상태였으므로 그래도 육상 경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남자 100미터 달리기를 기다렸는데 결과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으니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 기록의 주인공인 김국영의 나이가 일천한 만큼 이번의 실패를 교훈삼아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또 비록 10종목에서 10위 안에 들겠다는 대한육상연맹의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앞으로 한국 육상도 앞으로 세계로 도약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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