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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과 자해로 빠져든 '엄친아'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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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과 자해로 빠져든 '엄친아'의 비밀은…

[프레시안 books] 황선미의 <사라진 조각>

여기 그림판이 하나 있다. 이 그림판은 작은 조각들로 산산이 부서져 있어 처음 그림이 어떠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림판의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어려운 퍼즐을 맞추듯이 부서진 조각들을 연결해야 한다.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이 삶의 한복판에서 엉켜버린 그림판과 맞닥뜨린 유나는 그림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나가야만 한다. 퍼즐을 맞추는 데 필요한 친절한 힌트도 없이 느닷없이 시작된 오빠의 방황과 고통 속에서 진실을 가리키는 마지막 사라진 조각까지 찾아내야 한다.

황선미의 <사라진 조각>(창비 펴냄)은 다른 성장 소설과 다르게 이야기가 아주 흥미진진하다. 청소년 소설답지 않게 소설의 첫머리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스릴러물처럼 긴장감도 느껴진다. 마지막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치밀한 구성과 박진감이 넘친다.

소설을 읽어 나가며 만나는 장면과 대화들은 진실을 맞추는 퍼즐 조각들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신유나는 오빠를 중심으로 벌어진 여러 사건들의 그림을 하나씩 맞추며 사건의 진실을 확인해 나간다. 마침내 오빠의 기억 상실 속에 감추어진 마지막 사라진 조각을 맞추었을 때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진실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동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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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조각>(황선미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신유나는 중학교 2학년 사춘기 소녀이다. 회사 중역인 아버지와 교양 있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잘 자란 학생이다. 아니 사실은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융통성 없는 훈육 방식에 질려 있는 소심하고 고민 많은 여자애이다. 이런 유나를 정말 주눅 들게 만드는 건 자신보다 한 학년 위인 오빠 신상연이다.

신상연은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수재로서 누가 봐도 잘나고 똑똑한 이시대의 '엄친아'다. 그토록 엄마의 삶의 기둥이며 자랑이었던 오빠가 갑자기 망가지기 시작한다. 엄마 몰래 여자 친구를 만나고, 학원을 빼먹고, 외박을 하고, 집단 성폭행 사건에 휘말린다. 오빠는 사고 직후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리며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칼로 책상을 찍은 위험한 자해 행위를 하는 등 견딜 수 없이 힘들어한다. 같은 사고에 휘말린 오빠의 친구들이 모두 태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황사가 짙게 깔린 봄날 유나가 동물원에 사자를 만나러 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유나의 불안한 심리처럼 황사로 인해 온 세상이 온통 어둡고 우울하던 날 집안에서 늘 그림자처럼 주변인으로 서성거리던 유나는 문득 사자를 보고 싶어 한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아슬란처럼 위풍당당하게 갈기를 바람에 날리며 도도하게 서있는 사자를 보기를 원했지만 유나는 동물원에서 울타리에 갇힌 채 사람들의 눈요깃감으로 전락한 상처받은 사자를 만난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자의 눈빛에서 꺾이지 않는 야생의 본능과 자유를 갈망하는 고독함을 직감하고 그 사자를 가슴에 품게 된다.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걸음씩 걸어 나가는 유나의 용기는 유나의 가슴 속에 웅크린 사자 덕분일까? 오빠를 기억 속에 감추어진 마지막 조각까지 찾아내서 유나는 드디어 그림을 완성하고 그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한다. '나비'라는 애칭을 쓰는 사진작가, 모델 활동을 하고 그림을 그렸던 매력적인 여인, 나비는 자신의 몸이 천천히 굳어지는 병마 속에서 늘 자신이 낳은 애벌레를 그리워한다.

작은 근육 하나까지 자신의 의지로 쓸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나비는 온몸을 모아 기도하듯 자신이 낳은 애벌레를 볼 수 있기를 마지막까지 소망한다. 나비는 자신의 애벌레를 눈도 푸르고 머리카락도 푸르게 그려놓고서 남몰래 애벌레를 사랑한다. 오빠의 사라진 조각 그림으로 들어가 숨겨진 여인 나비를 만난 유나가 확인한 애벌레는 바로 유나 자신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경준은 유나에게 글귀 하나를 보낸다.

'너의 사자가 남긴 갈기야. 아프리카에 가거든 야생에 뿌려 줘 미안하다. 상처가 아픔이라는 것 너무 늦게 알아서.'

이 글귀처럼 이 소설을 읽어 나가다보면 무수한 인물들의 상처와 대면하게 된다. 자신이 낳았으나 키우지 못한 딸을 날마다 그리워만 한 채 온몸이 부서져 간 나비의 상처, 성폭행의 경험으로 심신이 망가져 버린 재희의 상처, 남편의 외도로 생긴 딸을 키우며 번민했을 엄마의 상처, 가족의 아픔과 친구들의 배신,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기억 상실까지 걸려버린 오빠 상연의 상처,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상처라는 것을 알아버린 유나의 상처까지 과연 그 인물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딛고 아름다운 별로 빛날 수 있을까?

진실을 알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강한 용기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유나의 나비 찾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감만 가득했던 날 사자 한 마리를 가슴에 품은 유나는 경준과 재희의 도움을 받아가며 나비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오빠 상연도 학원 대신 나무 공방을 찾아 나무로 조각 인형을 만들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힘든 와중에 유나의 진실 찾기를 도와준 재희도 다른 이의 아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경준이도 다른 이의 상처를 들여다 볼 줄 아는 조금씩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깊은 밤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둠 속에 별들이 드러난다. 저마다의 빛을 가진 별들은 원래 홀로 빛나는 존재였지만 다른 별들과 선을 그어 모양을 만들어 나가게 되면 신기하게도 전혀 다른 빛을 가진 존재로 빛나게 된다.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아처럼 별자리 속의 별은 원래의 빛보다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다. 사람도 원래 혼자가 아닌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사랑할 때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아 늘 혼자라고 생각했던 유나의 주변에는 자신이 알지 못한 존재 나비가 있었고 끝까지 동생을 보호하려 했던 오빠의 배려가 있었다. 어둠이 짙어져야 더욱 빛나는 별처럼 상처만큼 빛나는 유나의 별은 온전히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지막 드러난 그림판에서 유나의 별도 별자리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 펴냄)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면서 온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작품이 되었다. 동화에서 시작된 그의 글쓰기가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사계절 펴냄)에 이어 <사라진 조각>에서 다시 청소년 소설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다.

청소년 시기는 유나나 상연같이 극적인 상황이 아닐지라도 무수한 혼란과 방황을 하는 시기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잎싹은 자신이 선망하던 자유의 공간에서 사랑하고 새로운 꿈을 꾸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와 만나 끊임없이 투쟁해 나가야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애벌레들,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처럼 도도한 사자 한 마리를 품으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가 전하는 말처럼 상처가 아픔임을 안다면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는 별자리가 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아가 진실과 직면하는 용기가 있다면 모든 오늘의 애벌레들이 빛나는 내일의 나비가 될 수 있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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