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쉽사리 들려주지 못하고, 설령 한다 하더라도 주저하면서 더듬거리다 상대방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며 황급히 "그냥 심심풀이로 끄적거리는 거야"라고 수습하고, 밤늦게 혼자 있는 시간에 노트를 꺼내어(혹은 남들이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파일명을 이상하게 만들어둔 문서 파일을 불러내어) 낮에 떠올랐던 어떤 아이디어가 날아갈까 두려워하며 황급히 몇 줄 써내려가고, 다시 읽어보며 한숨을 쉬고, "나에겐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하고 뇌까리는 모습 같은 것.
<유혹하는 글쓰기>(김진준 옮김, 김영사 펴냄)에서 스티븐 킹은 첫 장편 <캐리>(한기찬 옮김, 황금가지 펴냄)를 쓰던 나날을 상당히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형편없는 월급을 받으며 고등학교 문예 창작 교사로 일했고 여름 방학에는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리고 셋집 현관에 주저앉아, 혹은 임대용 트레일러 세탁실의 아동용 책상에 불편하게 쭈그리고 앉아 틈틈이 <캐리>를 썼다.
"3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면, 여전히 팔꿈치에 가죽을 덧댄 허름한 트위드 외투를 걸친 모습,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 카키색 갭 바지 위로 똥배가 출렁거리는 모습이었다. 펠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고, 안경알은 더 두꺼워지고, 비듬도 늘어나고, 책상 서랍 속에는 미완성 원고가 예닐곱 편쯤 들어있는데, 이따금씩 (대개는 취했을 때) 끄집어내어 만지작거린다. 누가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책을 쓴다고 대답한다.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가진 문예 창작 선생이라면 여가 시간에 할 일이 그것 말고 또 있겠는가? 그리고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왜냐하면 쉰 살이나 예순 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소설가도 있으니까."
어쨌든 그는 글을 썼다. 그리고 여고생의 심리에 대해 잘 모른다는 자격지심을 이겨내고, 첫 생리를 맞이하며 자신에게 감춰져 있던 염력을 자각하는 왕따 여고생을 그린 첫 번째 장편 <캐리>를 완성했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스티븐 킹이 되었다.
▲ <캐리>(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
캐리는 이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단지 자신이 피를 흘린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며 울부짖는다. 다른 여자애들은 혐오감과 잔인한 즐거움에 휩싸여 생리대를 집어던지며 "틀어막아, 틀어막아, 틀어막아"라고 합창한다. 견딜 수 없는 수치심으로 뒤범벅되어, 캐리는 어린 시절 이후 잊고 있던 염력의 재능을 자기도 모르게 발휘한다. 샤워실의 전등이 파직 하고 나가버린다.
이 사건 이후 캐리를 놀렸던 여자애들 무리 중, 수지 스넬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녀는 자신이 '순응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어떻게든 캐리에게 보상을 해줌으로써 스스로 일종의 정화 의식을 치르려 한다.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며칠 뒤로 다가온 봄 무도회다. 수지는 자신의 멋진 남자친구 토미에게 "나 대신 캐리와 함께 봄 무도회에 가줘"라고 애원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종파에 심취한 캐리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육체는 부정하고 더러운 것, 여성성의 발현은 죄악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주었다. 캐리는 잊고 있던 염력이 되살아난 후, 어머니와 주님에 대한 공포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한편 샤워실 사건 이후 캐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소녀 크리스는 남자 친구 빌리를 끌어들여 끔찍한 사건을 획책한다. 바로 무도회날 밤 캐리에게 돼지 피를 뒤집어씌우는 것.
아무것도 모른 채 토미와 함께 무도회장에 들어서,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운 기적 같다고 느끼며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어'라는 희망에 부풀어있던 캐리에게 시뻘건 썩은 피를 양동이채 퍼붓는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을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에 휩싸인다.
<캐리>는 스티븐 킹이 원숙기에 접어들어 발표한 걸작들(<그것>, <샤이닝>)에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빈약해보일 수 있다. 작가 자신이 고백했듯 여고생들의 불안정하고 때로 잔인한 심리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현실감이 다소 부족했고, 대학살극의 전모를 밝히기에는 (공포 소설 내의) 개연성도 겅중겅중 건너뛰는 편이다.
특히 캐리의 최후를 묘사하는 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캐리>의 미덕은 바로 그 단점이 거꾸로 10대들의 롤러코스터 같은 영혼과 기이하게 닮았다는 것, 결과적으로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잘 읽힌다는 점이다.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작가 온다 리쿠는, <캐리>와 비슷하게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다룬 첫 번째 장편 <여섯 번째 사요코>(오근영 옮김, 노블마인 펴냄)에 대해 "첫 소설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기세 좋게 써내려갔다"라고 회상한 바 있다. <캐리>에서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
온 세상으로부터 잊힐까 두려워하는 인정 투쟁의 다급한 욕구, 타인과 조금 다르기 때문에 조롱받고 학대받는 이들 모두를 대변하는 카니발, '영원한 검은 굴'처럼 결국 쓰라린 자책감과 고독의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의 공포, 한 명의 희생자를 만들어냄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흔쾌하게 다질 수 있다는 안도감. 스티븐 킹은 정상/공동체와 비정상/소수의 대립에서 흘러나오는 공포의 토대를 첫 장편에서 완벽하게 다져놓은 것이다.
캐리는 "그건 가능할 거야, 가능할 거야, 그건… '살아남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공책에 밥 딜런의 'Just Like a Woman'의 가사를 되풀이 낙서하기도 했다.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여겼지 / 그 애가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는 / 그 갓난애를 축복해줄 수 없다고."
스티븐 킹 역시 집에 전화기를 놓을 수도 없었던, 자동차의 변속 기어가 고장 났지만 고칠 돈이 없어 그저 조심조심 몰고 다녀야 했던 곤궁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큼이나 비참하게 살아간 여자애를 상상했다. 처음에는 생리혈에, 그 다음엔 돼지 피에 뒤범벅된 여자애의 끔찍한 사춘기.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 주변 모두를 파괴함으로써만 비로소 수치의 연쇄 고리에서 놓여난 비극.
모든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 <캐리>만큼의 절박함과 터져버리기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갖추고 있다면, 나는 모든 작가의 첫 번째 소설만 골라서 읽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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