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청년 세대를 비난하는 기성 좌파와 우파의 관점이 약간 다르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좌파들은 청년 세대에게 너희들은 "완전히 탈정치화 되"어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나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전혀 없다고 지청구를 놓는다. "청년들이 소비주의에 물들어 자기만 생각하고 물질적인 욕망과 풍요에만 신경 쓰지 도통 사회적 존재로서 잭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우파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한다"면서 도전 정신이 없어서 공무원 같은 철 밥그릇만 찾는다고 타박한다. "청년 취업 문제는 아무리 토론하고 고민해도 우리 청년들이 패기를 갖고 벤처 기업을 창업하고 중소기업과 해외 일자리에 더 많이 도전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한 대목이야말로, 우파들이 청년 세대를 다그치는 전형적인 수사다.
이런 비난에 지은이는 좌파나 우파 할 것 없이,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를 자기 식으로 주조하는 데 동원하는 틀은 똑같이 '성장'이라고 주장한다. 좌파와 우파의 방점이 각기 '정치적' 성장과 '경제적' 성장에 놓여있을 뿐,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성장'에 대한 이야기에 기대어 현재의 대학생들을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기성세대의 청년층에 대한 비난이 '도덕적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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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지음, 푸른숲 펴냄). ⓒ푸른숲 |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는 서로 살아온 시대가 다르며, 시대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의 "앎"과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혁명·가족·사랑과 같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오히려 두 세대는 균열과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개와 고양이'를 떠올렸다. 그런데 마침 이 책의 말미에 지은이도 개와 고양이의 오인 구조를 예로, 세대 간의 소통 문제를 다시금 강조해 놓았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들고 고양이는 귀찮거나 경계를 할 때 꼬리를 흔든다. 그러니 개와 고양이가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리고 싸울 수밖에 없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비난하는 우리야말로 그들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386을 비롯한 좌우 기성세대들이 성장 신화를 신주단지처럼 여기며, 청년 시대를 겁박하는 데는 그들만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세대론에 불을 지른 우석훈·박권일의 <88만 원 세대>(레디앙 펴냄)에는 기성세대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꽤 비중 있게 기술되어 있다. 1970~1980년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들 가운데 특히 대학생들은, 그저 막걸리 잔을 앞에 하고 비장한 표정만 짓고 있어도 무려 '민주화 투사!'요, 오늘의 대학생들처럼 온갖 스펙(specification)을 쌓지 않고서도 대학을 졸업하면 '어서 옵쇼!' 하고 기다리는 대기업이 있었다. 그 때문에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경험으로 청년 세대를 포획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 시절과 같은 고도성장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Boys be MBtious!'라는 주문을 강요할 때, 청년 세대는 개인주의와 자기 계발로 대응한다. 그것이 학교·혁명·가족·사랑과 같은 똑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를 갈라놓는 원인이다. 기성세대들은 우정도 사랑도 모르는 청년 세대를 피가 통하지 않는 야차(夜叉)와 같이 여기지만, 그것은 성장 신화의 이면이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논리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려고 들 때, "그곳에는 다만 날것의 폭력과 존재에 대한 모독"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엄기호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해답이나 대안을 제시하거나 계몽하려고 들기보다, 그들의 언어를 경청하고 자신의 삶과 문제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이런 교수법의 배면에는, 인간이나 인간성은 원래부터 본질적거나 우선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형성되고 해체되는 부정형의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책은 헌사에도 나와 있듯이, 엄기호에게 삶과 학문의 방법을 전해준 조한혜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다. 특히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질문과 고민 속에서 서로를 혼효해 가는 과정이 그렇고, 삶 속에서 학문을 건져내려는 노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게 그렇다. 거기다가 이 책에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생경함을 씻어내지 못한 서구 이론과 이론가들의 사유가 잘 녹아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았던 한 가지 불만은, 혹시 엄기호가 청년 세대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을 면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가르치고 꾸짖는 엄한 '아버지 모드(mode)'에서,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 모드'로의 전환이 세대론의 해결이요, 청년 세대의 고민을 덜어주는 것이라는 순진 소박한 환상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 깔려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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