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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걸리버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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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걸리버도 아냐!

[親Book] 과학 소설과 휴고 건즈백

과학 소설의 시작을 메리 셸리나 에드거 앨런 포, 심지어 조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까지 거슬러 가는 의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현대적 의미의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은 1920년대의 발명품이다.

과학 소설 비평가 프리드먼은 과학 소설을 "1926년 휴고 건즈백의 <어메이징 스토리스(Amazing Stories)> 창간으로부터 시작된 미국 펄프 픽션 전통 내의, 혹은 그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의 집합"으로 구분을 지으며, 현대 과학 소설이 갖는 장르성을 시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이라는 말의 창시자이기도 한 휴고 건즈백은 본래 룩셈부르크 출신인 발명가로, 아마추어 라디오계의 선구자이자 '텔레비전'이라는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기술자이기도 하다. 건즈백은 과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 문학 시장을 창조하고 작가를 발굴했으며, 과학 소설의 독자들이 단지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SF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는 팬덤 문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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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인드 사이트>(피터 와츠 지음, 김창규 옮김, 이지북 펴냄). ⓒ이지북
이런 그의 이름은 독자들의 투표로 뽑힌 그해 최고의 과학 소설에 주어지는 '휴고 상'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즈백이 작가 시절 쓴 초기작 <랄프 124C 41+>가 아이디어회관 문고를 통해 <27세기 발명왕>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SF 전문 번역가이자 기획자로 한국어 SF 출판에 큰 역할을 한 김상훈이 건즈백을 음차한 '강수백'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휴고 건즈백이 말한 과학 소설이란 대체 무엇일까? 건즈백은 <어메이징 스토리스>에서 과학 소설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인 통찰이 혼합된 매력적인 소설 (…) 대단히 흥미로운 읽을거리일 뿐 아니라 언제나 교육적이다. 아주 알기 쉬운 형태로 지식을 제공한다. 오늘날의 사이언스 픽션에서 그려지는 새로운 모험들은 미래에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 작품을 문학과 소설의 영역 뿐 아니라, 진보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닦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지식에 확고한 바탕을 둔 진보적이고 교훈적인 문학이라니, 읽고 버리는 20센트짜리 펄프 잡지의 창간사 치고는 참으로 거창한 말이다!

비록 오늘날 과학 소설이 과학을 더 이상 건즈백이 염두에 두었던 '기술'에 한정하지 않고, 과학 소설이 미래를 예언하는 문학이라는 시각 또한 구식이 되었지만, 과학 소설이 사회의 진보를 추동해야 한다는 의식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많은 과학 소설 작가들은 사회의 변화에 민감했고, 거대한 사회적인 변화는 종종 과학 소설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특히 미국의 시민권 운동과 베트남전쟁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과학 소설이 사회 소설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이러한 사회 문학으로서의 과학 소설의 원형이 과학 소설의 진보성을 소리 높여 주장했던 휴고 건즈백에 대한 반발과 궤를 같이했다는 것이다. 휴고 건즈백은 유능한 출판인이었고 좋은 작품을 고르는 눈을 가진 편집자였으나, 공정한 사업가는 아니었고 작가이기 이전에 기술자였다. 기술적인 정확성과 엄밀성을 지나치게 요구해 브라이언 올디스 같은 작가로부터는 "문학적 종말을 불러왔다"는 비판을 들었고, 얼마 되지도 않는 고료를 너무 안 줘서 러브크래프트는 그를 "시궁쥐 휴고"라고 불렀다.

대공황 탓에 사업이 늘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휴고 건즈백을 비롯한 당시의 잡지사 사장들은 대부분 작가를 착취하는 자본가였다. 과학 소설 잡지를 팔아 우선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자기 월급을 챙기고, 그 다음으로 인쇄소 등에 대금을 지불했다. 그래야 다음 책도 찍어낼 수 있으니까. 사무실 세금과 관리비를 내고 돈이 남으면 그제야 작가에게 고료가 돌아갔다. 프레데릭 폴이 분명하게 지적하듯이 이는 "작가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출판계"에서 "명백히 비윤리적"이었지만, 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여전히 그에게 투고했고 잡다한 부업으로 생계를 지탱하며 글을 썼다.

이 시스템이 대공황의 그늘에서 미국이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1930년대까지 지속되면서, 처음에는 '과학 소설'의 대부인 건즈백이나 캠밸 같은 편집자에게 글을 파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발전했다. 빈곤과 시장의 문제가 작가 자신의 생존에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1950년대에 이르자 SF의 사회성과 실험성에 주목하는 작가들은 기존 잡지가 아니라 직접 창간한 잡지나 세미프로진을 통해 고료와 지면을 확보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프레데릭 폴, 도널드 볼하임 같은 작가들이 본업인 소설을 접고 출판에 전념한 것도 이러한 대안 모색의 한 흐름이었다. 그리고 이런 매체를 통해, 과학 소설은 1960년대 뉴웨이브라는 도약기를 맞이하게 된다.

휴고 건즈백의 이름은 그 해 최고의 SF에 주는 상인 휴고 상(휴고 상의 정식 명칭은 사실 '과학 소설 성취상'이다!)에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 소설은 건즈백이 말했던 발명과 교훈을 넘고 그가 구축했던 시장을 비판하며 나아가고 있다. 이 흐름을 추동한 사상이 바로 건즈백이 말했던 "과학 소설은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고 건즈백의 한계를 기록하고 반성하게 만든 힘이 건즈백이 충성도 높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처음 조직했던 과학 소설 팬덤이라는 사실은, 과학 소설사의 유쾌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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