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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문체'로 정조에 맞선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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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문체'로 정조에 맞선 그들은…

[親Book]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창작할 때 옛 법도를 소홀히 하지 않고 본받아 나가는 것을 말한다. 조선 후기 문체를 논할 때 법고(法古)란 전통적으로 가장 훌륭한 글의 전범(典範)으로 일컬어지는 과거 한당(漢黨)의 고전이 지닌 원칙을 고수하고 본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말이고 창신(創新)이란 과거의 고전들이 지닌 전형적인 형식을 거부하고 작가의 개성을 최대한 표출하여 독창적 문체를 구축하려한 새로운 창작 정신을 가리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17세와 18세기 청나라와 밀접한 교류를 통해 북경에서 수입되는 새로운 문화는 선진 문화를 갈망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가볍고 흥미로운 내용을 중심으로 작가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었던 청나라의 패관문체는 서울에 사는 양반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널리 퍼지며 유행했는데,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많은 조선 문인들이 밤을 새워가며 필사해 읽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정조는 스스로가 조선 유학의 도통을 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뛰어난 학자였지만 그가 추구했던 이상은 조선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왕도 정치의 구현에 있었다. 정조의 최고 업적의 하나로 평가받는 규장각 설립도 당시에 유행하던 패관문체에 물들어 있던 문풍을 배격하고 정통 주자학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경학 중심의 학문 전통을 세우는데 있었을 만큼 정조는 새로운 문체가 학문의 근간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하고 강하게 억압했다. 바로 문체반정이다.

▲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설흔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조선 시대 정조 임금 시절 이옥과 김려의 삶을 다룬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창비 펴냄)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온 이야기다. 제1회 창비 청소년 도서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고문(古文)을 따르지 않은 죄로 문체반정의 희생양이 된 실제 인물인 이옥과 김려, 두 선비의 일생과 우정을 그들이 남긴 작품과 함께 다루고 있다.

이들은 성균관 유생으로 뛰어난 학문과 글 솜씨로 전도유망했지만 비극적 삶을 살았다. 고문을 따르지 않고 당시 유행했던 저속한 패관문체를 따랐다고 하여 정조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옥은 양반이면 자동 면제였던 수군(水軍)에 충군되고 별시 초시에 장원으로 뽑혔지만 임금의 명으로 꼴찌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는다. 김려 역시 부령과 진해 같은 유배지를 전전하며 비극적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작가 설흔은 그들이 남긴 작품과 기록에 남은 행적을 중심으로 인간적인 삶의 구체적 모습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작품으로밖에 남지 않은 역사적 인물에 성격을 부여하여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물로 생생하게 만들어 낸다. 작가의 역사적인 안목과 인문학적 교양과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져 한 편의 문학 작품이 탄생하는데, 이 접점은 작품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런 재능 있는 작가들이 있기에 우리 같은 독자들이 시간의 어둠에 묻혀있는 가치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며 맛깔스런 역사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 수 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작품을 읽어나가며 만나는 시(詩)들은 실제 이옥과 김려가 남긴 것들로써 그들의 행적과 결부되어 작품의 이해를 돕고 좋은 글을 만나는 즐거움도 함께 맛보게 한다. 이야기의 핵심은 김려가 말년에 지방 현감으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옥의 아들 우태의 느닷없는 등장으로 자신의 신산(辛酸)한 삶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꽁꽁 묶인 채로 깊은 산속에 들어왔다.
이대로 죽어도 내 뜻 알아줄 이는 없다.
슬프다. 사람들은 마지막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정직하게 살라 권하지를 못하겠다"

"살고 죽은 것에 다른 이치는 없다
처음과 마지막은 원래 한가지다
구차하게 모면하려는 것은 소인들의 행동이다
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변방 살이 다섯 해에 낯이 익어서
아이들까지 진정으로 사랑했네.
서씨네 두 아이 모두 예뻤고
인아와 진아는 쌍둥이였지
춘갑이 남매는 잘 있는지
누이동생 아빠 없어 가련했지
영득이는 천성이 느릿느릿했고
석편이와 방자는 짐을 잘 졌지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눈에 선한데
그 아이들 언제나 다시 볼는지."


김려는 불온한 문체로 험한 유배지를 전전할 때, 지옥 같은 험한 고초를 겪으며 글을 남긴다. 지방 관리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야차같이 지독하게 구는 아전들을 경험하며 인간적인 정의 가치를 깨닫고, 아무리 험한 세상의 아픔 속에서도 결코 부서질 수 없는 삶의 고결함도 함께 깨달아간다.

김려에 비해 이옥의 삶과 글은 시대적 한계 속에서 훨씬 더 자유롭게 다가온다. 다음은 이옥이 심심해서 문구멍을 통해 바깥 저자의 광경을 엿보고 쓴 시기(市記)의 일부이다.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 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청어를 엮어서 늘어뜨려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오는 자, 대구를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대구나 혹 문어를 가지고 오는 자, 담배풀을 끼고 오는 자, 땔나무와 섶을 메고 오는 자, 누룩을 짊어지거나 혹 이고 오는 자."

조선 후기 활기 넘치는 5일장의 구체적 모습을 이렇듯 생생하게 형상화한 것은 참으로 놀랍다. 장터에서 묘사된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작가는 평범하게 느껴지는 김려에 비해 이옥의 삶과 문학이 지닌 비범함에 더욱 감탄하는 듯 보였지만, 나는 글을 읽어나가며 이옥과 김려의 글에서 느껴지는 비범한 감수성과 민중들의 삶을 개별적으로 들여다보는 섬세한 표현에 매료되었다. 신분 계층과 글의 형식을 벗어나 새롭게 구축되는 문학의 근대 정신을 엿보는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김려의 일화에 비해 이옥의 일화가 부족한 점과 이옥과 김려 두 사람이 어려운 가운데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삶을 나누었을 일화 역시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고, 앞날의 출세 길이 창창하던 이들이 지엄한 군주의 어명에 불응하며 자신들의 문체를 끝끝내 버리지 못했을 때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섬세하게 드러나지 못한 점이 그랬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자유로운 표현의 욕구와 지엄한 왕명 사이에서 겪었을 갈등과 고뇌는 인물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데 더욱 필요한 부분이리라.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을 대변한 시들은 이들의 삶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다.

김려와 이옥을 만나면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배움의 자유는 곧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며 그것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서 자유로운 삶이 자유로운 글을 낳는다는 보편적인 진리에 공감의 한 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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