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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가지 본질? '사랑'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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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가지 본질? '사랑'과 '투쟁'!

[親Book] 김해원·김혜연·임어진·임태희의 <가족입니까>

"가족이 뭐라고 생각해?"

누군가 갑작스럽게 물어온다면 우리는 순간적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사랑과 따스함의 대명사로 삶과 삶이 끈끈하게 연결된 가족! 운 좋으면 편안하고 여유 있는 삶을 보장받고 서로에게 따스한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운 나쁘면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어 보이지 않는 묵인된 폭력으로부터 상처 받으며 살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 끊임없이 사랑과 보호라는 본능과 의무 속에 상처를 주고받지만, 행복이라는 삶의 절대 명제가 그 속에서야 빛을 발하는 가족, 가족! 가족!

"트럭을 운전하다가 딸이 보낸 따뜻한 메시지를 받고 힘을 내는 아빠, 공부하느라 지친 동생에게 익살스런 동영상과 노래를 보내주는 다정한 누나,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잘 나온 성적표를 핸드폰으로 찍어 보내는 아들의 환한 모습"은 핸드폰이라는 상품을 부각시켜 가족의 행복을 포장하는 단지 광고일 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모습은 커다란 화면 속에 이미지로는 간결 명확 뚜렷하게 잡혀지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맞부닥뜨린 현실의 가족 모습은 이것과는 한참을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족입니까>는 출판사 바람의아이들이 청소년 책으로 펴내는 '반올림' 시리즈 스물네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특이한 것은 동화 작가인 김해원, 김혜연, 임어진, 임태희 네 명의 작가들이 '가족' 이야기를 공동 집필했다는 것이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 단편이 끝날 때마다 자신들의 가족 이야기를 풀어내며 이해를 돕는 장에서 가족의 문제는 누구나에게 만만치 않은 화두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 <가족입니까>(김해원·김혜원·임어진·임태희 지음, 바람의아이들 펴냄). ⓒ바람의아이들
부대끼고 갈등하고 미워하다가 이해하고 사랑하다 다시 '웬수' 같아지는 가족의 이야기는 네 편의 단편으로 나뉘지만 크게는 큰 줄거리 속에서 다시 맥이 모아진다. '가족'을 테마로 광고를 찍기 위해 아빠, 엄마, 딸, 아들 역할로 모인 네 명의 평범한 모델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을 한 작가가 맡아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내려 간 것이다.

네 명의 각기 다른 작가가 썼지만, 일상의 편린들을 찍고 들어가서인지 글의 결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단편의 완성도도 그럭저럭 잃지 않으면서 맥이 잘 연결된다. 이런 기획의 발상도 신선하고 무엇보다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서 '현대 가족의 이해'라는 주제로 수업하고 토론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소설은 잘나가는 거대 기업 마두테크놀로지 회사가 신제품으로 내놓은 마두 핸드폰의 광고를 맡게 된 쌈박기획이 기업의 족벌 경영과 권력 다툼으로 실추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사랑과 신뢰의 이미지로 회복하라는 특명을 받고 '핸드폰으로 소통하는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광고 콘셉트로 잡으며 시작된다.

그러나 광고를 찍기 위한 모델들의 가족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빠 역할을 맡은 박동화는 일 때문에 늦은 아내와 학원에 시간을 뺏기는 딸이 없는 빈집을 힘들어하는 '빈집 증후군'에 시달리는 무력한 가장일 뿐이다. 아내 역할을 맡은 안지나는 마흔을 코앞에 둔 미혼으로 따로 살고 있는 홀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는커녕 번번이 딸자식을 걱정하는 전화도 무시하기 일쑤다.

딸 역할을 맡은 예린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스타로 키우려는 엄마의 극성으로 그 흔한 PC방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전철도 혼자 타지 못하는 절름발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번번이 오디션에 떨어지고 자신이 누군가에 손에 조종당하는 나무토막처럼 연기도 인생도 메말라 가는 것을 느끼는 소녀다.

재형이는 자신의 쌍둥이인 재하와는 달리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운다고 잔소리해대는 엄마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핸드폰을 두고 엄마와 싸우다가 엄마가 핸드폰을 변기에 빠뜨리자 그길로 이모네로 가출을 단행한 문제 청소년이다. 그런 재형이가 집을 가출한 후 자신의 친구와 방과 후에 학교 안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쓰여 진 잠근 문을 열고 들어가 커다란 종이 상자를 발견한다.

"야, 이 상자에 혹시 시험지 있는 거 아닐까? 기말고사용 문제지 같은……."

그런데 그 상자에는 오래된 교지, 보내다 만 가정통신문, 망가진 실험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뭐 이러냐? 관계자 외 출입 금지가……."
"아, 난 또 엄청 중요한 게 있다고, 별것도 없는데 이게 왜 관계자 외 출입 금지냐?"


자꾸 웃음이 나오는 재형이의 눈앞에 풍경이 하나 지나간다.

'엄마는 네가 주위에 철조망을 쳐 놓고 접근을 못하게 한다던데.'

견고하게 보이는 성도 사실은 보잘 것 없는 것일까? 거창한 것이 발견되리라고 예상되었던 출입 금지된 그곳에서 찾아낸 허섭스레기처럼,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것을 재형이는 깨달은 것일까? 그날 재형이는 엄마와 그토록 갈등을 겪었던 핸드폰을 스스로 포기한다. 착한 재형이!

재형이처럼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조금씩 가족 간의 화해를 모색한다. 빈집 증후군에 시달리던 아버지 역 박동화도 '가족' 광고를 찍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스스로의 갈등의 짐을 풀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이라는 것도 낡은 집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묵어서 편하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 여기저기 닳아서 자구 탈이 나고 손을 보아야 하는 집 같은 존재들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자꾸 고치고 돌보면서 계속 살아가야 하겠지.'

엄마 역할을 맡은 안지나도 자신의 홀어머니를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서 이해하게 되고, 나무토막 같다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던 예린이도 자신의 동생 한울이를 눈여겨보면서 가족에게 한발 다가가려 애쓴다.

아침부터 동동거리며 챙겨주건만 뭐가 불만인지 저녁에 들어오면 가방부터 던지고 등을 돌리는 요즘의 딸아이는 말 그대로 내 인생의 웬수다. 무엇을 도와줄까라는 말에 아무 것도 도와주지 말라는 아이의 말은 가슴을 지탱하는 주춧돌 몇 장을 걷어내는 듯 나를 허전하게 만든다. 면전에서야 악담을 퍼붓지만 돌아서면 금방 가슴이 아프고 아려온다.

좋은 집, 행복한 집을 꾸미고 싶었건만, 늘어나는 것은 불만과 잔소리다. 전혀 조화를 내지 못하는 악기처럼 서로가 목청껏 외치는 집의 모양은 다르고 방마다 달린 자물쇠는 점점 단단해져 가는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이들까지 정말이지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이해와 소통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인가? 재형이처럼 빗장을 스스로 풀어버리는 용기와 지혜는 현실에서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작년 가을에 사석에서 만난 윤구병 선생님의 말씀 한 구절이 절절이 떠오른다.

"오직, 사랑하는 것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오만이지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부디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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