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재밌었다. 학창 시절 '이름/업적'으로만 외웠던 많은 위인 중 하나인 대각국사 의천의 꿈과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고려 제11대 문종의 넷째 아들이었다. 이 '왕자님'은 목판인쇄술이 정착되어가는 혁명의 시기에, 대장경의 주석서를 결집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송나라로 떠나려 한다. 송과 요나라와의 외교 관계가 어수선한 때라 집안과 조정 중신들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눈물로 호소하던 왕자님은 결국 장사꾼의 배를 얻어 타고야 만다.
▲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오윤희 지음, 불광출판사 펴냄). ⓒ불광출판사 |
한자투성이의 목판으로 박제되어있는 대장경에서 상상력과 이야기를 발굴한 저자의 삶은 어떨까. 오윤희 전 소장을 지난달 24일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에서 만났다. 불교, 문헌에서 연상되는 고답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먼 세련된 외모(?), 아이패드를 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서보단 천 년이란 시간을 제 몸에 새긴 대장경에서 더 재밌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거라며, '자기 얘기'를 꺼리는 저자였다.
오윤희 전 소장을 인터뷰한 많은 언론들이 "고려대장경은 짝퉁이다"라는 말을 강하게 부각시켰지만, 그는 그런 센 표현에 앞서 독자들이 고려대장경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 정의부터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이 문화유산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반생을 대장경과 엎치락뒤치락 해 온 그는 "대장경 일은 나에겐 재밌는 '놀이'"라 말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 연구소장 ⓒ프레시안(손문상) |
천 년, 고려대장경 새 그릇 속에 담기다
프레시안 : 올해가 '고려대장경 천 년의 해'인데 일반인들에겐 잘 와 닿지 않는 개념이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오윤희 : 고려대장경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리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1251년에 완성됐다. 천 년 전인 1011년(고려 현종 2년)은 초조(初雕)대장경을 조성하기 시작한 해다. 초조라는 말은 '처음으로 새긴'이라는 뜻이다. 이는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새겨진 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 인쇄본은 현재 일본 교토에 일부 보관돼 있다.)
이를 초조대장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후에 다시 새긴 재조(再雕)대장경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그리고 중간의 교장(敎藏)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대장경이 있다. 교과서에서 '속장경'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이 셋을 합하여 '고려대장경'이라고 정의한다. 초조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해 몽고 침략으로 그것이 불에 타 없어진 뒤, 재조대장경을 완성시키기까지 꼬박 240년이 걸린 셈이다. 조성이 시작된 시점이 1011년이니 이번 해를 기념하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지난해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몇 년 간 이번 천 년의 해 기념사업을 추진해 왔다. 더불어 이 책도 냈다. 천 년의 해를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오윤희 : 좀 창피하다. (웃음) 나더러 전문가다, 연구자다 그러는데 나는 그냥 고려대장경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는 노동을 해온 사람이다. 불전 전산화 작업이라는 게 매일 목록 뒤지고, 교정하고 그런 '노가다'다. 책도 짧은 시간 안에 우격다짐으로 쓴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내 감정적인 부분도 많이 들어가고…. 올해는 모든 사업에서 손 뗐다. 오랫동안 이 천 년을 생각해 왔는데 막상 오니까 좀 먹고 자고 놀아야지 싶다. (웃음)
1980년대부터 불전 전산화에 뜻을 품었던 오윤희 전 소장은 1993년에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전산화 프로젝트를 가동시킬 수 있었고, 2년 만에 5200여 만 자의 전산 입력을 마친다. 2005년에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에 취임하면서 초조대장경 일부 이미지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드는 작업을 이끌었다. 일본에 남아 있는 인쇄본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촬영해 이미지 파일로 만든 것이다.
5000만 글자, 숨이 턱 막히는 숫자다. 이런 어마어마한 작업 얘기를 들으니 자연스레 교장을 출간한 대각국사 의천이 떠오른다. 의천은 초조대장경에서 누락된 이후의 문헌들을 집대성하기 위해 송나라와 거란, 일본은 물론 서역의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대장경과 교장을 합해 1만1000권이 넘는 대규모 문헌을 모았다. 의천은 여러 기록에서 '천 년'을 강조했다. 천 년을 이어 온 현철들의 지혜를 집성해 미래 천 년 후의 후학들에게 넘겨주는 일을 사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 전 소장이 해 온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새로운 천 년을 위해 대장경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는 일. 그러나 그는 "의천과 비교해선 안 된다"며 고개를 젓는다.
ⓒ프레시안(손문상) |
내 얘기라면 서투르지만 의천 얘기라면 몇날 며칠을 새서라도 할 수 있다. 그분이야말로 나 자신한테도 영웅이고 우리 민족이나 인류에게도 대단한 히어로라고 생각한다. 천 년의 지혜를 미래로 열기 위한 의천의 절절한 마음, 집안과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소(章疏) 결집을 구현해내기까지의 역경… 그는 굉장히 어마어마한 일을 해 낸 사람이다. 그런데 빛도 못 보고 슬프게 돌아가셨다는 게 마음 아프다.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한 적도 없다. 게다가 그 일이 모두 의천의 일이었겠는가. 거기엔 숱한 이름 없는 '우리'들이 담겨있다.
(의천의 작업과 우리의 작업이) 비슷하다면 우리 역시 다른 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협력을 통해 전산화 작업을 마쳤다는 것이다. 1990년대 전후, 대장경을 전산화할 시대가 왔다는 공통의 의식이 있었다. 물론 우리 일은 '히어로' 같은 일은 아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보면 지루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재밌다. 참여하는 사람 나름대로 '이 작업에 인생을 한 번 걸어볼 만하다'라는 사명감 같은 게 있다. 내가 늘 연구소 사람들한테 하는 말이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놀자는 거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인가.
고려대장경이 '짝퉁'이라며?
이쯤에서 수십 년 고려대장경 전산화 프로젝트를 붙잡고 있었던 그와 고려대장경이라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까마득히 잊고 살아 온, 기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간극을 고백해야겠다. 그들은 그렇게나 재미있다는데 사람들은 한문, 그것도 불전이라면 손사래를 친다. 또 세인들이 특정 분야나 사물에 아름다움이나 자랑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때, 그 분야나 사물에 오랫동안 매달려온 사람들은 그 대상을 찬탄하며 세인들의 둔감함에 가슴을 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째 이번엔 반대다. 고려대장경에 밝지 않은 세인들이 "단 하나의 오자도 없다", "마치 한 사람이 쓴 듯 글자가 정연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라며 찬사를 되풀이하는 반면, 그야말로 대장경에 '투신'해온 오윤희 전 소장은 "낯 뜨겁다"라고 말한다. 고려대장경은 짝퉁이며, 따라서 글자꼴이 좋아도 찬사는 원본에 돌아가야 마땅하고, 베낀 것이니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란 말도 거짓이란 얘기다. 그는 구태의연한 찬사 앞에 선을 긋고, "짝퉁 들고 으스대다가 글로벌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 : "고려대장경은 짝퉁이다"라고 썼다. 많은 인터뷰에서도 이 말이 가장 강조됐다. 이 때문에 논란에 휘말리지는 않았는가.
오윤희 : 책을 내고 나서 한 강연에 갔는데 어떤 분이 책에 밑줄을 그어 와 '짝퉁'이란 표현에 문제제기를 하셨다. 왜 굳이 그런 나쁜 말을 붙여야겠냐고. 좀 더 온건하게 표현할 수 없냐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잘못했다고 사과했는데, 어디 교수라는 다른 분이 "짝퉁이란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 명품은 공유도 못한다. 짝퉁이니까 여럿이 공유도 하고 발전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면서 변호해주었다.
짝퉁이란 말이 상당히 자극적인 건 안다. 어쨌거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문화재인데 그렇게까지 낮춰 부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자극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사고가 고려대장경은 '우리의 것'이라는 민족적 프레임에만 매몰되어있기 때문이다.
고려대장경은 중국의 대장경,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엎어 놓고 그대로 새긴 것이다. 고려대장경 글자꼴에 대해 자화자찬을 하곤 하는데, '한 사람이 쓴 것처럼'이란 수식어도 말이 안 되고, 그렇다 하더라도 송나라의 오리지널에 돌아가야 할 찬탄이다. '고려대장경엔 오자가 없다'는 얘기는 그냥 전설일 뿐이다. 고려대장경 안에 <교정별록>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 안에도 오자가 여럿 나타난다.
이런 자화자찬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고려대장경의 역사적·문화적·기술적 의의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고려대장경은 우리 민족이나 대한민국 소유가 아니다. 인도에서 시작하여 서역의 여러 나라, 여러 민족들이 번역하고 유통시킨 문헌들이다. 고려대장경은 그저 고려에 있었던 대장경이라는 뜻 외에 더 이상의 뜻은 없다. 대장경은 아시아인, 세계인의 공동 창작물이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고려대장경과 관련한 신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불교의 힘으로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썼다.
오윤희 :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 초조대장경 조성이 거란의 군대를 물러가게 했다며 몽고 침략에 맞서 대장경을 다시 새겨야 한다고 쓴 부분으로부터 침략의 역사와 대장경의 역사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라가 한 마음이 되어 부처님의 힘을 빌린다고 적이 제 발로 물러갈 리가 있겠는가.
이규보의 기고문은 기도에 가깝다. 기도할 때는 원래 불가능한 일들도 잘 해달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불심이 깊었던 고려 시대 사람들에게는 제법 감동스러운 얘기였겠지만 우리 시대엔 다소 비상식적으로 비쳐지는 얘기다. 앞서 말한 민족적 프레임과 함께, 이 전쟁이라는 프레임에서도 벗어났으면 한다.
종교라는 틀도 마찬가지다. '대장경은 불교의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대장경은 경(經)이라는 글자 때문인지 '불교의 경전'을 연상시키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대장경에 포함된 1500여 종의 책 중 삼장에 속하지 않은 문헌만 100여 종 가까이 된다. 그리스 철학과 불교 철학의 만남을 다룬 저작도 들어가 있다. 불교로 한정 지을 수 없는 지식·철학의 흐름과 기억들이 녹아들어가 있다.
또 문화재라는 프레임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고려대장경을 유리창 너머의 어떤 것으로, 잘 보존하기만 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보니 제대로 가치 평가·발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문화재에 대한 가치 평가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프레시안(손문상) |
고려대장경이 뭐가 중요해?
프레시안 : 그렇다면 고려대장경의 어떤 면을 주목하면 좋을까.
오윤희 : 첫 번째는 교정(矯正)의 힘이다. 고려대장경은 교정대장경이라고도 한다. 교정은 고려대장경 이야기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문헌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일에 교정이 빠질 수 없다. 교정을 하다 보면 미심쩍은 일도 생기고 선택이나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들도 생긴다. 고려대장경을 따라가다 보면 천 년 전 책을 만들던 사람들의 생각, 그들의 선택과 결단, 고민과 정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 이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고려인들의 저력, 물적·지적 인프라에 주목하면 좋겠다.
대장경은 아시아의 '킬러 콘텐츠'다. 좋은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서도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그런 선대인들의 문화적 열망을 복합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동안 사료가 부족하고 관심이 없어서 민족적, 종교적 틀에 맞춰 단순하게 대장경을 봐 왔다. 근대화니 서구화니 해서 외국을 배우기 바빴고, 대장경은 문화재나 보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프레시안 : 여전히 고려대장경은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차라리 민족적 프레임으로 재단하면 '자랑스러운 한국의 얼' 따위로 포장해 관심을 끌 수도 있다. 대장경의 본래 모습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가치를 내세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민족과 종교를 떠나 대장경이 우리에게 지금 왜 중요한가?
오윤희 : 너무나 단순하고 분명하다. 이 책에서 나는 대장경의 초점을 '경(經)'에서 '장(藏)'으로 옮겨오자고 했다. 장은 그릇이다. 미디어다. 대장경은 부처님이 했던 말씀을 담은 그릇이다. 말씀은 망가지지 않지만 담을 그릇은 언젠가 망가지게 마련이다. 그릇이 깨졌을 때 새 그릇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내가 했던 대장경 전산화 작업도 목판에 있던 것들을 쪼개고 부수어 꺼내 다른 그릇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이 이야기를 집요하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지금 매체의 시대, 그릇이 와장창 깨어지는 순간을 살고 있어서다. 인류에 닥쳐본 적 없던 일이다. 그릇을 새로 설계하고 옮겨 담아야 하는 시기다. 고려대장경이 조성되던 시기도 마찬가지였다. 목판 인쇄술이 보편화되면서, 대량 복제라는 혁명이 일어났다. 그 전엔 사람이 직접 '기억'하거나 한 자 한 자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릇의 탄생이 지적·문화적으로 갖는 의미는 막대하다.
교정을 강조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교정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매체가 뒤흔들리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나씩 베끼면 틀려도 괜찮다. 남한테 해가 별로 안 간다. 그런데 대량 복제가 되기 시작하면 오류 역시 복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긴장하게 된다. 다른 이한테 오류가 범벅된 인쇄본을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그릇이 바뀌는 순간에 그에 맞는 고민이 뒤따르게 된다. 그 고민을 거친 산물이 고려대장경이라고 생각한다.
천 년 전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는 거다. 고려대장경을 갖고 있는 이 나라가 마침 또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한다. 그릇을 깨고 새로 설계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을 우리가 절실하게 공유했으면 좋겠다. 고려대장경은 지금 우리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좋은 모델이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지 절실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상징적인 의미도 크겠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부가 가치'가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장사'가 될까?
ⓒ프레시안(손문상) |
또 이런 아시아적 상상력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서구적인 것과 잘 병행하면 사고 자체가 훨씬 성숙될 거라고 본다. 책을 쓰면서 젊은 독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세계를 좀 더 크고 넓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런 게 소위 '경쟁력'이라면 경쟁력이다.
프레시안 : 트위터를 하는지 궁금하다. 트위터는 그릇이라기보다 깔때기와 닮은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천 년을 가는 그릇인 대장경과는 달리 순간마다 말들이 빠져나간다. 거기서 잘못된 정보들이 걸러지기도 하지만 증폭되기도 한다. 이런 최신 매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윤희 : 그런 것도 시간이 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은 못 했다. 글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목판 인쇄술이 갓 생겨난 시기만 해도 거기 안의 내용은 소수의 사람밖에 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지만, 매체가 진화하면서 확실히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흔한 정보라 해도 아직 장벽이 존재한다. IT 강국이라지만 이 안에서도 정보 격차가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누릴 가치가 있는 정보를 더 널리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다면 트위터도 하나의 좋은 형식,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을 연결시켜주고 나누게 해 준다면 없었을 때보다 훨씬 효과적일 거라고 본다. 앞으로 더 좋은 툴(tool)이 끊임없이 나올 것이고, 매체 환경이 좋아지리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이 책 속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오윤희 : 이 책이 진입 장벽이 높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열어보면 아주 재밌고 쉬운 얘기다.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인 초조대장경이 뭐고 재조대장경이 뭔지, 그런 기초 지식만이라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기자들도 헷갈리는지 기사에서도 잘못된 정의들이 반복해 등장하더라.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좀 더 관심 갖고 읽는 독자들에겐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슈퍼스타나 다름없는 의천의 역경과 고난, 한 동네가 아니라 엄청나게 먼 나라까지 아우르는 선대인들이 꿈꾸었던 세계… 그런 서사로 말이다. 대장경이 없었다면 무수한 장소들, 철학들과 실천들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 년을 맞은 기념으로 이런 큰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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