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인간이 경쟁적 본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경쟁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면 경쟁이 좋다 나쁘다, 또는 경쟁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쨌거나 경쟁을 할 것이니까.
이들은 자연 세계를 경쟁으로 이해하고, 경쟁 본능을 가진 종이 승리하여 자손 번식에 성공함으로서, 그러한 경쟁적 본성이 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며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본성이 경쟁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 사회는 우리의 본성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의 우리가 당면한 경쟁 사회를 정당화하거나 또는 사회를 더욱 경쟁적으로 만드는 데 이용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사회, 교육, 경제 문제나 모순들은 피할 수 없으며,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물의 적자생존과 인간
동물들의 세계에서 자연 선택에 따라 주위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종은 더 많은 자손을 퍼뜨려 번성하고, 그렇지 않은 종은 도태된다. 자연 선택 이론을 적자생존, 즉 강한 자만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편협한 해석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 사이에 적대적 경쟁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적자생존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또 자손 번식에 성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홉스가 이야기했듯이 자연 선택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현대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은 진화론을 설명하는데 부적절하다고 한다.
과연 동물의 진화가 이러한 경쟁의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 자연 선택에서의 성공을 경쟁이나 싸움에서 승리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화적 편견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 사회를 경쟁으로 해석하는 문화적 편견으로 자연을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의 자연 선택은 싸움에서의 승리와 패배를 통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고, 상호협동을 포함한 여러 다양한 전략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면 왜 우리는 자연에서 협동을 하는 예보다 서로 싸우는 경쟁의 사례를 더 많이 접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싸움의 장으로 여기게 될까? 그 이유는 인간이 갖는 경쟁적 문화라는 색안경을 통하여, 자연 상태의 여러 현상들 중에서 협동적인 상황보다 경쟁적인 상황들이 더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조류학자이자 생태학자인 존 위엔스는 서구 문화에서 경쟁이 중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 스포츠, 우주 탐험, 국제 정치, 또는 전쟁 등이 경쟁으로 이해되고, 그래서 자연 상태 역시 경쟁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고 한다. 이는 현대가 갖는 시장 중심의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근거한 인간 중심의 사고와 가치를 통하여 자연을 이해하는데 따른 것이다.
과연 대부분의 동물들은 싸움에서 이겨서 종족 번식에 성공한 것인가? 아니면 서로 돕고 협동해서 종족 번식에 성공한 것인가? 아니면 때에 따라 싸움도 하고, 협력도 해서 성공한 것인가? 동물의 진화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자연 선택을 통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종의 조건으로 획득한 많은 요소들은 경쟁이나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닌 상호협동으로 얻은 요소라는 것이다.
고생물학자인 조지 게이로드는 이렇게 말한다.
"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종종 싸움은 자연 선택에 이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평화적 방법이 자손 번식에 더 유리하다. 환경에 조화, 자연과의 균형 유지, 먹을 것을 잘 활용함, 자식들을 잘 돌보는 것, 다른 종족과의 불화 제거, 환경 보전 등이 진화에 중요하다."
개인 또는 개개의 동물은 고립된 상태로는 자연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동물들이 무리를 짓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이유는 경쟁으로 인한 비용보다는 협동으로 인한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동물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그들이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경쟁보다는 협동이 기본이 된다.
물고기가 무리를 지어서 먹이를 찾게 되면, 먹이를 발견했을 때 혼자 다 차지하지 못하는 단점은 있지만, 다른 더 큰 물고기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꿀벌 사회에서 일벌들은 자신은 알을 낳지 못하며 여왕벌이 낳은 알을 돌보는 일에 자신을 희생한다.
아프리카의 야생 개는 사냥 후에 그들이 사는 굴로 돌아와 먹은 음식을 토해내서 기다리던 새끼나 새끼를 돌보던 다른 개들, 그리고 다쳤거나 병난 개 또는 늙은 개들과 나눈다. 늑대나 하이에나 같은 동물들은 먹이를 사냥을 할 때 협동이 필수적이다. 물론 그들의 내부에도 경쟁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사회에 협동이 없다면 그들은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이타적 인간의 협동
같은 종족끼리의 협동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종족끼리의 협동 역시 생존에 중요하다. 지구에 있는 나무들의 85%는 일종의 곰팡이들과 공생을 한다. 곰팡이는 나무의 뿌리에 살면서 나무가 중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을 돕고, 또 다른 기생충의 공격을 막아 준다. 그 대신 나무는 곰팡이에게 당분을 제공한다. 악어새는 악어의 기생충을 제거해 주고, 악어는 악어새에게 먹이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해로운 박테리아도 있지만, 도움이 되는 박테리아가 더 많다. 박테리아가 없으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살아갈 수 없다. 많은 개체가 이러한 공생관계로 살아가고 있다. 적자생존, 또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극한 경쟁 상황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동물의 진화를 이해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인간만이 갖는 인간의 독특한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일찍이 큰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큰 공동체에서의 여러 구성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는 우리의 정서적 안정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 자손 번식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사회가 커지고, 그에 따라 다수의 구성원들과의 상호교류의 필요성은 언어의 발달과 함께 인간 뇌의 진화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한다.
영장류 연구자인 던바는 영장류의 대뇌 신피질의 크기와 그 종의 집단 크기와 상관이 있다고 했다. 집단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신피질이 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석기시대 선조는 다른 어느 영장류보다 더 큰 공동체에서 생활하였으며, 신피질이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크다. 신피질은 뇌 확대에 열쇠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집단 크기와 신피질의 관계로부터 인간의 뇌가 왜 커졌는지, 왜 인간의 지적 능력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크게 발달했는지 하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뇌의 물리적 크기는 인간이 구성원들과의 복잡한 관계와 그로부터 일어나는 여러 가지를 처리하는 능력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다른 구성원과의 교류에서 갈등·시기·경쟁을 접하고 해결하기도 하지만, 또 그 교류에서 기쁨·위로·행복과 사랑도 주고받는다.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구성원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그들과 대화하고, 감정을 교환하고, 그들의 생각을 분석하고, 그들의 기분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며 갈등을 해소하려 한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의 경쟁자로서의 관계에 대하여 준비해야 할뿐더러, 우리에게 필요한 협동, 보살핌과 안전의 근원으로서 관계 유지에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보면 근대 물질 사회의 영향으로 물질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경쟁이 강화된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해당한다.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의 대부분은 물질 분배가 평등한 수렵·채취 사회에서 발생했다. 현재의 수렵·채취는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등의 아주 한정된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밖에 남지 않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진화의 시간을 원시 수렵·채취 사회에서 지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얻은 여러 가지 특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시기이기도 하다. 수렵·채취는 약 15만 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농업은 1만 년 전이 되어야 도입되기 시작했다. 즉 인간으로서 90%가 넘는 시간을 아주 평등한 원시 채집 공동체에서 보냈다. 현대의 불평등은 대체로 농업의 도입과 발달과 함께 시작된다.
수렵·채취 시기는 가족이나 친족, 또는 부족의 협동에 근거한 유대가 생존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진화한 인간은 현대의 시장 경제에서 요구하는 경쟁과 효율을 위한 이기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인간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의 이기적 효용 극대화와는 상반되는 공정함과 공평함을 추구하기도 하고, 경쟁에 이기려고만 하는 인간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도 하는 공동체 정신이 있었다.
▲ 과연 경쟁은 인간의 본성인가? 급증하는 한국의 정신 질환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demandstudios.com |
공정성은 우리의 본능이다
영장류를 포함해서 집단 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서열에 의하여 조직이 유지된다. 서열은 불평등을 기초로 하며, 이러한 불평등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초래한다. 서열이 있는 조직에서 지위는 생존과 번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한 사람은 생존과 번식에서 우선권을 지니게 된다. 현대 사회도 이러한 규칙에 예외는 아니다. 현대 사회의 불평등의 확대와 서열의 강화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강화를 초래한다.
원시 공동체는 평등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사냥에서 획득한 음식을 공평하게 분배했고 구성원 사이의 우월을 용납하지 않았다. 현재에 남아 있는 수렵·채취 부족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원시 공동체에서 누군가가 우월함을 보이려 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면 그런 사람을 조롱하거나 배척하여 평등을 유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화 과정에서 원시 공동체의 평등 사회에 필요한 심리적 특성들이 선택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갖는 공정의 가치와 개념은 한정된 자원 분배를 큰 갈등 없이 처리하는 데 긴요했을 것이다. 공정성은 어른들 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도 발견되며, 우리는 공정치 못한 일을 경험할 때 매우 불쾌하게 느낀다.
서로를 돌보는 단체 의식 역시 원시 평등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단체 의식은 자원이 부족한 경우, 그 대처 방안으로 필요하며 공동체의 생존에 필수적 이었을 것이다. 선물을 받거나 어떤 도움을 받으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감정 역시 원시사회에 중요하다. 그러한 감정은 공짜로 이익을 얻는 행위를 막으며, 서로 도우며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한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만족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친지 등과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을 때 얻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공정성이나 보은의 감정 같은 구성원들이 중요시하는 가치에 따른다. 그 반대로 구성원으로부터 배척을 받으면, 특히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따돌림 받으면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증거로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협동하고 그들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기쁨을 느끼며, 뇌의 보상 중심이 자극된다는 실험 결과로 알 수 있다. 이러한 신경의 보상 연결 조직은 상호성을 강조하고 이기심을 거부하게 한다. 이와 반대로 구성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받는 고통이 뇌의 육체적 고통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부위와 관계되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공동체에서 협동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는 벌은 높은 협동을 유도하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한다.
불평등, 불공정, 그리고 협동의 거부 등은 모두 일종의 배척 행위이다. 우리는 협동과 신뢰를 즐기고, 강한 공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배척당하기를 싫어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불평등과 서열에 따른 우열, 계급에 따른 사회적 배척은 많은 사회적 고통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불평등한 나라들의 구성원들이 평등한 나라들과 비교 하였을 때 왜 건강이 좋지 않은지, 왜 불안감이 높은지, 왜 정신질환자가 많은지, 왜 평균 수명이 낮은지, 왜 자살률이 높은지에 대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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