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는 칼 루이스 혹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는 칼 루이스 혹은…

[예병일의 '스포츠 뒤집어보기'] 총알 탄 사나이 ②

지난 글에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육상 경기에서 100m와 200m 달리기, 400m 이어달리기, 넓이뛰기에서 4관왕을 차지한 제시 오웬스가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인류 역사상 최고로 빠른 사나이로 선정될 만한다는 소개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후 미국의 캘빈 스미스는 100m 달리기에서 마의 벽이라 여겨졌던 10초벽을 깨뜨림으로써 새로운 스타의 대열에 오를 뻔했으나 동갑내기 동료가 그의 앞길을 막아 버리는 바람에 세계 육상 역사에서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100m 달리기에서 마의 벽을 깨는 선수들은 계속해서 등장했고, 이제는 100m 달리기 기록의 한계가 얼마인가에 대한 논쟁에서 기록이 점점 더 앞당겨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올림픽

1970년대 올림픽에서 소련은 물론 동독에도 뒤지기 시작한 미국의 경기력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을 선언할 때만 해도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피터 위베로스가 조직위원장을 맡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근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을 흑자로 마무리했을 뿐 아니라 그 대회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한 루마니아를 제외한 동유럽의 여러 스포츠 강국이 불참하였으므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세계 스포츠계의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만큼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흑자 올림픽과 미국의 빛나는 성적 뒤에는 출전국을 쥐어짜다시피 한 얌체 상혼과 미국을 위한 편파 판정이 예전에 올림픽에서 볼 수 없었을 정도로 끊임없이 발견되어 대회가 끝난 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올림픽"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올림픽 개최 10주전부터 시작된 예술 페스티벌(Arts Festival)이 정례화한 올림픽입니다. 이미 23년이나 지난 일이 되었지만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을 기억해 보신다면 올림픽 문화 예술 축제라는 이름으로 7년 전에 대한항공기를 사할린 앞바다로 추락시킨 소련의 볼쇼이 발레단을 초청한 것을 비롯하여 갖가지 문화 예술 행사가 개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올림픽과 함께 문화 예술 행사가 필수적으로 개최해야 하는 행사로 시작된 것이 바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입니다.

새로운 영웅의 등장

제시 오웬스가 베를린 올림픽을 빛낸 후 47년이 지난 1983년, 미국의 매스컴에서는 안방에서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48년 만에 새로운 영웅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1961년생으로 캘빈 스미스와 동갑인 칼 루이스였습니다. 1980년에 대학 입학과 동시에 넓이뛰기와 400m 이어달리기 종목에서 미국 대표 선수로 선발된 그는 계속해서 기록을 단축하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총알 탄 사나이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다져갔습니다.

1983년에 캘빈 스미스가 비록 고지대(해발 1000m 이상)이긴 하지만 1968년에 짐 하인즈가 세운 9.95초의 기록을 깬 9.93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지에서 9.97초의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헬싱키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0.21초라는 부진한 기록에 머무는 바람에 10.07초를 기록한 칼 루이스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캘빈 스미스는 200m 달리기 경기에서 20.14초를 기록하면서 우승을 하기는 했지만 이 대회 넓이뛰기 경기에서 칼 루이스는 가볍게 금메달을 손에 넣었고, 그 때부터 칼 루이스의 기록 향상 속도가 가속을 더해 가면서 미국에서는 올림픽이 개최되는 날까지 칼 루이스의 4관왕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간 자신의 기록을 점점 더 단축시켜 간 칼 루이스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기대에 걸맞게 100m, 200m, 400m 이어달리기, 넓이뛰기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올림픽 4관왕이 되었습니다. 불과 23세의 4관왕이었으니 4관왕 2연패가 기대되기도 했고, 실제로 그는 4관왕을 차지한 후의 인터뷰에서 2연패는 물론 서울올림픽에서는 400m 달리기에서도 금메달을 노리겠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100m 달리기에서 10.22초의 기록으로 3위를 차지한 캐나다의 동갑내기 벤 존슨은 (약물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지) 그 때부터 서서히 기록을 단축시켜 1987년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93초를 기록한 칼 루이스를 2위로 밀어내고 9.83초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 기록은 훗날 약물 복용 사실이 들통나 취소되고 칼 루이스가 우승한 것으로 뒤늦게 수정되었지만 약물 복용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1988년에는 올림픽이 가까워지기는 해도 서울에서 칼 루이스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거둔 것만큼 훌륭한 성적을 올릴 것을 예견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 올림픽에서 9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딴 칼 루이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가? ⓒtop-10-list.org

칼 루이스의 명과 암

1984년 올림픽 4관왕에 빛나는 칼 루이스의 최대 약점은 세계신기록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벤 존슨은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칼 루이스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할 때 9.83초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워 100m의 절대 강자가 되었고, 서울올림픽에서는 9.79초라는 새로운 신기록으로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세계신기록일 뿐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합니다. 비록 서울 올림픽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들통 나는 바람에 우승의 영광에 대한 환희가 그치기도 전에 도망가듯 한국을 떠나야 했고, 이전에 세운 9.83초의 기록마저 취소되면서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스캔들중 하나로 남게 되었지만 인간의 한계를 끌어올렸다는 점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벤 존슨의 100m 우승이 3일 천하로 끝난 서울 올림픽에서 칼 루이스는 9.92초의 기록으로 2위로 들어왔지만 3일 후에 우승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또한 1년 전, 그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때 우승자인 벤 존슨이 세운 9.83초의 세계신기록마저 취소되면서 이 기록이 세계신기록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자신 최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넓이뛰기에서는 어렵지 않게 2연패에 성공했으며, 200m 달리기에서는 19.75초를 기록한 조 델루치에 이어 19.79초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400m 이어달리기에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파울을 범하는 미국의 전통이 발휘된 이 대회에서 바통을 떨어뜨리는 실수만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 대회에서도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예약해 놓았던 금메달 한 개는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말았습니다.

100m 달리기에서는 여러 경쟁자들이 등장하여 그 후로 칼 루이스의 우승 소식을 듣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넓이뛰기에서는 출전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꾸준한 성적을 거둠으로써 1992년의 바르셀로나에 이어 1996년 애틀랜타까지 4연패를 했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400m 이어달리기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올림픽에서 모두 9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차지한 칼 루이스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제시 오웬스 대 칼 루이스, 누가 더 위대한가?

어떤 기준을 세우는가에 따라 평가자들의 견해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만 "1936년의 제시 오웬스와 1984년의 칼 루이스중 누가 더 우수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제시 오웬스가 더 우수한다고 판정합니다.

단순히 기록을 비교하자면 반세기 뒤에 활약한 칼 루이스의 기록이 앞선다고 할 수 있지만 각자가 활약한 시기에 다른 선수들의 능력과 비교해 본다면 제시 오웬스의 우수성이 두드러집니다. 똑같이 4관왕을 달성했지만 제시 오웬스는 네 종목 모두에서 세계신기록을 보유한 것도 제가 칼 루이스보다 제시 오웬스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4관왕을 차지한 칼 루이스의 기록은 100m가 9.99초, 200m가 19.80초, 400m 이어달리기가 37.83초, 넓이뛰기가 8.54m였습니다. 이중에서 400m 이어달리기 기록은 세계신기록이었지만 100m(세계신기록은 400m 계주에서 함께 뛴 캘빈 스미스의 9.93초), 200m(피에트로 매니아의 19.72초), 넓이뛰기(밥 비몬의 8.90m)등 세 종목의 기록은 세계신기록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제시 오웬스의 기록은 100m가 10.3초, 200m가 20.7초, 400m 이어달리기가 39.8초, 넓이뛰기가 8.06m였습니다. 이 중에서 200m와 400m 이어달리기 기록은 세계신기록이었고, 100m 달리기와 넓이뛰기 세계신기록은 이 대회보다 앞서서 그가 기록한 10.2초와 8.13m였으니 제시 오웬스는 1936년 당시에 네 종목 모두에서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넓이뛰기 기록은 20여 년이 지나도록 깨어지지 않는 불세출의 기록이었습니다. 100m 달리기 기록도 20년이 지나서야 10.1초의 기록이 세워지므로 100분의 1초까지 기록하는 오늘날의 자동계시와 다른 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수동계시기록으로는 20년간 같은 기록을 내는 선수는 등장했지만 그를 능가하는 선수는 나타나지 않을 만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벤 존슨이 1987년 세계선수권 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세운 9.83초와 9.79초의 기록이 금지 약물 복용 후 취소되자 칼 루이스가 서울올림픽에서 세운 9.92초의 기록은 잠시나마 그가 세계 신기록 보유자라는 별명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 400m 이어달리기에서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이 37.40초의 새로운 세계신기록을 세울 때 함께 뛴 칼 루이스에게 세계신기록 보유자로 등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이런 기록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주인공에게 신기록 보유자의 위치를 넘겨주어야만 했으므로 저는 개인적으로 칼 루이스보다 제시 오웬스가 더 위대한 선수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그러나 제시 오웬스는 한 대회에서 반짝 빛을 발한 후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다시피 한 것과 달리 칼 루이스는 4차례의 올림픽에 미국 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인류 역사상 육상에서 가장 많은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한 시기를 기준으로 한 최고의 선수는 아니지만 한 선수의 생애를 기준으로 하면 그가 최고의 육상 선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이상 두 차례에 걸쳐서 제시 오웬스와 칼 루이스를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누구인가에 대한 제 견해를 밝혔습니다만 이들 외에도 총알탄 사나이의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선수들이 더 있으므로 다음에도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