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재산 강탈이나 마찬가지"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송전탑 건설로 주민들이 받는 재산권 침해를 놓고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약한 주민들의 재산을 강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의 피해가 이토록 극심한 이유로 밀양에 들어서는 '765킬로볼트 송전탑'의 특수성을 꼽았다.
765킬로볼트 송전탑은 수도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4킬로볼트 송전탑보다 18배나 많은 전기를 보내는 초고압 송전 선로이므로 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엄청나다는 것. 게다가 송전탑의 높이는 140미터에 달하기 때문에 경관이나 환경에 주는 부담도 매우 크다.
▲ 28일 오후 '밀양 송전탑과 전력 수급, 쟁점과 대안'토론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세미나실에서 하승수 변호사가 발제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부터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김세호 김제남 의원실 정책비서관. ⓒ뉴시스 |
하승수 변호사는 "밀양 구간에서는 송전 선로와 마을이 너무 가깝다"며 "송전 선로가 논밭이나 학교 주변 과수원을 지나가기 때문에 그 주변의 땅들은 거래도 되지 않고 금융 기관에서도 담보로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1월 분신자살한 밀양시 산외면 보라 마을 주민 이치우(74) 씨는 약 1223제곱미터(370평)의 논을 소유했으나 송전탑에서 80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보상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한국전력은 애초에 송전 선로가 지나는 땅의 보상 범위를 "송전 선로의 양측 가장 바깥 선으로부터 수평으로 3미터를 더한 범위에서 수직으로 대응하는 토지의 면적"으로 정했다. 결국 송전 선로 폭 28미터와 양측 3미터를 더하면 총 34미터까지만 보상의 대상이 된다. 이에 재산권 침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자 이를 좌우로 30미터씩 확장했다. 송전탑을 중심으로 94미터까지 보상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밀양 구간 문제 해결을 위해 운영된 '보상 제도 개선 추진 위원회'에서 송·변전 시설 주변 지역의 피해 범위를 산출한 결과를 보면, 송전 선로 양측 바깥 선으로부터 1000미터까지를 피해 범위로 보고 있어 한국전력의 보상안은 주민들이 체감하는 피해에 비해 미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승수 변호사는 지난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새누리당이 당정 협의를 통해 내놓은 보상안도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새누리당은 '송·변전 시설 주변 지역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밀양 송전탑 문제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바 있다. 이 법안은 시민이 내는 전기 요금의 3.7퍼센트를 차지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송전 선로 지역 주민들에게 1조30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상 내용을 보면, 땅 값 하락에 대한 직접적 피해 보상은 없고 △전기 요금 지원 △공공시설 설치 지원 △장학 기금 적립 등 주민들의 실생활과 큰 연관이 없는 보상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승수 변호사는 "피해 범위를 정확하게 정해서 헌법이 정한 바에 따라 정당하게 보상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마을에 지원하는 식으로 돈을 뿌려서 주민 간 갈등만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방, 서울로 전력 날라다 주는 '전력 셔틀'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밀양 사태를 기점으로 전력 수급 정책의 문제점을 짚었다. 한국전력은 밀양 송전탑을 건설해야만 오는 12월 완공되는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의 전력을 송전해 전력 수급 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은 전력 수급난의 원인으로 매도되곤 했다.
이헌석 대표는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전력 수요는 약 455.07테라와트시로 10년 전보다 76.6퍼센트나 증가했다"며 "이는 연평균 6퍼센트에 달하는 숫자로, 그 숫자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전기 사용량이 무분별하게 늘어남에 따라 송전 설비도 증가했다. 그는 "현재 밀양에서 세워지고 있는 765킬로볼트 송선 전로는 전압을 높이면 송전 감소율이 줄어 원거리 수송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듯 전력의 원거리 수송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문제다. 이헌석 대표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시·도별 전력 자급률(2011년 기준)에서 서울의 전력 자급률은 3퍼센트로 전국 최하위권이다. 이에 반해 경상남도의 전력 자급률은 210.4퍼센트 달한다. 경상남도는 이미 지역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2배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헌석 대표는 "부산을 제외한 광역 도시는 모두 3퍼센트 미만의 극단적으로 낮은 전력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전체 전력 소비량의 37퍼센트를 소비하는 서울, 수도권의 전력 공급은 숙제로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현재의 전력 수급 계획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뭉뚱그려서 짜고 있다"며 "이제는 지방자차단체가 적극 참여해서 권역별로 전기를 어떻게 공급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 송전 선로 증대, 가능해"
밀양 송전탑 문제의 대안으로 꾸준히 제시돼온 '기존 송전 선로의 용량 증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신고리 3호기(2013년 12월 상업운전 예정)의 전력 송전을 위해 신고리 핵발전소와 북경남 변전소를 연결하는 765킬로볼트 송전 선로가 이른 시일 내에 완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고리 4호기(2014년 9월 상업 운전 예정)를 시작으로 5~8호기도 건설될 예정이다. 결국 신고리 3~8호기의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161기의 송전탑이 세워지고, 그중 69기(42.9퍼센트)가 밀양시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신고리 핵발전소 1·2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은 부산시 기장군의 고리 핵발전소 1~4호기로 보내진 뒤 다시 신울산, 신양산, 울주의 345킬로볼트 송전 선로를 통해 송전 된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기존의 이 345킬로볼트 송전 선로의 용량을 증대해 기존 선로를 활용하자고 적극 주장해왔다.
김세호 김제남 의원실 정책비서관은 "전력거래소가 지난 2011년 12월에 작성한 <중장기 전력 계통 운영 전망>을 보면, 이미 '고리~신울산' 345킬로볼트 송전 선로 교체로 용량 증대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 송전 선로의 용량 증대가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는 것.
그는 "한국전력이 지금에 와서 '용량 증대는 가능하나 공사 기간이 1년 정도 소요되고 공사 기간에는 불가피하게 전력을 보낼 수 없어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하는 것은, 6차례의 간담회 등 수많은 대화가 결국 주민들을 지치게 하고 전력 수급 위기라는 국민 불안을 일으켜 공사를 강행하려는 의도였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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