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벨은 어떤 사람인가? 예술가 지망생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벨은 특히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표정의 변화를 정확히 잡아내고자 해부학, 특히 근육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눈과 입이 삐뚤어지는 현상에 흥미를 느꼈다.
벨은 당나귀의 안면 신경을 귀의 전방에서 절단하면 턱을 제외한 안면근 전체가 마비되는 현상을 확인함으로써, 안면 마비 증상이 신경계 질환임을 입증했다. 이 업적으로 안면 마비 증상의 공식 병명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의 연구의 근간이 예술에 있었다는 것은 그의 책 <회화에 나타난 표정의 해부학적 시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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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입이 삐뚤어지는 전형적인 안면 마비 증상인 벨 마비는 주로 신진 대사 기능이 떨어졌을 때 나타난다. 이 두 가지 외에도 에어컨, 선풍기 바람을 쐬거나, 찬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을 자다가 안면 마비 증상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안면 마비 증상은 쉽게 잘 낫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한의학은 안면 마비 증상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한의학은 안면 신경 마비를 위(胃)장의 기능과 연관을 지어서 설명한다. <동의보감>은 '구안와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입과 눈이 삐뚤어지는 증상은 위(胃)에 속한 근맥에 병이 든 것이다. 위장 경맥은 입을 끼고 입술을 둘러쌌기 때문에 이 경맥에 병이 생기면 입이 삐뚤어지고 입술이 찌그러진다."
안면 마비 증상을 오늘날 소화 기관의 하나로만 여기는 위장과 연결을 짓는 이 <동의보감>의 논리를 이해하려면 옛사람들이 소화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야 한다. 우선 <장자>에 나오는 설화를 한 편 살펴보자. '토(土)'를 상징하는 '중앙'의 왕인 '혼돈'에 대한 이야기다.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흘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은 혼돈이라고 했다. 숙과 흘은 혼돈의 땅에서 서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융숭히 대접했다. 그래서 숙과 흘이 서로 의논하여 혼돈의 덕을 갚으려 했다. 그러나 숙과 흘이 혼돈에 구멍을 하루 하나씩 뚫어 7일째가 되니 혼돈은 죽고 말았다."
이 설화에서 혼돈은 소화기를 담은 몸통이고, 그 혼돈에 뚫린 일곱 구멍은 두뇌를 상징한다. 두뇌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한 설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옛사람은 두뇌를 소화기의 연장으로 보았을까? 그 이유를 짐작하려면 뇌의 진화를 설명한 라이언 왓슨의 다음 얘기를 들어보자.
"하등 동물 히드라는 온몸이 소화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입과 항문을 겸하는 위쪽의 구멍 주위를 신경세포가 둘러싸고 있다. 동물의 신경세포는 뇌와 관련이 있으므로 히드라의 신경세포 같은 것이 위쪽으로 뻗어 뇌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 물이나 펄에 사는 원시 동물에게 있어서 미각과 후각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진흙 속에서 영양 물질과 접촉함으로써 감각이 생겼고, 그 후 좀 더 효율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영양 물질을 감지할 필요성에 의해서 후각이 생겼다. 이어서 청각과 시각이 발달한 것은 물론이다."
이런 현대 과학의 추론은 뇌가 소화 기능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의학이 뇌와 그것을 감싸는 머리가 위장의 영향 하에 있다고 본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었다. 몸을 구성하는 기관의 진화를 전혀 알지 못했던 옛사람들이 현대 과학의 결론과 비슷한 추론을 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논리 속에서 <동의보감>은 안면 마비 증상을 예방, 치료하기 위해서 위장 기능을 보강하는데 주력한다. 그런데 이런 처방도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봐도 터무니없지 않다. 몸통 속 위장 운동은 뇌의 지령을 받지 않고 자율신경계를 통해서 조절된다. 스트레스, 피로가 쌓이면 자율신경계의 조절 작용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부교감신경의 영향을 받는 안면 신경은 음식물의 소화를 책임지는 위장의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안면 신경 마비를 앓았던 환자의 상당수가 스트레스 후에 증상이 왔다고 말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스트레스와 위장 기능, 안면 마비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면 신경 마비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찾아온다. 상당수 환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거나, 양치질할 때 물이 새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발견 후 수 시간 내에 증상이 약간씩 악화 경로를 밟는다. 때로는 혀 앞부분의 미각 상실이나, 귀의 청각 과민도 나타난다.
마비 전에 약간의 징조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목 뒤가 뻐근하든지 귀 뒤에 있는 높이 솟은 뼈에 이상하게 불쾌한 느낌이 있다. 그 이전에도 위장이 먼저 불편해진다. 잘 얹힌다든지 가스가 생겨 빵빵한 느낌이 생기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이런 조짐이 보이면 속을 따뜻하게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죽이나 소화시키기 쉬운 것을 먹고 뜨거운 팩을 배에 올려서 위장 기운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참고로 마비의 단계를 이렇게 나누어 보면 자신의 경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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