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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연설 원고를 쓰는 그 작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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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연설 원고를 쓰는 그 작가는 누구인가?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로베르트 볼라뇨의 <칠레의 밤>

'프레시안 books'는 2011년, 새로운 각오로 독서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 하나는 소설가 장정일 씨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입니다. 장정일 씨와 '프레시안 books'가 2010년에 나온 책 중 스무 권을 골라서 격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2010년 노벨 문학상은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작년에 우리나라 독자들이 발견한 외국 작가는 단연 칠레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다.

지도를 보면 페루와 칠레는 국경 한 모서리를 겨우 맞대고 있는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란 관점에서 보면 사정은 그와 다르다. 브라질을 제외한 라틴 아메리카는 거의 에스파냐 어를 공용어로 삼고 있어, 통째 하나의 문학권인 것이다. 이 흥미로운 사항이 지닌 장점에 대해서는, 볼라뇨의 <칠레의 밤>(아후벨 그림, 우석균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 대해 다 쓰고 나서, 재론해 보겠다.

▲ <칠레의 밤>(로베르트 볼라뇨 지음, 아후벨 그림, 우석균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칠레의 밤>은 주인공 이바카체의 자서전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죽어 가고 있건만 아직도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다. 내 자신과는 평화롭게 지냈는데. 그저 묵묵히 평화를 누렸건만. 그런데 느닷없이 이 일 저 일 떠올랐다"(9쪽)라는 서두로 소설이 시작되는 것은, 자서전 형식으로서는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시작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바카체의 저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무릇 자서전이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기보다는, 당사자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꿈(염원)'을 적는다. 하므로 제대로 된 자서전은 그 염원에 다가가지 못했던 실패의 기록이며, 나쁘게는 변명으로 점철된다. 게다가 이 소설과 함께 읽었던 <부적>(김현균 옮김, 열린책들 펴냄)의 여주인공이 "역사는 짧은 공포물 같다"(69쪽)고 했던 말을 상기해 보라. 공포 시대에 혼자 평화를 누리려는 사람은, 영혼을 팔거나 적어도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가 본명이었던 이바카체의 이 자서전은 그가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마친 1950년대 후반부터, 아옌데의 집권(1970년), 피노체트의 쿠데타(1973)와 이어진 17년간의 독재, 그리고 피노체트의 실권(1991년)과 과거사 정리에 이르는 칠레의 현대사를 망라한다.

이바카체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직후, 칠레 제일의 문학 비평가이자 네루다의 친구였던 페어웰을 만나게 된다(두 사람은 정치적 이유로 곧 결별하게 된다). "장갑을 낀 것처럼 자신의 생각에 찰싹 달라붙는 정확한 표현"을 쓰는 노 비평가에게 반한 그는, 즉흥적으로 문학 비평가와 시인이 되기를 원한다. 당대의 '문학 권력'인 페어웰은 남색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품은 채 풋내기 문사 이바카체를 지원한다.

바티칸의 보수적인 사제 단체 오푸스 데이(Opus Dei)의 회원이기도 한 이바카체는 칠레 문학을 명쾌하게 밝히려는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노력, 해안가를 밝히는 등대처럼 겸허하고 화합적인 어조, 시민적 가치와 문명화에 대한 옹호를 자신의 글에 쏟아 부었다(고 자평한다).

비록 시인으로서는 실패했지만, 비평가로서의 그의 경력은 순조로웠다. 그의 이름은 신문의 서평란을 장식하게 되고, 작가들이 좌·우파 가리지 않고 자신의 책에 서문을 써주기를 바라는 유명 비평가가 된다. 그는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1950세대 소설가들 모두에 대한 비평을 썼"(35쪽)노라고!

비평과 시 쓰기에 권태를 느끼던 그에게, 오데임(Odeim : 공포를 뜻하는 miedo를 거꾸로 한 작명)과 오이도(Oido : 증오를 뜻하는 odio를 거꾸로 한 작명)라는 낯선 방문객이 찾아온다. 각종 권력자들의 수상쩍은 임무를 대리하는 이들은 이바카체에게 대리석으로 된 성당 건물을 똥으로 부식시키는 비둘기를 처치하는 방법을 연구하라면서, 그를 유럽으로 보낸다.

연구 결과 이탈리아·독일·프랑스·스페인·스페인의 모든 성당에서는 비둘기를 퇴치하기 위해 매를 기르는 신부가 있었고, 이바카체는 성당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매의 이용'을 권장하는 보고서를 쓴다. <칠레의 밤>에 대한 서평을 남긴 외국인 평자들은 이 일화의 상징성을 눈여겨보지 않고, 그저 볼라뇨의 눈부신 상상력 정도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 일화는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상관이 있다.

1년 넘는 유럽 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 왔을 때, 칠레엔 선거철이 왔고, 아옌데가 승리했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이바카체는 수도 산티아고를 바라보며 "칠레, 칠레, 너는 어찌 이리도 많이 변해 버릴 수 있는가?"라고 한탄하며 자신이 사랑하던 나라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괴물"(이상 96쪽)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서재에 틀어박혀 그리스 작가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호메로스·사포·헤시오도스·탈레스·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 볼라뇨는 이바카체가 숱한 그리스의 저작을 읽는 사이사이에,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려는 우파 군대와 다국적 기업의 공세를 몽타주로 끼워 넣었다. 이윽고 이바카체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읽기 시작했을 즈음,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아옌데는 쿠데타 군의 전투기로 폭격을 당한 대통령궁에서 자살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때 나는 읽고 있던 페이지에 손가락을 대고 평온한 상태로 생각했다. 참 평화롭군. 나는 일어나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정말 조용하군. 하늘은 파랬다. 여기저기 구름이 표식을 해놓은 그윽하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멀리 헬리콥터 한 대가 보였다. 창문을 열어 둔 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칠레를 위해, 모든 칠레인을 위해, 죽은 자들을 위해, 산 자들을 위해. 그리고 페어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분이 어떠신지요?, 내가 물었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네. 그가 답했다. (99~101쪽)

쿠데타에 성공한 피노체트의 군부 정권은 칠레 전역에서 좌파를 솎아 냈다. 피노체트가 집권한 직후, 수천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때 처형되거나 납치되어 행방불명되었다. 하지만 이바카체는 평온을 찾았고, 또 한 번 오데임과 오이도의 방문을 받는다. 그들이 그에게 맡기려는 임무는, 조국을 위한 봉사며, 그가 무덤 속까지 가져가야할 비밀이다.

그렇게도 미묘한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말했다. 그저 몇 시간 마르크스주의 강의를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든 칠레인이 크게 신세를 진 몇몇 신사분이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오데임 씨가 머리를 바싹 들이대고 하수도에서나 날 법한 연기를 내 코에 뿜어 대며 말했다.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내 불쾌한 기색에 오데임 씨는 미소를 지었다. 머리 싸매지 마시죠, 수강자가 누구인지 결코 알아맞힐 수 없을 테니까요, 그가 말했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언제 수업이 시작됩니까? 사실 지금 일이 엄청 쌓여 있거든요. 내가 말했다.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오이도 씨가 말했다. 거절하고 싶은 생각이 들이 않는 일이죠, 오데임 씨가 조정자 역할을 하듯 말했다. 나는 위험이 지나갔으니 이제 세게 나갈 때라고 생각하고 물었다. 학생들이 누구죠? 피노체트 장군입니다, 오이도 씨가 말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또 누가 더 있죠?, 내가 물었다. 당연히 라이 장군, 메리노 해군 사령관, 멘도사 장군이지 누구겠습니까? (106~107쪽)

이 일화는 실제다. 피노체트는 사회주의자들의 최종 목표와 자신의 최종 목표를 견줘보기 위해, 쿠데타 직후 동료들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공부했다고 한다. 실존했던 사제이자 우파 문학 비평가였던 호세 미겔 이바네스 랑글루아를 모델로 삼은 작중의 이바카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쿠데타 주역들에게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저작과 사상가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불운을 슬퍼하며 울었다. 산티아고에 이 소문이 퍼지면,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평판은 산산조각나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동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누구도 그를 비난하거나 거부하지 않았고, 페어웰은 노골적으로 그를 질투까지 했다. 이바카체는 자신을 찾았다.

"이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저 아련한 햇빛과 번개와 연기가 어렴풋이 보일 뿐인 미지의 잿빛 지평선을 향해 묵묵히 가고 있는 중이었다. (…) 그래서 내 마르크스주의 입문 강의는 아무런 반향이 없는 게 당연했다. 조만간 모두가 권력을 다시 공유하게 될 참이었으니까. 우익, 중도, 좌익 모두가 한통속이니까." (123~124쪽)

열 번의 강의를 끝마친 이바카체는 다시 비평가 자리로 돌아와 부지런히 신문에 서평과 평론을 썼다.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철권통치와 침묵의 시절 오히려 많은 사람이 서평과 평론을 끈질기게 계속 발표하는 나를 예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시를 칭송했고! 여러 사람이 내게 접근해 부탁을 했어! 나는 추천, 칠레식 호의, 소소한 경력 포장 등을 남발했고, 덕을 본 사람들은 내게 영원한 구원을 얻은 듯 감사했어." (124쪽)

그 공포물 같던 시기에 그가 공들여 쓴 것은 "그리스인과 로마인, 프로방스인, 돌체 스틸 노보(12세기 중엽에 활동한 시칠리아풍의 시인들)로 된 작품들을, 스페인과 프랑스와 영국의 고전을 읽으라고, 휘트먼과 파운드와 엘리엇, 네루다와 보르헤스와 바예호, 위고를 읽으라고, 제발 톨스토이를 읽으라고, 더 많은 문화!, 더 많은 문화! 하고 소리 높이 요구하고 심지어 애걸하는 평론들이었다."(127쪽)

<칠레의 밤>은 몇 개의 일화 단위로 나눌 수 있는데, 마지막 일화가 3류 소설가인 마리아 카날레스의 저택에서 벌어진 일이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쿠데타 이후에도 살롱을 열었는데, 그 가운데 인기 있던 모임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마리아 카날레스의 집에서 벌어지는 파티였다.

마리아 카날레스의 미국인 남편은 어느 미국 기업의 칠레 지사장이었는데, 칠레의 예술인들은 쾌적하고 인심 좋은 그들의 교외 저택에서 벌어진 파티를 한껏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에 온 손님 가운데 한 사람이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가 저택 안에서 길을 잃었다(길을 잃었다는 이 손님의 성별과 직업은 소문마다 다르다. 극작가 혹은 배우라고도 하고, 전위 연극 이론가라고도 한다).

그 사람은 복도 여러 개를 지나고, 이 방 저 방의 문을 열어 보고 (…) 마침내 다른 복도보다 좁은 복도에 접어들어 마지막 문을 열었다. 철제 침대 같은 것이 보였다. 불을 켰다. 침대 위에는 손발이 묶인 벌거벗은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잠들어 있는 것 같았지만, 붕대로 눈을 가려 놓았기 때문에 확인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술이 확 깬 그 길 잃은 남자 혹은 여자는 방문을 닫고, 왔던 길을 조심스럽게 되돌아갔다. 응접실에 도달했을 때 그 사람은 위스키를 한 잔 또 한 잔 청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44쪽)

마리아 카날레스의 미국인 남편 지미 톰슨은 CIA와 칠레 국가정보국을 위해 일하는 핵심 인사로, 그는 자신의 교외 저택을 심문 장소로 이용했다. 그는 이곳에서 피의자들을 심문하고, 비밀 구치소로 보냈다. 이 일화 역시 피노체트 일당에게 마르크스주의 입문을 강의했다던 미겔 이바네스 랑글루아의 일처럼 실제다.

지미 톰슨은 CIA와 칠레 국가정보국을 위해 일했던 미국인 마이클 타운리였고, 마리아 카날레스는 산티아고에 본부가 있는 유엔(UN) 산하 라틴 아메리카 경제위원회의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 부부의 집 지하에서 피의자들은 고문을 받고 숨졌으며, 피의자들이 고문을 당할 때 칠레의 예술인들은 그 위에서 파티를 벌였다.

훗날 피노체트가 실권하자 파티의 단골 출입자들은 "모두들 그 사실을 부정"(133쪽)했고, 마리아 카날레스를 "전혀 모르는 사람"(154쪽)이라며 시침 뗐다. 우리의 주인공 이바카체는 만약 자신이 그날 저택에서 길을 잃고 '고문당한 그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자문한다. 대답은 이렇다. 다른 사람들은 겁을 먹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겁을 먹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았다."(147쪽)

비둘기 똥에 부식하는 성당 건물을 지키기 위해 신부들이 은밀하게 사냥용 매를 기른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일화는, 라틴 아메리카의 허다한 군부 독재를 비호해 온 가톨릭에 대한 은유다. 즉, 성당 건물을 부식시키는 비둘기를 잡는 게 바로 매이듯, 라틴 아메리카를 공산주의자들의 무신론('똥')으로부터 지켜내는 게 바로 '우익 군부'라는 것을 바티칸은 알고 있었다. 볼라뇨에 이 작품에 따르면, 피노체트 치하의 공포 시대는 우익 군부와 오푸스 데이의 합작물이었다.

이 글의 첫머리에, 라틴 아메리카는 하나의 문학권이라고 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스파냐어 권(圈)의 작가들은 같은 연맹전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워낙 리그가 크다보니 심심찮은 잡담거리도 많은데, 일례로 이번의 노벨상 수상으로 '노벨 클럽'에 들게 된 요사는 그 보다 먼저 노벨상을 수상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서로 '절친'이었다가 원수가 되었다. 두 사람이 30년 넘도록 견원지간이 된 이유는 사생활에서부터 정치적 이견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기까지 하다지만, 애초에 같은 문화와 언어권에 속하지 않았다면 생겨날 리 만무한 것들이다.

덧붙이자면, 이 지면의 주인공인 볼라뇨는 대체로 그 두 사람 모두를 경멸했다. 2003년에 있었던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많은 대통령과 대주교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감격하는 남자였다. 그보다는 점잖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도 똑같다"고 혹평했다(<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펴냄, 59쪽).

인터뷰는 더 자세하지 않지만 이런저런 해설을 종합해 보면, 볼라뇨가 두 사람을 비난하는 진짜 이유는 라틴 아메리카를 바라보는 문학적 차이 때문이다. 볼라뇨 세대는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알려진 두 대가들의 '붐(Boom)' 소설이, 라틴 아메리카를 종종 신화적·상상적으로 묘사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마르케스 세대에 반대하는 볼라뇨 세대는 <맥콘도(McOndo)>라는 작품집으로 결집했는데, 맥도날드·매킨토시·콘도미니엄을 암시하는 '맥콘도'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부흥을 세계에 알렸던 마르케스 <100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가상의 마을 '마콘도'에 대한 비꼬기다.

볼라뇨는 칠레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멕시코에 대한 소설을 자주 썼다. 우리에게는 낯설게 보이지만, 이런 현상은 에스파냐어 권에 속하는 작가들에게는 거의 일상이랄 수 있다. 만약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다양하면서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렇듯 작가 층이 두터운 이유도 있다.

그들은 동료 경쟁자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가들에 대한 질투마저 공유한다. 이런 광활한 문학사가 한국어라는 우물 속에 갇힌 우리 작가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애써 동시대의 외국 작가들을 의식한다손 치더라도,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다른 언어라는 두터운 막이 늘어져 있다.

다시 <칠레의 밤>이다. 피노체트가 실권하고 온갖 소송에 당면한 마리아 카날레스는 자신을 위로하러 온 이바카체에게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한다"고 냉소한다. 이바카체는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말을 되뇐다.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152쪽)

볼라뇨는 말한다. 칠레에서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문학이란 작가들 자신의 명예와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이처럼 냉소적인 전언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작중에 두 번 반복된 '길 잃음'의 모티프에 주목해야 한다.

마리아 카날레스의 저택에서 길을 잃었던 예술가의 두 번째 사례는 이미 말했고, 첫 번째는 신학교 졸업생인 이바카체가 지주 출신의 비평가인 페어웰의 초대를 받고 그의 농장으로 외유를 갔을 때다. 이바카체는 저녁 식사 전에 농장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농장 일꾼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남루한 오두막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의 풍경과 같았던 일꾼들의 오두막을 곧 잊어버리게 되는데, 일꾼들의 초라한 식사는 페어웰의 식탁에서 벌어진 호화스러운 만찬과 대극을 이룬다. 이바카체는 지주에게 빚을 지고 노예처럼 살고 있는 소작농들을 만나고 난 뒤 "다들 추했다"(32쪽)고 평가한다. 무거운 짐 진 자들에 대한 이런 혹평은, 신부이자 문학가인 그로서는 이중의 배신이다.

두 번씩이나 되풀이 된 '길 잃음'의 모티프 속에서 문학가와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노예와 같은 소작농과 고문 받는 희생자를 외면했다. 저 '길 잃음'이 제대로 의미를 갖게 되자면, 피억압자들의 고통에 대한 발견과 공감으로 이어졌어야 할 것인데, <칠레의 밤>에 나오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은 그러지 못했다. 피억압자들과의 대면은 그저 외면되고 망각되거나 침묵해야 할, 재수 없는 일회용 사건이었다. 그게 세계 어디서든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는 의미다.

하므로 그 대열에 우리도 뒤처질 수 없다. 브레히트 풍으로 물어보자. 이승만에게 생일 축시를 바친 사람은 누구였나? 국민교육헌장은 누가 썼나? 박정희 시절, 독재자의 영부인에게 시를 가르친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 시인은 영부인에게 시를 가르치기 전에, 질식한 민주주의에 대해 하소연도 했을까? 반란군 괴수 전두환에게 생일 축시를 바치고 그에게 '단군 이래 최고의 미소'라는 아부를 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또 전두환의 자서전을 쓴 사람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필부였던가? (소설가였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무능력자로 판명될 공산이 큰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원고는, 지금 누가 쓰고 있는 걸까? 모두들 이바카체 같이 수많은 책을 읽고, 글을 갈고 닦은 자들임에 분명하다.

사족이다. 볼라뇨의 또 다른 장편 <부적>에 적혀 있듯이, "글쓰기와 파기, 숨는 것과 발각되는 것"(171쪽)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때문에 이바카체의 자서전은 자신의 '변명'을 완전히 감추기보다, 숨기고 싶었던 누빔점(quilting point)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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