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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집자의 굴욕, "'프로파'가 간다? 이 여자가 프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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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집자의 굴욕, "'프로파'가 간다? 이 여자가 프로파?"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

서울시의 연간 아리수 홍보비는 얼마? 100억 원. (대동강 물 팔아 처먹은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과 뭐가 다른지 아리송하다. 세금으로 만든 멀쩡한 수돗물에 멋대로 이름붙이고 세금으로 만든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세금으로 홍보하고 세금 내는 시민에게 팔아먹으려 했다. 결국은 헛물만 켰다. 차라리 그 돈으로 달동네 노후 수도관 개량 사업이나 할 것이지.)

서울시가 친환경 무상 급식 반대를 위해 지출한 신문 광고비는 얼마? 3억 8000만 원. (초등학생 20만 명이 한 끼 무상 급식을 할 수 있는 돈이란다. 오세훈 시장처럼 똑똑한 사람이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광고를 집행한 것을 보면 심오한 전략이 있을 터인데, 그게 뭔지 역시 아리송하다. 게다가 합성 이미지로 누드 광고까지 했으니 그 깊은 열 길 마음속을 헤아릴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 최대 이벤트였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비는 얼마? 묻지 마, 다쳐. (국회의원에게도 대외비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수백억 원대를 넘어 자릿수가 하나 더 붙을 정도일 거라는 풍문은 있지만 "불편한 진실"이라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홍보 전략이 워낙 치밀해서 행사 한 달 전에 홍보비가 바닥나 더 쓸 돈이 없었단다. 덕분에 언론계는 짭짤한 특수를 누렸다. 그나저나 과연 홍보 문구대로 최대 30조 원에 달하는 효과가 있었는지 역시 아리송하다. 캐나다나 일본에서는 1000억~5000억 원 정도로 추정하던데.)

국가 기관은 도대체 왜 귀한 세금을 이렇게 어마어마한 홍보비로 뿌려댈까? 민심은 천심이니 행여 오해가 생겨 천심이 노하지 않게 소상히 고하려고? 소위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려고? 여러 이유를 대강 짐작은 했지만 "실체적 진실"이 오랫동안 궁금했다. 그래서 2008년 초에 관련 문헌들을 탐색했다. 에이브럼 놈 촘스키가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그가 내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줄 원조는 아니었다. 맛 집처럼 원조가 중요한 법이다. 원조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더니 나폴레옹과 덩샤오핑처럼 키가 작은 인물이 콧수염을 기른 채 불쑥 나타났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그 유명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란다. 그래서 삼촌으로부터 심리학을 한 수 배워 자신만의 대중심리학으로 활용했다. "PR(홍보)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현대의 선전과 홍보를 학문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확립한, 좀 쉽게 말하자면 "뽐뿌질(충동질)의 원조 대마왕"이다. 무릇 뽐뿌질은 중매질과 비슷해서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잘못하면 뺨이 석 대다. 그런데 이 천재적인 인간은 (자기 말로는 본의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못된 뽐뿌질을 많이 하고도 뺨은 거의 맞지 않고 술만 배 터지게 얻어먹었다. 그리고 무척 오래 살았다. 악인은 오래 산다는 말의 명확한 증거다. 189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95년 미국 동부의 대저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오래 산 덕분에 심지어 그의 책들조차 저작권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나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읽을 만한 그의 대표작 <프로파간다(Propaganda)>(강미경 옮김, 공존 펴냄)를 번역해서 출간하기로 했다. 미국 출판사에 저작권을 문의했더니 그의 딸 앤 버네이스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1930년에 태어난 그녀는 팔순을 코앞에 둔 노인이었지만 이메일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그리고 비교적 무난하게 계약이 이루어졌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좀 건성으로 판권을 허락해주었다. 계약서도 이메일로 갈음하자는 제안을 해 와서 그렇게 했다.

▲ <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공존 펴냄). ⓒ공존
그리고 무척 신뢰하는 번역가에게 번역을 의뢰했다. (원래는 이름 있는 광고학과 교수에게 의뢰했는데 "그 오래된 책을, 전공자도 안 읽는 책을 요즘 읽을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과 함께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번역이 오래 걸렸다. 초벌 번역 중에 도움이 될까 하여 일본어판을 사서 보냈는데 그걸 보고 역자가 낭패감에 시달렸다. 완벽주의라는 고질병을 앓는 역자가 자책감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나도 괜한 짓을 했구나 하는 자책감에 빠졌다. 예정보다 두 배나 긴 시간이 걸려서야 드디어 번역이 끝났고, 바로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이 책과 저자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자신의 PR 사업을 위한 홍보였다. 즉 당시로서는 비교적 생소한, 또 제1차 세계 대전 때문에 나쁜 이미지가 씌워진 "선전(propaganda)"을 긍정적으로 선전하려고 했다. 그리고 크게 성공했다. 교정지를 거듭해서 읽을수록 저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독자가 되어 갔다.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많은 PR 사례에 매혹됐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그가 끼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라이프>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미국인 목록에 PR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이 올랐다.

그는 대통령을 당선시키기도 하고, 여성들에게 담배를 피우게 만들기도 하고, 국가(과테말라)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또 전 세계 학생들이 비누 조각을 사게 만들기도 하고, 미국인 아침 식탁에 베이컨과 달걀이 오르도록 만들기도 했으며, 미국인들로 하여금 세계 대전에 참전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책을 만들면서 그의 PR 전술, 전략에 빠져들어 이 책을 그의 방식으로 잘 팔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흔히 "좋은 책은 독자들이 알아본다." "잘 만든 책은 잘 팔리게 마련이다."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베스트셀러 가운데 대부분은 "유행을 탄 흥행"이다. 오탈자나 오역이 적지 않더라도, 표지 디자인이 "안습"이더라도,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동시대인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고 동시대인들이 원하는 것은 대개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 욕구다. 누가 만드는가. 이 책에 따르면 바로 버네이스 같은 엘리트들이다.

시장 경제 안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대중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정부"가 있다. 그래서 버네이스는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민심은 "보이지 않는 정부"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면 엘리트들이 적극적으로 선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수단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이 바로 선전이다. 이 대목에서 일부나마 나의 궁금증이 풀렸다. 오늘날의 선전, 광고, 마케팅 따위는 바로 이런 작자들이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누구에게 어떻게 팔지?

먼저 80년 가까이 된 고전을 요즘 읽어도 무난하게 편집하고 포장해야 했다. 그래서 번역과 교정에 공을 들였고, 원서에는 하나도 없는 사진들을 힘들게 구해다 넣었다.(오래된 사진을 구하는 이 과정에서 정말 말 못할 많은 "삽질"이 있었다.) 표지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0.5밀리 터프 가이"가 만들었다. 디자인과 인쇄에 오차가 0.5밀리미터만 생겨도 알아보고 작업을 중단시키는 역시 완벽주의 중환자다. 덕분에 "프로파간다"스러운 표지가 탄생했다.

그런데 인쇄를 하려 필름을 들고 인쇄소에 갔더니 그곳 관계자가 표지 컬러 교정쇄를 보고 "프로파가 누구죠?"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이 책은 잘 팔리기 어렵겠구나 하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매일 몇 권씩 신간을 찍어대는 인쇄소에서 그런 질문을 받고도 대성할 책이 있을까. 질문을 한 사람은 분명히 표지의 여자를 염두에 두고 물은 듯했다. 피우던 담배를 든 채 깊고 시원하게 파인 등짝을 내보이며 뒤돌아 앉은 여자. 아마 그 여자 이름을 "프로파"로 추정한 것이리라. 표지에서 제목 글자의 띄어쓰기가 종종 무시되니 "프로파가 간다"로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책은 만들어야 했다.

드디어 신간이 입고되어 홍보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버네이스 식으로 뭔가 특별한 PR 작업을 해보고 싶었지만 막상 할 짓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일단 언론사에 책을 보낸 뒤 자라처럼 목을 빼고 신간 소개 기사를 기다렸다. 내 예상대로라면 <프레시안>, <경향신문>, <한겨레> 같은 진보 성향의 언론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건 배신이야, 배신!") 정말 놀라웠다. 왜 이 책이 보수 성향의 언론에게 환대를 받은 걸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으면 진보 성향에 맞지만, 책에 쓰인 맥락 그대로 읽으면 보수 성향과 맞아떨어진다.

신간 출간 후 몇 주 후부터 독자들의 반응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소수의 혹평 외에 대부분은 나와 비슷하게 세상을 보는 관점이 쇄신되는 경험을 한 듯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비록 버네이스 식으로 대박을 내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찾는 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어느 대학교에서는 부교재로 채택돼 "반짝 특수"가 있기도 했다. (번역 퇴짜 놓은 그 교수의 말은 완벽하게 틀렸다.)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 만하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그는 누구인가?" 과연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과 생각대로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끝으로 원고료도 없이 밤잠 설쳐가며, 전날의 알코올에 젖어 있는 기억을 더듬으며, 촉박한 원고 마감에 맞춰 쓴 이 글은 과연 어떤 프로파간다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도 가끔 주문장에 "프로파 간다"로 띄어쓰기가 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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