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원자화된 개인, 파괴된 공동체,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는 이러한 공동체적 파괴와 민생 불안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압축하는 표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 모순의 핵심을 '신자유주의'로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적 해법을 갈망하고 있다. 최근에 각광을 받는 장하준의 책이 경제학적 비판이라면, 미국의 정치학자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김유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이념)적' 대안의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의 방향은 매우 익숙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이념, 바로 '사회민주주의'다.
'경제 중심론'과 '정치 중심론'의 한판 대결
▲ <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셰리 버먼 지음, 김유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1776년에 발간되고 산업혁명이 이 시기에 발생했지만,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시기는 '제2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1880년대 이후였다. 그래서 이 시기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맨 얼굴의 자본주의', 즉 자본주의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 이행 과정은 자연스런 과정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인간 공동체 조직의 파국적 뿌리 뽑힘을 동반"했다. 공동체는 파괴되고 개인은 원자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의 정치 이념과 정당 간에 새로운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펼쳐진다.
대립 전선의 핵심 축은 '경제 중심론'과 '정치 중심론'의 대결이다. 경제 중심론의 대표 주자는 자유주의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한편으로 했고, 정치 중심론의 대표 주자는 '민주적 수정주의'(=사회민주주의)와 '혁명적 수정주의'(=민족사회주의=파시즘과 나치즘)였다.
이러한 접근의 일환으로 책의 구성은 사회민주주의의 발생-성장-집권(2, 3, 5장)과 민족사회주의의 발생-성장-집권(2, 4, 6장)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7장에서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되었던 스웨덴을 별도로 다루고, 8장과 9장은 전후 체제와 저자의 결론을 다룬다.
4대 독법 포인트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정치가 우선한다>가 특히 흥미로운 점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바와 같이 '경제 중심주의'와 '정치 중심주의'의 대결 구도이다. 둘째, 정통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정치적 무능력'에 관한 부분이다. 셋째, 민주화 상황에서 민족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한 배경과 비결에 관한 문제이다. 넷째,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공헌에 관한 부분이다. 이러한 4가지 지점을 중심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경제 중심주의와 정치 중심주의의 대결 구도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의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지배적 이념은 자유주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 이념으로 등장한 것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엥겔스와 카우츠키로 대표되던 정통 마르크스주의였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었는데 양자 모두가 '경제 중심론'(=경제적 수동주의)의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적 최소국가론에,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자동 붕괴론을 주장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정당들에게 '정치'란, 자본주의의 파국을 기다리며 계급적 갈등을 고취시키는 선전선동의 공간이었을 뿐이다. 당연히 자유주의 정치 세력과의 연합 정치에 대해 완고했고, 노동계급이 아닌 농민계급 등을 '몰락하는' 이들로 취급하며 배척했다. 그리고 정책적 비전 같은 것은 굳이 마련할 이유조차 없었다. 한마디로 이들의 노선은 '혁명적 대기주의'였는데, 당연하게도 '정치적 무능력'으로 귀결되었다.
'민주화 이전의' 사회주의, '민주화 이후의' 사회주의
둘째, 정통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정치적 무능력에 관한 부분이다. 한국 사회 1980년대~90년대 학생운동은 대체로 민족해방(NL)/민중민주(PD) 정파 대립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에게 사회민주주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회민주주의=개량주의'라는 등식일 것이다. 아직도 이러한 '낡은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진보파에게 <정치가 우선한다>는 많은 교훈점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자본주의 원형 시대에 드러났던 정통 좌파적 사고방식의 '원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엥겔스와 카우츠키 이론으로 대표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특징은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론으로 요약된다. 역사유물론은 자본주의 (자동) 붕괴론이 요체이고, 계급투쟁론은 자본주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급 투쟁의 격화가 요체였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화 이후' 국면에서 발생한다. 보통선거권의 쟁취로 특징되는 민주화 국면이 열리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은 몇 가지 정치 실천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실천적 쟁점들은 △의회를 대하는 태도(의회주의) △개혁주의 문제 △계급 교차(=연합 정치)를 통한 유권자 확대 △민족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실천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 속에서 발생한다. 프랑스의 장 조레스, 독일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이탈리아의 카를로 로셀리, 스웨덴의 닐스 칼레비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등이 그러하다.
예컨대,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수정주의 논쟁이 벌어진 최초의 발단은 '농업 논쟁'이었다. 1890년 사회주의자 탄압법이 폐지되고 나서 치룬 선거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은 20%의 득표율을 올리며 제1당으로 등극하게 된다. 사회민주당은 공업 지대에서는 50%가 넘는 압도적 득표를 하지만 농업 지역에서 저조한 득표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유럽이 그러했듯 당시 농민은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농민 표를 받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매우 자명한 것이었다. 이에 농민 표를 받기 위해 농업강령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제출된다. 그런데 당시 독일 농민의 다수는 자영농이었기 때문에 '자영농 보호=사적 소유 옹호'라는 논리적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이론적 대부였던 엥겔스와 카우츠키를 중심으로 "농민은 결국 소멸할 것이며, 사회민주당의 임무는 그러한 것을 농민들에게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라는 입장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의회주의, 개혁주의, 정치적 계급 연합
결국 독일 사민당은 1895년 브레슬라우 당 대회에서 새로운 농업 강령의 채택 그 자체를 폐기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한길사)를 번역했던 강신준 교수는 이를 '당의 정치적 자살'이라고 표현했는데, 바로 이 사건을 접한 이후 베른슈타인은 당내에 만연한 '교조적 사고방식'에 대한 총체적 비판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수정주의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사실 베른슈타인이 제기한 실천적 핵심은 간결하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노-농 정치 동맹' 노선의 채택 여부, 그리고 셰리 버먼의 표현에 의하면 '계급 교차적 협력'의 문제였다. 정통파는 '전략은 혁명, 의회는 전술로' 보았기에 개혁주의와 의회주의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노동계급 독자성과 교리주의적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했다.
반면,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은 '정치의 우선성'을 주목했기에, 의회주의, 개혁주의, 정치적 계급 동맹론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스웨덴을 제외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이 끝날 때까지도 당내에서 다수파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정통파적 입장은 '수사적 급진주의'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이론적, 실천적 해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프랑스 지부의 한 정치인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우리 당의 교리는 이제 성경책과 비슷하다. 우리는 그것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믿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정당들의 정치 연합에서의 완고함은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민족사회주의 정당'의 집권 비결
셋째, 보통선거권이 실현된 민주주의 상황에서 민족사회주의 정당(=파시즘과 나치즘)은 도대체 어떻게 선거를 통해서 집권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는 정치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셰리 버먼의 책을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일단 민족사회주의 정당의 집권 배경을 이해하자면 당시에 부상했던 '민족주의/애국주의'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기도 했던 이탈리아의 경우 후발국으로서 열강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고, 독일의 경우 유럽의 강력한 후발 산업국으로서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었다.
그러나 민족사회주의 정당의 성장과 집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럽에서 주류적 정당들이 수행했던 역할들이 더욱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나라에서 모두 정통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은 20~30% 정도의 비교적 많은 의석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에 자유당(좌파)들은 이들과의 연립 정부를 적극 제안하게 된다. 그러나 계급 교차적 협력에 부정적이었던 이들은 '정통 교리'에 입각하여 연립 정부가 번번이 당내에서 부결되기 일쑤였다.
1918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이 실현되었지만 더욱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이 개혁주의와 의회주의에 대한 그간의 소극적 토대로 인해 막상 집권을 하게 된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비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권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유당은 자본가를 대변하고, 정통 마르크스주의 정당은 노동자를 대변했다. 그런데 이들이 수행했던 역할은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본질의 한 측면에 불과한 '갈등의 사회화'였다. 한마디로 이들 양자는 모두 '계급 분파주의 정당'이었다. 그러나 당시 인구의 최대 다수파는 여전히 농민이었다. 농민의 경우 '불안'을 가장 극심하게 체감하던 계층이었음에도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없었던 셈이다.
민족사회주의 정당들은 농민 계급과 중간 계급을 집중 공략했다. 공황과 파업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는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정당 사상 최초로 '사회 통합'의 가치를 부르짖었다. 물론 그들에게 통합의 기초는 혈통 중심 민족과 국가였지만 말이다. 즉, 민족사회주의 정당은 (스웨덴을 제외하면) 현대 정치에서 최초의 '국민 정당'이었으며 정치적 기능의 또 다른 본질인 '사회 통합'을 제기한 정당이었다.
히틀러가 당수로 있던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선거 득표율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급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나치당은 1928년 2.6%로 시작했지만 1930년 18.3%, 1932년 7월 선거에서 37.3%의 득표로 독일 사회민주당도 제치게 된다.
20세기 정치의 승자는 '사회민주주의'
넷째, 이제 마지막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공헌을 살펴보자. 자본주의의 출현이 공동체적 가치의 파괴, 각종 사회 불안 그리고 원자화된 개인으로 특징되는 '사회적 뿌리 뽑힘'이 동반된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공동체적 가치의 복원'과 '정치의 우선성'이라는 측면에서 민족사회주의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들 양자의 결정적 차이점은 전자가 '민주적' 수정주의였던 것과 달리 후자는 '혁명적' 수정주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용적으로 볼 때 더욱 결정적 차이점은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그 누구보다 '헌신적'인 정치 이념이었다는 점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가치에 헌신적이었다는 점은 민족사회주의와의 차이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와의 핵심적인 변별점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의 완성은 사회주의이다." (장 조레스)
"자유주의가 영감을 불어넣는 이상의 힘이라면, 사회주의는 그 이상을 실현시키는 실천적 힘이다." (카를로 로셀리)
"민주주의는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민주적 수정주의(=사회민주주의) 흐름을 대표하던 프랑스의 장 조레스, 독일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이탈리아의 카를로 로셀리, 스웨덴 사민당의 닐스 칼레비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모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었다. 다만, 여기에서 이들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소유권에 집착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명백하게 구분되는 '정치적 자유주의'였다.
그런 점에서 셰리 버먼은 20세기 전후 체제의 특징을 전체주의에 맞선 '내장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로 해석하는 주류적 해석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20세기 전후 체제의 특징은 '사회민주주의'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이 아니라, 이들 양자 모두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며 '독자적'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셰리 버먼에 따르면, 전후 복지국가 체제의 핵심은 복지 정책과 사회 연대 등의 가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정치 이념'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민주주의 정치철학'에 입각하여 세워진 나라가 바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이다. 이들은 민족주의 우파의 슬로건이었던 '국민의 집' 개념을 자신들의 것으로 수용하는 전략적 유연성, 농민층에 대한 지속적 접근, 자유당과의 적극적 정치 연합(1917년~1932년), 마르크스주의적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 정책으로 1932년 선거와 1936년 선거에서 역대 최대 득표를 갱신하며 약 40년간의 민주적 장기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이는 베른슈타인의 문제의식을 백안시했던 독일 사회민주당의 교조주의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이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에 지대한 이론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당내 이론가 닐스 칼레비(1892~1926년)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자신들을 마르크스 유산의 진정한 관리자로 내세운다. 이 당은 한 가지도 독립적인 무언가를 창조해 내지 못했으며, 스승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것(그럼으로써 더 조악하게 만드는 것) 이상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다. 실제 과제들과 대면해야 했으며, 당내에서 행동을 위한 지침을 발견해 내기 위해 노력했던 자들은 끔찍이 실망하고 말았다. 반면 누군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실제 작업과 지적 생활을 연구해보면, 그 사람은 이론적 명쾌함과 독립성의 문제, 그리고 실제적 능력의 문제 모두에서 이 당이 독일 사회민주당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250쪽)
닐스 칼레비의 진단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한국 진보 정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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