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눌리는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귀염(鬼魘)'이라고 한다. 귀신이 압박하는 증상으로 본 것이다. 예전에도 가위눌리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모양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잠들었을 때는 혼백이 밖으로 나가는데 그 틈을 타서 귀사가 침입하여 정신을 굴복시키는 것"이라며 이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관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냉방에서 자다가 헛것에 홀려 생기는 증상으로, 껄껄 웃는 소리만 들리고 곁의 사람이 큰 소리로 불러도 깨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가위에 눌리는 것이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사향, 서각, 영양각, 소합향, 호랑이 머리뼈로 안정을 취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동의보감>은 이런 약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 쓸 수 있는 긴급 대응 방법도 소개한다.
"불을 비추거나 앞에서 갑자기 부르면 죽을 수도 있다. 이때는 오직 그 사람의 발뒤꿈치나 엄지발가락 발톱 근처를 아프게 깨물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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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은 유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학자는 <논어>에서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며 귀신의 존재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삶과 저승에서의 삶의 연관관계를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서 인정했다. 제사를 지낼 때, 마치 조상이 살아있는 것처럼 문안하고 밥상을 챙기는 것은 한 예이다.
조상들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단지 고인을 기억하거나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 지내는 후손과 제사를 받는 고인이 연결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 연결고리가 바로 고인의 혼백이다. 한의학에서는 오장과 연결된 다섯 가지 영혼, 혼신의백지(魂神意魄志)가 있다고 보았는데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속에 묻힌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왜 잠을 자면 혼백이 밖으로 나간다고 <동의보감>은 이야기했을까? 전통적인 관점에서 천지인은 하늘과 땅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늘은 인간의 마음을 만들고 땅은 인간의 육체를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하늘을 닮아 맑은 순수를 꿈꾸고 인간의 육체는 다양한 변화와 욕구를 낳는다.
낮이 되면 양인 하늘의 태양과 음인 육체가 서로 만나고 밤이 되면 음인 땅과 양인 영혼이 서로 만난다. <동의보감>은 밤에는 낮에 잠든 영혼이 깨어나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잠이라고 보았다. 이런 생각의 연장이 가위눌림을 바라보는 한의학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사람은 꿈을 꾸고 불안해지는 가장 큰 원인을 혈기의 부족으로 보았다. 혈기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손상 받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가 태극기의 음양처럼 서로 이어져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꿈을 많이 꾸는 경험을 자신의 사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한 가지 더! 가위눌린 사람이 가장 주의할 점을 <동의보감>은 이렇게 경고한다. 손을 가슴에 얹어서 자는 것인데 이 자세가 시신을 염하는 자세로 귀신을 부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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