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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러다 죽는 거 아냐?" '건강 염려증' 중환자들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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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러다 죽는 거 아냐?" '건강 염려증' 중환자들 필독!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우리는 모두 건강할 권리가 있다!>

나에겐 어떤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고약한 병이 하나 있다. 병의 이름인즉슨 건강 염려증.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 대체로 꼼꼼하고 고집이 센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난다.'

사전에서 꼭 집어 지칭한 '고집이 센 성격'이라는 대목을 딱히 부인하지 않겠다. 그 고집이 어떤 경로로 건강에 대한 염려증으로 변형되는지는 확인할 바 없으나, 나는 종종 골몰한다. '두통이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데, 머릿속에 끔찍한 종양이라도 자리 잡은 거 아냐?', '갑자기 입맛이 없어지면 큰 병에 걸린 거라던데,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하나?', '얼굴이 부쩍 붉어졌잖아? 얼마 전에 TV에서 본 루푸스라는 병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종착점은 언제나 병원 진찰실이다. 그리고 의사의 진단은 몇 번의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같았다.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신경성이니 스트레스를 피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의학적으로 몸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병원에만 갔다 하면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몇 주 먹을 분량의 약을 처방받는다. 나는 병원에 간 유일한 목적이 마치 처방전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는 듯 그 길로 약국에 들러 두툼한 약봉지를 챙겨 나온다. 하지만 한 며칠 약을 챙겨 먹다가 증세가 좀 가라앉으면 남은 약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기 일쑤. 그 덕에 집안 곳곳에는 갖가지 조제약과 더불어 성분 짐작이 어려운 처방약들이 나뒹굴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왜 단 한 번도 의혹을 품지 않았는지 이상할 뿐이다.

먼저, 몸 어딘가가 아플 때 나는 '아프다'라는 현상 자체에만 주의를 기울였지, 왜 아픈지 그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아픈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임에 불구하고, 그 아픈 몸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연히(!) 의사나 약사라고 맹목적으로 믿어 왔다. 나는 아픈 몸을 '전문가'에게 보여 정확한 '병명'을 알아내는 것만 중요하다고 여겼지, 내 몸이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읽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병원에 가서도 수동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경성'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서 굳이 처방해 주는 약이 내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약의 성분이 무엇인지 등등 물어볼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도 의문조차 품지 못했다.

▲ <우리는 모두 건강할 권리가 있다!>(김선 지음, 김소희 그림, 낮은산 펴냄). ⓒ낮은산
서른다섯 해를 살아오는 동안 숱하게 병원을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떠올리지 못한 물음표를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비로소 품게 되었다. 바로 이 책, <우리는 모두 건강할 권리가 있다!>(김선 지음, 김소희 그림, 낮은산 펴냄)다.

이 책의 저자 김선 씨는 '건강' 생각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약학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 보건의료 체계가 생활공간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체험해 보려 약사로 근무하는가 하면, 보건 정책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에서 주무관으로 활동하고, 건강에 대한 고민과 나눔을 다각도로 해 보기 위해 여러 연구공동체에 참여하는 등 그야말로 '건강'을 떼 놓고는 말하기 어려운 이력의 소유자인 저자의 나이는 이제 고작 스물일곱. 현재 서울대에서 보건정책관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의 앞으로의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원고를 받은 것은 올해 초.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1년 반 동안 연재한 글을 단행본의 호흡으로 다시 매만진 원고였다. 미리 말해 두자면 이 책은 어린이 교양서다. 하지만 어린이 독자만을 염두에 둔 책은 아니다.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의 의미를 쉽고 친절하게 풀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너희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특히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 나아가 자기 자신의 이익과 행복만을 챙기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 시대에 다른 사람, 다른 생명의 건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길 바라."

▲ <우리는 모두 건강할 권리가 있다!>의 저자, '선이 이모' 김선 씨 ⓒ낮은산
어린이 책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독자를 바짝 긴장시킨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질문'에 익숙하지 않다.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다수의 답에 편승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어진 답을 머릿속에 집어넣기도 바쁜 요즘 어린이들에게 질문이란 얼마나 거추장스러울 것인가. 그런데 이제 첫 책을 내는 새내기 저자, 질문을 던지거나 끌어내는 솜씨가 보통이 넘는다. 병과 약에 대해, 우리 몸에 대해, 건강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듯싶다가 물음표를 슬쩍 던진다. 방금 전 얻은 지식을 딛고 독자 스스로 질문을 확장해 가도록 만든다.

보험 회사, 제약 회사, 의사 협회들의 격렬한 반대로 개혁이 쉽지 않았던 미국 의료 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질문이 절로 튀어나온다.

"건강한 사회를 꿈꾼다 말하면서도 정작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참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왜 어떤 사람들은 다 같이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할까?"

정말! 남들도 행복해지면 내 행복이 줄어들기라도 한단 말인가. 행복은 혼자 누려야 더 달콤하다던가.

어린이 독자는 물론 성인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제기하는 이슈들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나 역시 원고를 읽는 내내 불편했다. 다 읽고 나서야 불편함의 실체가 부끄러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남도 나와 똑같이 건강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망각했던 부끄러움, 타인의 건강에 대해 무관심했던 부끄러움.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에.

이 책은 '몸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서 결국 우리의 건강,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자연의 건강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독자를 유도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 몸은 소중하니까!"가 아니라 "네 몸도 소중하니까"이기 때문이다. 내 몸 귀한 줄 알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면, 남의 몸, 다른 생명의 건강도 똑같이 귀하다는 것을 알자는 거다.

독자들이 남긴 리뷰에서 이 책이 일으키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이 내딛는 한 걸음을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사회를 떠올려 본다."(ID '샨티샨티')

"우리 모두가 건강한 사회의 주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ID '강유')

"아이들 영양제를 먹이고 있는데, 많은 생각이 듭니다."(ID '옥이')

"냉장고 안에 한가득인 약들을 언제까지 먹고 언제 버려야 할지 난감했는데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았네요."(ID '책읽는야옹이')

물론 변화는 내게도 찾아왔다. 건강염려증을 고쳤냐고? 웬걸,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하지만 그 증상은 확연히 다르다. 두통이 시작되면 종양이 생겼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본다. 진통제를 사 먹는 대신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내어 그 원인을 없애려 스스로 노력한다.

단순히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건강을 '건강하게' 염려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니 내 건강염려증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치료를 보류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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