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잘못의 중심에 이건희 회장 일가가 있다. 총수 일가와 그의 가신은 회사의 멱통을 움켜쥐고 공금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세습을 위해 사회 곳곳에 뿌린 돈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고, 회사에 손실을 입혔으며, 그로 인해 주주의 수익률을 떨어뜨렸다. 삼성은 분명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지만,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산개해서 쏟아졌다. 하지만 울림은 작았다. 수십만 부 판매 부수의 주류 언론이 침묵한 탓이 컸다. 그러나 각개약진의 목소리는 총수 일가가 삼성그룹에 미친 손실을 추정하고, 정치·법조·행정 권력 등에 흩어진 돈을 추산했다. 또 삼성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을 조명했으며, 심지어 삼성 불매 운동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굿바이 삼성 : 이건희, 그리고 죽은 정의의 사회와 작별하기>(김상봉 외 14인 지음, 꾸리에 펴냄). ⓒ꾸리에 |
돌아보면 이들의 주장도 반향은 없었다. 삼성 불매 운동은 '운동'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의 미풍으로 끝났다. 이를 둘러싼 토론도 불붙지 않았다. 삼성 내에서 이 회장 일가의 힘은 더욱 강해졌고, 권력 승계 작업도 다시금 가동될 것이다. 삼성전자도 탄탄한 실적을 내면서 한국의 무력 수지에 일조를 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의 반응도 여전하다. 그들은 이 회장 일가를 비판하는 이 책에 실린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적의를 품는다. 많은 20대는 지금도 삼성그룹에 들어가고자 뉴스에 귀를 닫고, 전공 서적을 뒤적인다. 정치권력, 사법 권력이 이 회장 일가의 잘못을 파헤치고자 들고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
그러기에 "이 책은 후대 사람에게 삼성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주술에 모두 다 걸려든 건 아니라는 증거물"이라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설명마저 초라하게 느껴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 권력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더욱더 고착화될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 이 공포의 근원은 삼성이 무너져 자신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삼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믿음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삼성이 무너져도 변하는 건 없다는 사실, 이것이이야말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진실 아닐까?
삼성의 오늘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은 "삼성이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회장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삼성 비판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삼성이 미치는 순기능은 결코 적지 않은 현실에서, 많은 국민이 좋든 싫은 삼성 제품의 소비자인 현실에서 이들의 말은 논리적으로 맞다.
그러나 삼성의 비판자들이 이 말을 할 때마다, 이 말은 변명처럼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이런 설명에는 삼성을 상대로는 개인의 "좋다" "싫다" 이런 감정조차 마음대로 드러낼 수 없는 현재의 무기력한 상황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굿바이 삼성"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우리 시대 초라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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