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통해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한의학의 기본 목표는 음양의 '조화'다. 몸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건강'이다. 반면에 체질 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적 특성'은 음양이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이 깨졌을 때 잘 나타난다. 대다수 건강한 사람의 체질이 이것인 것도 같고, 저것인 것도 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사상 의학을 창시한 이제마의 삶을 다룬 한국방송(KBS)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 ⓒKBS |
중국의 많은 사대부 유학자는 의사들의 단편적 경험을 모아 이것을 중국 의학의 이론으로 승화했다. 반면에 한국의 유학자는 한의학을 깊이 연구하여 이론으로 승화시킨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의학을 이론화한 사상 의학은 한국 한의학의 홍일점이라고 할 수 있다.
수차례 언급했듯이 음양오행은 한의학의 핵심이다. 사상 의학은 이런 음양오행의 '중심'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틀을 만들었다. 사상 의학이 이 논쟁을 제기하기 전까지, 한의학자는 대개 "빈 것이 모든 것을 살린다(無用之用)"는 노자의 견해를 따랐다. 인체에서 빈 곳은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긴 소화관이며 오행상 '토(土)'이다.
노자의 견해를 내세웠지만 이런 생각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팽이가 축을 중심으로 돌다가 균형이 무너지면 쓰러지듯이 인체의 중심에 있는 소화관에 문제가 생기면 몸의 균형이 깨져서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여겼던 것이다. 소화관의 끝인 항문을 뚫는 처방(변비약)인 승기(承氣)탕의 이름이 끊어진 기를 이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의학은 바로 이런 생각에 딴죽을 걸었다. 사상 의학은 '심(心)'을 중심으로 내세웠다. 이런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선의 성리학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성리학을 간단히 도식화하면 '심(心)+생(生)'이다. 심은 사유 능력이나 판단 능력을, 생은 태어나면서 갖는 자연스런 욕구 본능을 의미한다.
성리학에서 중국의 이기론과 조선의 이기론은 차이가 있다. 중국 유학은 우주의 생성 변화를 이해하고 그 일부로서 인간의 성정을 설명한다. 그러나 조선 유학은 애초에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의 정신 작용을 설명하고, 그것에 따른 판단과 행위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 초점을 맞춘 조선 유학은 그 정신 작용의 근본이 되는 심((心)을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보았다. 사상 의학이 체질 불변의 법칙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 활동의 중심인 것처럼, 체질 역시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변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학습에 따라서 '심'이 달라진다고 보면서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 것과 대조적이다.)
사상 의학의 또 다른 핵심 사상은 형표기리(形表氣裏)이다. 속에 있는 기가 외부 형태를 좌우한다는 이야기다. 체질을 감별할 때 상체나 하체의 크기를 비교하고 머리나 팔의 길이를 비교하는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기에도 심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심의 기가 외부로 나타나는 것이 형태라는 논리의 일관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 논리를 제공한 이는 한말 전라도의 거유인 노사 기정진이다. 그는 심을 인체 기의 가장 순수한 뿌리인 정상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기가 샘처럼 솟아난다고 보았다. 이제마가 100년 뒤 자신의 의학이 빛을 볼 것이라 예언했듯이, 기정진도 자신의 논리를 적은 문서를 100년 뒤에 꺼내 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그의 학문적 뿌리로는 운암 한석지가 꼽힌다. 그가 가장 아꼈던 <명선록>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살펴봤듯이 사상 의학은 조선 유학의 성리학의 바탕 위에 한의학의 논리를 재구성해 인본주의적 사상으로 구현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도교의 영향을 받은 서경덕 학파의 논리 속에서 '정기신' 론을 내세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토종 의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 의학은 과연 성공했을까? 그 답은 다음에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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