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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北 영변 원자로 가동, '6자회담 하자'는 통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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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세현 "北 영변 원자로 가동, '6자회담 하자'는 통첩"

[긴급 인터뷰] "'불량학생'에 진정성 바라나…그러다 4차 핵실험한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미국 연구소의 전망이 나오면서, 이번 사태가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인다.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발표에서, 지난달 31일 영변 원자로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면서 연기의 양으로 봤을 때 원자로가 재가동 혹은 재가동 준비 단계에 들어갔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평가받는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은 13일 <프레시안>과 가진 긴급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의도를 "통첩"이라고 풀이했다. 중국이 오는 18일 갖자고 제의한 9.19 공동성명 8주년 기념 반관반민(1.5트랙) 대화 등 6자회담으로 가는 길에 호응해 나오라는 것이다.

정 전 정관은 북한이 지난 4월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선언한 이후 4개월이 지나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던 한미 양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했다. 한가하게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선(先)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 장관은 북한을 "교칙을 안 지키는 불량 학생"에 비유하면서 "그런 북한에 무슨 진정성을 바라느냐. 그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한미 양국의 대응을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계속 6자회담을 통한 해법을 외면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사보타지'한다면 결국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그는 지난 6월 북한이 북미 고위급 대화를 제의했을 때 "미국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북한은 핵실험을 또 할 수 있다"고 했었다. (
☞관련기사 보기) 이번 북한의 영변 원자로 가동은 미국의 반응에 따라 4차 핵실험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더 큰 영향을 받을 밖에 없는 입장인 만큼, 1.5트랙 대화 참여 등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을 견인하는 등 더 적극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긴급 인터뷰 내용이다. <편집자>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이 13일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를 갖고 있다. ⓒ원광대학교

프레시안 : 북한이 영변의 5MW(메가와트)급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미 대학 산하 연구기관의 발표가 있었다. 북한의 의도를 어떻게 분석하는가?

정세현 : 북한은 지난 4월 이미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선언했고, 그 후 5월부터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 김계관 외무성 1부상의 중국-러시아 연쇄 방문을 통해 '회담을 하자'고 해왔다. 그런데 반응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하는 방식으로 '지금 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핵 활동을 더 할 수밖에 없다'는 통첩을 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 시도 자체가) '협상용'이지만, 협상하자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즉 미국이 계속 호응해 나오지 않으면 북한은 핵 활동을 본격화하리라 생각한다. 가동 준비 중이라거나 가동 중이라는 등 해석이 엇갈리는데, 어쨌든 조만간 영변 원자로가 돌아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변 원자로는 플루토늄 생산 공장이다. 일단 가동되기 시작하면 1년에 6kg 정도를 생산할 능력이 있다. 1년에 핵폭탄 1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또 지난 8월 초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2배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우라늄 농축시설도 확장하고, 플루토늄 시설 가동도 시작한다면 이는 북한의 핵능력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얘기다.

프레시안 : '통첩'이라면, 결국 6자회담 재개가 북한의 노림수라는 것인가?

정세현 : 지금 1.5트랙 대화 등 6자회담으로 가는 길로 나가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 꼭 북한이 중국과 짜고 했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1.5트랙 대화라도 시작해서 본 회담으로 넘어가거나 북미 간 대화의 기회를 마련하자는 것이 북한의 의도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걸 계속 무시하면 북한은 영변 원자로를 가동하면서 기왕에 가진 플루토늄으로 4차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원자로가 돌아가면 1년에 6kg씩 생기니, 예상 수입이 있으면 지금 가지고 있는 플루토늄을 미리 당겨서 쓸 수 있지 않나?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과 경수로 협상을 할 때 북한이 협상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제스처, 즉 일종의 '페인트 모션'(feint motion, 위장전술)으로 영변 원자로에서 연기를 피워올린 일이 있었다. 이게 미국에 포착됐는데, 당시 미국은 '북한이 자기들 머리 위로 위성이 지나가는 시간도 알고 있고, 일부러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연기를 피움으로써 사진에 찍히도록 했다'며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것일 뿐, 도발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번에도 8월 31일 연기를 올린 것은, 9월 초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글린 데이비스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동북아 3국 연쇄방문을 앞두고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한다. 단, 1995년엔 1회성 '페인트 모션'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해석하고 '할 테면 해 봐라'는 식으로 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후회스러운 일, 핵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이번 사태의 배경을 짚는다면?

정세현 :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나는 미국이라고 본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능력이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틈새 시간'을 주면 북한은 반드시 핵능력을 강화하니까 끊임없이 협상해야 하고, 북한이 협상의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핵 활동을 그나마 중단시킬 수 있다.

그래서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뒤에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9.19 공동성명 공식'으로 핵문제를 풀려 했는데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000'을 내세우며 발목을 잡았다. 그러니 미국도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 하에 북한의 우선적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북한 선(先)행동론으로 전환했다. 그 때부터 북한의 이번 행동은 예견됐던 것이다.

또 오바마 2기 행정부에 들어와서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하는데, 도대체 국제정치에서 어떻게 상대방의 진정성, 선의를 전제로 협상을 시작하나. 서로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고 이기려 드는 게 정치이고 외교 아닌가. 북한이 들으면 기분 나쁠 표현이지만, 어차피 북한은 교칙을 안 지키는 '불량 학생'이다. 유엔 제재라는 '정학'도 여러 번 맞았고, 그럼에도 버릇을 안 고치고, 하지 말라는 짓을 계속하는데도 어쩔 방법이 없어 놔두고 있는데 무슨 진정성 타령인가.

그렇게 시간을 끌더니 결국 이 지경이 됐다. 북한은 지난 4월부터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공표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안 기울였다. 개성공단 문제도 터지고, 한미 연합 키 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연습이 진행되면서 미국의 B-52니 B-2 스텔스 폭격기니 니미츠 항공모함까지 한반도 동·서해로 진격해 중국, 러시아까지 위협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그걸 4개월이나 놔뒀다가 이제와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면서 예상보다 재가동이 빨리 시작됐네 이런 분석이나 내놓고 있는데, 민간 연구소가 사진을 분석한 결과라지만 미 정보기관과 연결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시점이 바로 데이비스 대표가 우다웨이(武大偉)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만나는 시점이다. 8월 31일에 올라온 연기를 한참 보고 있다가 이번 달 11일에야 터뜨린 이유는 뭔가?

프레시안 : 중국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것인가?

정세현 : 그렇다. 미국은 북핵 중국 책임론, 중국 역할론을 얘기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이 '핵 카드'로 얻어내려는 반대급부를 중국이 줄 수는 없다. 북미 수교든, 경제 지원이든, 평화협정이든 다 미국이 나서야 한다. 이걸 또 중국 책임으로 넘기면서 북한이 핵능력을 키우도록 방치한다면 나중에는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지난 번 '정세토크'에서 미국이 북핵 문제를 사보타지하고 있다고 얘기했는데(☞지난회 '정세토크' 바로보기)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북핵 비확산'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게 아니냐는 말을 했었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G20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하자'고 해도 미국은 별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네' 하고 그냥 주저앉을 사람들 같은가? 가볍게 보지 말자.

프레시안 : 북한의 핵능력 신장은 한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요소인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세현 : 한국 정부는 '예의주시해 왔다'는 반응인데, 정말 주시해 왔다면 데이비스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 대책을 논의했어야 하지 않는가?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책임 회피가 되나? 미국의 일개 연구소에서 그런 발표가 나오니 창피해서 '알고 있었다'고 둘러대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식의 합의를 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원광대학교
미국의 러셀 차관보나 데이비스 대표는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진정성 타령을 하며 '시기상조'라고 하는데, 미국은 기왕에 북핵을 '강 건너 불'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은 솔직히 이제 한반도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본다. '북핵 비확산'으로 가려는 상황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이 조금 커져 봐야 미국엔 큰 위협이 안 된다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미국처럼 그러면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의 핵능력이 커지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경제가 심리이듯 안보도 심리이기 때문이다. 북핵을 대하는 절박성 면에서 우리가 미국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1.5트랙 6자 대화에 나가야 한다고 미국에 얘기하고 조율을 해서 영변 원자로 가동을 지금 단계에서 중지시켜야 한다. '호미로 막자'는 것이다.

나중에 북한이 플루토늄을 더 만들어서 박근혜 정부 시기에 핵실험을 두어 번 더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안보 논리를 강화해서 국내정치적으로는 정권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국가적으로는 굉장히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 비용이 얼마인가? 또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도 더 높아질 것 아닌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해도 미국이 '전략적 인내'니 '북한의 선 조치'니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4차 핵실험까지 간다면 핵무기의 소형화나 경량화에 상당 부분 접근했다고 봐야 한다. 핵능력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 한국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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