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이나 TV 토론을 하면서 문재인 후보의 사과를 요구했는데,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으니 적어도 그 부분은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은데 대해 "지금은 재판 진행 중"이라며 사실상 거부했다.
전 의원이 "그러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야 얘기한다는 것이냐?"고 묻자 허 실장은 "그렇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허 실장은 "검찰이 기소한 내용에 대해 국정원 당국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의원은 또 국정원 사건 수사 결과를 법무부에서 청와대에 보고한 시점이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이전인지 이후인지 물었고, 허 실장이 "(발표) 뒤에 받았다"고 답하자 "법무장관은 수사 결과 발표 전에 보고했다고 하는데 왜 말이 다르냐? 그러니 곽상도 민정수석 출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에서는 국정원에 대한 엄호사격이 이어졌다. 김진태 의원은 "국정원이 '종북세력 집권 막아야 한다'는 댓글을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연한 것을 왜 이렇게 얘기해야 하나 답답하다. 종북세력 집권을 막는 게 국정원의 기본 임무 아니냐"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 집권을 막으려 한 '종북 세력'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거부한 점을 들며 "결국 원 전 원장은 이렇게 대선 판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허 실장이 "재판에 회부된 사안에 대해 비서실장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한 발 물러설 정도였다.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는 강은희 의원도 "국정원 사건이 '국기문란'이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가"라며 "과연 선거 개입 목적으로 댓글을 달았는지, 흔적이 남을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또 "(민주당에) 제보한 국정원 전 직원 김○○ 씨는 국익을 위해 순수하게 제보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거라면 진작에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순수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보 시기를 문제삼아 의혹을 제기했다. 강 의원은 "국정원 여직원은 당시로서는 국가 직무를 하고 있었다"며 "그런 사람을 3일간 감금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명해야 하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8일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
허태열 "NLL 대화록은 대통령기록물 아니야"…야당 반발
그러나 이날 오후 운영위 회의에서 가장 열띤 쟁점은 전날 국정원에 의해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였다. 허태열 실장은 "(자료 공개는) 국회법 절차에 따라 한 것으로 안다. 법을 위반했다면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국회법에 적합하냐 하는 문제는 국회에서 의원님들께서 판단하시기 바란다"고 선을 그었다.
허 실장은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보면 대통령, 대통령을 보좌하거나 및 경호하는 기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생산한 기록물을 대통령기록물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어제 국정원이 제공한 것은 국정원 등 중앙행정기관이나 지자체가 생산한 '공공기록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야당은 기록을 한 것이 국정원이라고 해도 발언의 주체가 대통령인 이상 해당 기록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면서 남재준 국정원장의 자료 공개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또 설사 국정원 주장대로 공공기록물이라고 해도 상임위 의결을 거치지 않고 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공개한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도 폈다.
반면 여당은 '국정원이 만든 공공기록물이 맞다'면서 더 나아가 전체 대화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공을 폈다. 특히 윤상현 의원은 "공개하면 남북관계가 파탄단다고 하는데, 정상적 남북관계를 만들기 위해 공개해야 한다"며 "제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는 불평등하고 굴욕적인 갑을관계"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 뿐 아니라 홍지만 의원 등 다른 여당 의원들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제기돼 온 대미, 대일 외교를 '정상적'으로 바로잡기 위해 정상회담 비공개 발언록을 공개할 필요는 없듯, 무리한 주장이라는 역 지적도 예상된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이나 일본과 독도 문제를 놓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의혹이 나온 바 있지만, 해당 정상외교 기록 공개가 요청된 적은 없었다.
김장수 "노무현, NLL 포기 지시 안해…그 문제로 갈등 없었다"
이 와중에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그 묘한 위치로 인해 주목받았다. 김 실장은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2007년 당시 남북 국방장관 회담 성과로 'NLL 유지'를 들지 않았나?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NLL과 관련해 '포기하라'는 등의 지시를 한 일이 있는가"라고 물은데 대해 "그런 지시는 없었고, 노 전 대통령은 저와 꽤 사이가 좋아 (협상 권한을) 위임해 주셨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실장은 "회담을 앞두고 회담전략보고를 할 때 (노 전 대통령에게) '지침이 있으면 달라'고 했더니 (노 전 대통령이) '뭘 원하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아무 지침 주지 마시고 제가 소신껏 하고 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마음껏 하고 오라'고 해 제 소신껏 하고 왔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하고 저하고 NLL 가지고 갈등이 있거나 한 적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단 김 실장은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보는지'를 물은데 대해서는 "진실은 밝히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해 파장을 낳기도 했다. 김 실장은 "그러나 절차나 구색도 있으니 정치권에서 결심하는 게 낫지 않나"며 "(공개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사람이 동의한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고, 여야 간 이해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 잘 협의해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한다"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허태열 "인사, 백지상태로 했다"…정권 초기 인사시스템 미숙 고백 이날 허태열 비서실장은 정권 출범 초기의 인사 참사가 청와대의 역량 부족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다. 허 실장은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면서 "집권 초에는 (인사 시스템을 담당하는) 사람이 다 바뀌었고, 아무 데이터가 없이 백지에서 인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검증이 부족하니 결국 윤창중 사태가 터진 게 아니냐'고 질책을 쏟아냈고 허 실장은 수 차례 "잘못됐다"며 인정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윤 전 대변인의 귀국 보고가 있었나, 없었나? 비서실장 보고도 없이 마음대로 귀국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자 "말이 안 되는 일이 터진 것"이라고도 했다. 단 그는 "인사 검증을 해본들 그 분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겠느냐"며 "돌발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허 실장은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 질의 순서에서는 윤 전 대변인에 대해 "나름대로 정권창출에 기여하신 분"이라며 "대변인으로 부임해 자기 직책을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는 안 했다"고도 했다. 여당 소속인 홍 의원조차 "그 평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허 실장은 앞서 청와대가 업무연락망을 통해 공공기관장 선임절차 잠정 중단 지시를 내렸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개입한 바 없다"면서 "사실이라면 잘못이나, 세상에는 이상한 문서도 많다"며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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