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삼성 불산 사고 등 연이은 화학 물질 사고에도, 관련 법들이 산업계의 요구에 맞춰 만들어진 탓에 화학 물질 사고 방지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화평법,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못 막는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고자 등장한 화평법은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여야 의원들이 합의한 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 자체도 부실했는데 경제계의 전 방위 로비를 받은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안을 '앙꼬 없는 찐빵'이자 '이빨 빠진 호랑이'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원안에서 핵심 사항 4가지가 빠진 채로 화평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원안에서는 '화학 물질 제조 등 보고 의무 대상'으로 '제조·수입·사용·판매자'를 명시했으나 개정안에서는 '사용자'가 삭제됐다. 제품을 제조할 때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산업체의 보고 의무가 없어진 것이다. 또 '화학 물질 사용자의 제조, 수입자에 대한 용도 등 정보 제공' 사항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한 원안에서 '요청받은 경우만 제공'하도록 변경됐다.
'유해 화학 물질 함유 제품 제조 사전 신고' 대상에 대한 규제도 느슨해졌다. 원안에는 '유해 화학 물질이 중량 비율로 0.1퍼센트 초과하거나, 성상 구분 없이 연간 1톤 이상인 경우'였으나 이는 '화학 물질이 사용 과정에서 유출되지 않고, 고체 형태로 기능하는 제품은 제외'된다고 바뀌었다. '불성실 보고 업체 등에 대한 과징금 조항'은 아예 전면 삭제됐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를 청소하는 세정제로 사용되던 살균 성분의 화학 물질을 아예 가습기 물통에 넣은 채로 쓰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 살균 성분의 화학 물질이 물과 함께 분무되어 사용자의 호흡기와 폐에 직접 노출되면 폐 섬유화 증상을 일으킨다"며 "그러다 결국 사망까지 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들은 "이렇듯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화학 물질의 사용 용도 변경에 따른 건강 영향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행위가 야기한 전대미문의 화학 물질 참사"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따라서 화평법은 원안대로 화학 물질 사용자(제품 제조 회사)가 원료 수입 또는 제조사에게 화학 물질 사용 용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용도에 따른 노출 위험 평가가 이뤄지도록 하는 안전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등의 환경 단체 회원들이 화평법과 유해법의 핵심 조항 삭제를 비판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잇따른 사고에도 국회가 제대로 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냐' 캠페인을 진행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
핵심 조항 2가지 빠진 유해법
유해법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유해법 역시 지난달 30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상정됐으나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법안심사2소위원회에 회부됐다.
당시 반대 의견 중에는 유해 물질 배출 기업에 대해 전체 매출액의 10퍼센트 이하로 과징금을 물리자는 환경노동위원회의 개정안이 기업에 과중한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사고 발생 시 원청 업체도 공동으로 사법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분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컸다.
결국 '해당 사업장 전체 매출액 5퍼센트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변경된 유해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와 관련해 기자 회견 주최 측은 "사고 발생 기업이 매출액 대비 10퍼센트까지 과징금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고, 하청 업체에 사고 책임을 떠넘기던 관행을 원청 업체가 공동으로 책임지도록 한 것이 유해법이었다"며 "이는 구미 불산 사고, 삼성 불산 사고, 여수 산단 폭발 사고 등 연이어 발생한 유해 화학 물질 누출 사고를 겪은 뒤 화학 물질의 안전 관리를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장치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그런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화평법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 단체의 노골적인 로비에 넘어가 핵심 조항 두 가지를 개악시켜버렸다"고 밝혔다.
이어서 이들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경제계는 환경노동위원회의 원안이 과하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어떻게 하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화학 물질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사고 예방 대책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화평법과 유해법의 핵심 조항을 삭제하는 데 일조한 환경부의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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