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계에 또 스캔들이 터졌다. 신세대 작가 한한(韓寒)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제1회 신개념글쓰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에서 일곱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자 제도권 교육을 거부, 학교를 그만둔 뒤 대학 진학도 포기하면서 전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작가가 된 그는 잡지 편집장, 작곡가, 프로 카레이서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한은 중국의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또 2010년에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들기도 하고, 2011년에는 중국 포털 사이트 '바이두'를 상대로 자신의 작품이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자의반 타의반으로 끊임없이 뉴스를 만들어왔다.
<삼중문>, <1988: 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영하 1도> 같은 소설이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바 있는 그가 인터넷 블로그를 중심으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해 말 한한은 평소처럼 <혁명을 말하다>(談革命), <민주를 논하다>(論民主), <자유로워지고 싶다>(要自由)는 제목의 글 세 편을 잇달아 블로그에 올렸다. 이 글들은 빠르게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논쟁의 대상이 됐다. 중국 사회의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지는 '혁명', '민주', '자유'와 같은 키워드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게 문제가 됐다. 이런 중요한 가치들이 서로 돈과 권력으로 뒤얽혀 있다며 중국공산당부터 시민들의 생활태도까지 문제를 삼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집필가인 이중티엔(易中天)이 즉각 한한의 결론이 현실을 오도하고 있다며 반격을 가했고 논쟁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되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초 마이티안(麥田)이라는 정보통신 분야의 평론으로 이름난 블로거가 한한의 신개념글쓰기대회 수상작인 <잔 속에서 보는 사람>(杯中窺人)이라는 글에 대한 심사를 아버지인 한런쥔(韓仁均)의 같은 학교 출신인 리치강(李其綱)이 담당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한한의 글에 많은 고전 명구와 심지어 라틴어까지 등장한다는 사실을 들어 영어도 잘못하는 열일곱 살 소년이 현장에서 직접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한한 아버지의 대필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삼중문> 이후에는 출판인 루진보(路金波)가 뒤에서 그를 조종하여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이미지를 조작해 왔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이렇게 전개되자 중국의 폭로 전문가인 팡저우쯔(方舟子)가 마이티안을 이어받아 한한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팡저우쯔는 학계와 과학계 기업의 부도덕한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이슈화해온 인물이다. 이런 결과로 그는 괴한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정의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면서 유명 인사가 됐다. 팡저우쯔는 여러 편의 글을 잇달아 발표해서 한한의 대필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한한은 이에 맞서 그를 격렬히 비난했고, 급기야 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이 대필임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2천만 위안(약 36억 원)을 주겠다며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자 영화배우 판빙빙(范冰冰)도 같은 액수를 제시하며 거들고 나섰다.
이번 사태를 보면, 중국 문화계의 논란거리를 해석하는 몇 가지 시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중국 문화계 이슈에 대한 당국의 개입 여부다. 즉 문화계 내부의 사건이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갈 개연성이 있는 경우, 중국 당국은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번 사태에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고 있다. 왜냐하면 한한이 이집트나 시리아 사태와 같은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다소 민감한 주제인 '혁명'과 '민주', '자유' 등을 거론했는데, 이에 대한 논쟁이 확산되는 시점에 대필 의혹이 터져 나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국에서 의도적으로 관련 논쟁을 차단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한의 블로그에 아직도 세 편의 글이 그대로 올라 있고, 여전히 인터넷에도 그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연초 논쟁의 큰 물줄기가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당국의 적극적 개입보다는 사회 내부의 자율적 흐름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둘째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까닭이 중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당국의 의도적인 '언론 플레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 말은 중국 사회의 여론 형성의 구조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1958년의 반우파 투쟁이나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등이 모두 언론을 활용한 문제제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역사적 사건들은 당국이 정보를 제공하면 언론이 받아쓰고, 언론의 보도는 다시 당정의 주요한 이슈가 되고, 나아가 문제가 증폭을 거듭하면서 중국 사회의 주요한 흐름을 바꿔버리는 구도를 보여주었다.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언론' 역시 당국에 의해 여러 경로와 방법으로 제어되고 있지만, 네티즌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공식적인 당국의 개입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비공식적'인 개입 여부까지도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는 중국 사회 내부에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급속도의 경제 성장과 대외 개방 등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반우파 투쟁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역사적 트라우마는 이런 논쟁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중국인들이 완전한 심리적 자유를 회복한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인들은 공개재판이나 인민재판처럼 타도 대상자의 인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반론권마저 보장하지 않은 채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린 집단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행위는 언제나 도덕적, 정치적 우위에 서 있다고 자처한 집단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공간 속에서 상호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특히 팡저우쯔는 그 동안 다양한 도덕성 폭로의 성과를 가지고 이번 논쟁에 뛰어들었고, 한한 역시 당당한 태도로 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사실 어느 한 쪽에 일방적인 승패를 안기기보다는 다소 긴 법정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세간의 열기는 식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팡저우쯔의 방식, 즉 폭로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어떤 효과를 가져 오는지 혹은 그런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학습도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쨌든 팡저우쯔의 방식이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중국 사회의 많은 현상이 여전히 막후의 결정에 의존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는 중국 문화계 내부에 다분히 세대 갈등의 소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한한은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신세대 작가다. 이 세대는 문화대혁명을 역사적 기록으로만 학습했고 개혁개방과 더불어 자라나면서 오늘날 놀라운 중국 경제 성장의 혜택을 가장 직접적으로 누리고 있다. 또 문자적으로만 이야기되는 '혁명' 같은 개념을 신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민주나 자유 등의 개념이 대단히 이중적이고 혼종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와 달리 이중티엔이나 팡저우쯔 같은 그의 위 세대가 한한의 공격자로 나선 것은 중국 문화계에 이미 세대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 문화계는 훨씬 더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더 창의적인 젊은 세대의 물결을 이미 맞이했다. 한한 뿐 아니라 베이징 798로 대표되는 미술가 집단, 저우웨이후이 같은 신인류 작가들, 캠코더를 들고 직접 다큐멘터리를 찍는 수많은 독립 영화작가들의 대열이 시작됐다. 이들이 이제 중국 문화계의 새로운 세기를 펼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젊은 여배우 판빙빙이 한한의 동지를 자처한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치 않다. 그럼에도 중국 문화의 신세대가 어떻게 위 세대와 결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 과정에서 앞으로도 적잖은 소란이 벌어질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