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의 유고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는 매우 신속하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북한 붕괴 여부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어떤 정책과 노선을 취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김정은 체제가 가동을 시작한 이상 향후 북한의 선택과 미래 역시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 질서에 1차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북한발 권력 교체가 2012년 동북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임진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한다. 용 중에서도 유난히 기가 세고 파란만장하다는 흑룡의 해라면 분명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심상찮은 격동과 변화의 조짐을 예상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한반도를 둘러싼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른바 권력교체기를 맞게 된다. 3월엔 러시아 대선이 예정되어 있고, 10월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는 5세대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이며, 11월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리고 12월에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2012년에 언제라도 총리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 임진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한다. 용 중에서도 유난히 기가 세고 파란만장하다는 흑룡의 해라면 분명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심상찮은 격동과 변화의 조짐을 예상케 한다. ⓒ뉴시스 |
2012년 예정된 동북아 국가의 권력교체는 일단 상수와 변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귀환하는 것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구축되는 것은 일단 상수로 봐야 한다. 진행되고 있는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교체 역시 대세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과 한국의 대선 결과와, 일본의 총리 교체는 정확한 전망이 어려울 정도로 예측이 불가하다. 결국 2012년 권력교체의 결과는 김정은의 북한과 시진핑의 중국 및 푸틴의 러시아를 한 축으로 하고 나머지 한‧미‧일의 권력 변동 결과가 마무리되면서 셋팅이 완료될 것으로
일단 상수에 가까운 북‧중‧러의 새로운 리더십은 오히려 정책 기조와 노선이 큰 틀에서 예상될 수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민족주의적 정서를 내세우며 아시아 특히 동북아에 관심을 상대적으로 많이 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의 중국 역시 크게는 후진타오(胡錦濤) 시기 정책 노선을 계승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중관계 정립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북한도 선대 수령으로부터 유업을 물려받은 유훈통치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우선은 기존 정책을 따르는 보수적 안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한‧미‧일 특히 한국과 미국의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대미, 대중, 대북 정책 기조의 변화 혹은 지속이 예상되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 나라의 대외정책이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 정세를 규정하게 되고 이에 대한 북·중·러의 대응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2013년 체제'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권력교체가 마무리되고 각 정권의 대외정책 방향이 제시되면서 2013년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 정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010년 한반도와 동북아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국과 미국은 북한 소행으로 결론짓고 대북 제재와 군사적 시위에 대대적으로 나섰고 북한을 여전히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고 북중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은 천안함과 관련한 북한의 주장을 전폭 지지하고 한미 합동훈련에 대항해 서해상에서 첨예한 군사적 강경 대응을 서슴지 않았다. 천안함 이후 북·중 대 한·미의 위기고조를 겪은 뒤에도 연평도 포격이 발발함으로써 또 다시 서해 바다는 긴장이 고조되었다. 다시 한국과 미국은 대규모 합동훈련을 강행했고 중국 역시 불쾌감과 함께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강경 대 강경의 긴장고조를 교환한 미국과 중국은 결국 한반도 위기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임을 실감하고 결국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최우선의 과제로 도출하고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 원칙에 합의했다. 대결과 갈등의 동북아가 결코 미중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음을 실감한 것이었다.
2010년 최고조에 달했던 겪었던 한·미 대 북·중의 긴장 상태도 사실은 남북 대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포용을 포기하고 대북 압박의 강경정책을 지속하면서 선(先) 북한 굴복론과 '기다림의 전략'으로 일관했던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망실을 가져왔고 북한의 강경 대응과 무력 도발은 다시 또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중단을 더욱 정당화하고 지속시켰다.
대화와 협력이 끊긴 채 남과 북이 극단적인 대결을 주고받는 사이 중국과 미국이 대결구도에 개입했고, 급기야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국면에서는 북·중 대 한·미의 구시대적 냉전 갈등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남북의 갈등과 대결이 불안정한 한반도를 만들어내고 불안한 한반도는 다시 또 불안한 동북아의 토대가 되고 만 셈이다.
'2013년 체제'의 향방이 대결과 갈등의 재연인가 아니면 평화와 협력의 구도인가는 사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이 키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 출범하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이 강경한 대결적 기조를 유지한다면 중국 및 북한과 갈등의 재생산 구조는 불을 보듯 뻔 할 것이다. 역으로 한·미의 대외정책 기조가 화해와 협력의 방향을 지향한다면 남북관계와 미중관계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결정요인은 남북관계이고 이는 곧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미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와 남북관계에 관해 거의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주장을 수용하는 형편이다. 한국 정부가 '비핵·개방·3000'과 '그랜드 바겐'을 내세우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보다는 남북관계 중단을 불사하면서 대북 압박에 나설 경우 미국으로서는 우선 한미공조에 의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주저하고 북한의 선 변화를 기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대북정책과 남북관계가 외교안보의 핵심이자 사활적 영역이지만 미국에게는 전 세계 이슈 중 하나이고 시급성의 순위가 한참 뒤로 밀리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주도권은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한국이 운전석에 앉고 미국은 조수석에 있게 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는 결국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스탠스에 좌우된다고 봐야 한다.
2012년 권력교체에 따라 형성되는 이른바 '2013년 체제'는 평화·번영의 동북아를 지향해야 한다. 북·중·러의 지도부가 새로 구성된 한·미·일의 리더십에 맞서 또 다시 냉전시기의 대결과 갈등을 계속한다면 흑룡의 해는 위험한 회오리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반대로 북·중·러의 신지도부가 한·미·일 리더십과 협력하면서 작게는 한반도 평화, 크게는 동북아 협력이 조성된다면 흑룡의 해는 욱일승천의 신바람이 날 것이다. 그리고 갈등과 대결의 동북아가 아닌 평화와 협력의 동북아는 기실 화해협력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서 비롯된다. 평화 지향의 '2013년 체제'를 기원하는 우리가 2012년 대선에서 화해협력의 대북정책을 펼쳐나갈 새로운 정부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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