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국영 <나일뉴스>의 1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와 진압군의 충돌이 48시간을 넘어 사흘째 계속되면서 최소 10명이 숨지고 494명이 부상했다. 사망자들의 주로 총격으로 인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 일부는 '정부군이 국회 건물 옥상에서 조준 사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지난달 18일부터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3주째 반(反) 군부 연좌농성을 진행 중이었으나 군과 경찰이 지난 16일 광장에 진입해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를 해산시키려 하면서 폭력 사태가 벌어져 인근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화염병으로 인해 고대 유물이 전시된 전시관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현지 TV 방송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시위 진압에 나선 이집트 군 장병들은 여성 시위대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가며 이슬람교 전통의 여성 머리쓰개를 벗겨냈고 일부 시위대는 체포 과정에서 속옷만 남겨진 채 거의 옷이 벗겨지기도 했다.
이집트 민영 <CBC> 방송은 16일 오전 타흐리르 광장으로 들어간 진압군이 두 명의 시위대를 곤봉으로 구타하며 그 중 한 명의 머리 부분을 계속해서 발로 밟는 모습을 내보냈다. 머리를 걷어채이고 있는 젊은이는 거의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쓰러져 있었다.
사망자들 중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기관 '알아자르' 소속 성직자인 셰이크 이마드 에팟(52)도 포함됐으며 17일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이 모여 "복수, 복수!"를 연호했다고 <AP>는 보도했다. 그러나 이집트 <메나> 통신은 숨진 성직자가 이슬람 율법해석(파타와)을 공표하는 기관인 '다르 알이프타' 소속이라고 전했다.
또 진압군 일부는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 중인 광장 인근의 건물을 습격해 기자들을 체포하고 카메라를 빼앗았다. <알자지라> 방송의 카메라와 기타 기재들은 빌딩의 발코니에서 밖으로 내던져졌다.
▲이집트 군인들이 17일(현지시간) 한 여성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이같은 강경 진압 장면으로 인해 군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자유주의 성향의 야권 지도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트위터를 통해 "부끄럽지 않은가?"라며 군부를 비판했고 19세 여학생 토카 나세르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사람다운 일인가? 존엄은 어디 갔는가?"라고 분노를 드러냈다.
그러나 카말 간주리 신임 과도정부 총리는 시위대를 비난하며 군부를 옹호했다. 간주리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총격은 군부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며 정체가 불명확한 세력에 의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하면서도 "지금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는 혁명의 젊은이들이 아니다. (…) 이는 혁명이 아니라 혁명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현재 2차까지 진행된 이집트 총선에서 최다 득표를 하고 있는 온건 이슬람주의 정파 무슬림형제단 계열의 자유정의당도 성명을 내고 '군이 시위대 진압을 위해 국회 건물을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위대들 중 일부는 이슬람주의 정파들이 선거에만 신경을 쓰고 군부 퇴진 시위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AP>는 전했다.
통신은 이집트 군부가 강경 대응을 보이는 배경이 총선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놨다. 즉 타흐리르 광장에서 주로 시위를 이끄는 자유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반면, 시위에 적극 관여하지 않는 이슬람주의 정파들로 표가 몰리는 민심을 지켜보면서 시위에 강경 대응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리라는 풀이다.
이집트에서는 지난달 28~29일의 1차 투표와 지난 13~14일의 2차 투표에 이어 다음달 10~11일 3차 투표로 이어지는 총선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결과로는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과 강경 이슬람주의 정파인 살라피주의자들의 누르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진보‧자유주의 성향의 세속주의 정파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