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에서는 "안정적이고 강력한 중국은 지속적으로 동아시아의 현상 유지에 도전할 것"이고, 반대로 "중국이 불안하고 약해지더라도 중국 지도자들이 외국을 상대로 한 군사 모험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위험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언급했다. 시나리오는 2025년경에 중국은 대만에 자신이 원하는 조건 하에 통일에 동의할 것을 강요하고, 대만이 이를 거부하자 대만 해협을 봉쇄하는 것에서 시나리오는 시작된다.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함대를 보내려고 하자, 중국은 미국 함정에 대한 공격을 경고하면서 '전쟁을 택하던지, 물러서든지 양자택일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이 주저하자 대만 경제는 붕괴되기 시작하고 결국 중국의 통일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진다. 미국의 안보 공약에 의심을 품은 아시아 동맹국들이 중국에 줄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주일미군 기지 폐쇄를 약속하고 중국과 우호 관계를 선택한다. '통일 코리아'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 보고서는 "중국의 목표는 아시아를 정복하거나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
'중국의 거부 전략을 무력화하라'
12년 전 펜타곤 보고서를 새삼 거론한 이유는 이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던 마셜과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순평가국 소장인 마셜과 합동사령부 사령관인 매티스는 2010년 <4개년 국방정책 검토 보고서(QDR)> 작성 당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접근 거부 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이 내용을 QDR에 포함시킨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주문은 '공해전'(空海戰, AirSea Battle) 개념을 통해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미국의 '신냉전 전쟁 계획'으로 일컬어지는 공해전 개념은 미 공군, 해군, 해병대가 합동 전력을 구축해 중국의 거부 전략을 무력화하고자 고안된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11월 초순 해공군과 해병대로 구성된 '공해전 부대'를 신설했다고 발표했다.
이 부대는 8월에 은밀히 창설되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인 11월 8일 공개됐다. '중국 때리기'를 통해 재선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펜타곤은 우선 해·공군과 해병대가 참여하고, 육군도 차후에 결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한 합동 전력을 구축하게 된다.
펜타곤은 이 부대의 창설을 공식 확인하면서 "공해전 개념은 선진 무기 기술과 거부 능력의 확산에 대응해 미국의 지속적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각 부대가 합동 작전을 펼치는 데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전지구적으로, 특히 아태 지역에서 "접근의 자유"(freedom of access)를 유지·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공해전 개념, 미-중 군비경쟁에 기름 붓나?
미국은 중국의 군비 증강의 핵심이 '거부 전략'(denial strategy)에 있다고 본다. 거부 전략이란 명시적·잠재적 적대국이 자신의 세력권에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려는 군사적 능력과 전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중국은 잠수함과 대함 미사일 전력을 비약적으로 증강해왔고, 최근에는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탄도미사일(DF-21D)과 최초의 항공모함을 선보이기도 했다. 중국 거부 전략의 핵심적인 대상은 역시 미국이고 지역은 대만해협이다. 작년부터는 서해와 남중국해도 미중간 갈등의 바다로 부상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에서 패권적 지위를 누려왔던 미국은 다시 아시아에 힘을 집중시켜 중국의 거부 전략을 무력화하려고 한다. 앞서 소개한 공해전 개념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중국 군사력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해양 통제와 전력 투사 능력을 유지하고, 아시아 동맹국들을 안심시켜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를 공고히 하겠다는 계산이다.
무력화 대상에는 중국의 잠수함, 위성파괴무기, 스텔스 전투기, 미국 항모와 해외주둔 미군을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그리고 사이버 공간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새로운 장거리 폭격기 개발·배치, 잠수함과 스텔스 전투기의 합동 작전, 작전반경 1600km의 장거리 무인공격기 배치, 중국 내륙에 대한 해공군 및 해병대의 합동 작전, 중국 내에 배치된 위성파괴무기 공격, 미국 위성의 생존성 강화, 중국을 상대로 한 사이버전 전개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11월 9일자 <워싱턴타임스>는 전했다.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비용을 상쇄할만한 이익이 있는지에 있다. 우선 공해전 전력 구축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반면 미국은 군비 삭감 시대에 들어간 상황이다. '쓸 돈은 줄어들고 있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공해전은 냉전형 군사전략이라는 점에서 이미 불 붓은 아태 지역의 군비경쟁을 더욱 격화시켜 군사적 긴장고조와 위기관리의 문제점을 키울 우려도 크다.
실제로 미국이 공해전 개념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자 중국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14일자에 따르면, 인민해방군의 판가오위예 대령은 미국의 공해전 개념이 "미국의 주적을 국제 테리리스트에서 인민해방군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군비증강은 대만 독립 및 미국의 개입을 예방하는데 국한되어 있다며, "만약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다면, 우리도 거부 능력 증강을 중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14일자 사설을 통해 미국이 신냉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공해전 시스템을 추진한다면, 중국도 거부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을 아시아에서 축출할 의도가 없지만, 위기 상황시 미국의 간섭에 단호히 맞설 수 있는 단호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중간에 군사적 불신과 적대감, 그리고 군비경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의 선택도 대단히 중요해지고 있다. 자칫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 끼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한미 전략동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우리의 살 길인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다. MB의 '한미동맹 올인'이 강대국간 패권 경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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