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적 경험이 풍부하다. 그리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을 준비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을 보좌했다. 그리고 2000년 11월 북미 양국의 마지막 협상이었던 쿠알라룸푸르 북미 미사일 협상의 미국측 대표였다. 제대로 협상을 해본 사람이다.
그녀가 웬디 셔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의회 인준을 통과하고, 정식으로 국무부 정무차관이 된 지 2주가 지났다. 이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달라질까? 그래서 북미 대화가 이루어지고, 6자회담도 열릴까?
▲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2000년 대북정책 조정관 시절 조명록 북한 차수와 만나는 장면 ⓒ연합뉴스 |
웬디 셔먼, 구원 투수가 될 수 있을까?
청문회에서 했던 그녀의 발언들을 검토해보자. 공화당의 강경정책과 부딪치지 않고,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수 없기에 원론적이다. 균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발언의 숨은 뜻을 재해석해야 한다.
그녀는 '좋은 해법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새로운 대북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다는 뜻이다.
정책은 레토릭이 아니다. 정책이란 현안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점검하고, 절차와 과정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셔먼의 현실인식은 옳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북한과의 협상은 그녀의 말처럼 인내심이 필요하고,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리고 그녀는 "오바마 행정부도 6자회담을 지속하며 페리 조정관이 제시했던 두 갈래 해결책을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우리 언론은 대부분 '채찍과 당근의 병행'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페리 조정관이 제시한 두 갈래 해결책은 단순히 북한의 행동을 보고 압박하거나 또는 대화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나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는 전략'과 다르다. 1999년 페리 보고서는 최선의 노력으로 협상을 해 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다른 수단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접근이다.
또한 그녀는 말했다. '어려운 상황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북핵 문제는 복잡해졌다. 1990년대과 비교해서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환경도 달라졌다. 중국이 부상했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커졌다. 북한이 대미 관계 개선에 사활적 이해를 갖고 있었던 클린턴 행정부 시기와 많이 달라졌다. 대미 관계가 개선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후계체제를 인정받고, 경제 발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의 협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국무부 정무차관은 북핵 문제만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다. 세계 질서는 복잡해지고, 미국의 외교적 리더십은 약화되고 있다. 당연히 북핵 문제보다 시급한 외교적 현안들이 적지 않다. 미국의 국내 사정도 좋지 않다. 공화당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셔먼은 초당적 협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또한 한반도 정책에서 북핵 문제는 장기적인 이슈고, 이명박 정부와의 협력은 단기적인 이익을 주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오바마 행정부 통상정책 성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한반도 정책에 미칠 영향도 있다. 이미 지난 8월 백악관은 공화당과 재정적자 감축안을 합의한 바 있다. 그중에서 국방비의 감축은 불가피하다. 미군의 해외주둔 정책은 변화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한국에 막대한 방위비 분담 요구로 나타날 것이다. 위키리크스에서 재확인되고 있지만, 한미동맹을 신앙으로 여기는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는 고마울 따름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공조 달라질까?
웬디 셔먼도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 것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차이를 가능한 표출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다만 공조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오바마 행정부는 가능하면 이명박 정부의 뒤를 따라왔다. 물론 그것이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 실패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를 따라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추구해서 얻는 미국의 이익과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필요성 사이에서 미국은 지금까지 왔다 갔다 했지만, 서서히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미국도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오바마 행정부는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외교'를 비판했다. 현재의 상황은 안타깝게도 부시 행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북핵 문제는 더 악화되었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의 획기적 진전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의 입구라도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했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웬디 셔먼은 어려운 상황에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도 있다. 오바마 인수위에서 국무부 담당 인수위원으로 함께 일했던 토머스 도닐런이 작년 10월부터 국가안보 보좌관을 맡고 있다. 백악관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협상의 경험이 없고, 소극적인 현재의 동북아 팀을 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명박 정부가 변해야 할 때
조만간 북미 양국의 추가적인 양자접촉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협상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협상의 재개 자체가 의미가 있다.
물론 상황은 너무 달라졌고,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핵심에 한국의 달라진 역할이 있다. 페리 프로세스의 채택 과정에서, 그리고 2000년 클린턴 행정부의 뜨거웠던 대북정책에는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김대중 정부에 맡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안 되는 방향으로 운전을 했다.
이명박 정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면 당연히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속도를 낼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너무 늦었다. 날은 저무는데, 여전히 배는 산으로 간다.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북한붕괴론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내 보수층의 비판을 감수하고, 경제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일관된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관한 확고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정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운전대를 뺏을 것이다. 이제 능숙한 운전사, 웬디 셔먼도 있다.
미국은 절벽으로 함께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웬디 셔먼의 귀환은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차이를 부각시킬 것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 당시처럼 미국의 국무장관이 '한국이 걸림돌'이라고 발언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때가 되면,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외교는 신앙이 아니다. 냉혹한 이해관계이고, 국익을 추구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달라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이제 부시 행정부에서 배워야 할 시점이다. 네오콘을 과감히 정리하고, 변할 때는 말없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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