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력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10일 익명의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이 최근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구상을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구상은 멋있게 들리고 (남북의) 통합을 위해서도 좋은 프로젝트지만 북한이 나중에 이 가스관을 남한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이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도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연합뉴스>는 모스크바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회담에서 북한 경유 가스관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됐지만 가스 공급가격에 대한 기존의 이견을 좁히는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요컨대,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안 좋은 상황에서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으로 에너지를 공급받는 건 비현실적이며 한·러간의 가격 절충도 이뤄지지 않아 한국 정부가 프로젝트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청와대 |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사업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는 의미이다.
이 대통령은 2008년 9월 첫 러시아 방문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북한 경유 가스관을 통해 들여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 후 한국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은 수차례 협상을 진행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4~6일 러시아를 방문, 알렉산드르 아나넨코프 가즈프롬 부총사장 등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주 사장은 8일 지식경제부 당국자와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가즈프롬쪽도 적극적이었다. 아나넨코프 가즈프롬 부총사장은 지난 7월 4일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 경유 가스관 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한 방문이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북한도 올 초부터 태도를 바꿨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3월 15일 알렉산더 보로다브킨 러시아 외무차관의 방북 결과를 전하면서 "러시아는 북남관계 개선을 돕는 측면에서 러시아-북-남을 연결하는 철도와 가스관 부설, 송전선 건설 등이 전망성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며 "조선(북)은 러시아의 계획을 지지하고 그 실현을 위한 3자(남·북·러) 실무협상 제안이 나오면 긍정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까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단절된 남북관계와 불안해진 한반도 정세가 가스관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일거에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그 프로젝트를 포기했다는 <코메르산트>의 보도가 맞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 한반도 정세 변화의 마지막 돌파구마저도 닫히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우선되지 않은 가스관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전임 정부가 했던 중요한 남북 합의를 다 무시하고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경유 가스관을 추진한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경유 가스관으로 가스를 공급받게 되면 북한에 통과수수료를 주어야 함은 물론이고 북한이 언제든 가스관 밸브를 잠글 수 있는 등 엄청난 리스크가 생긴다"라며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지고 제도화됐을 때에나 가능한 일인데, 관계란 관계는 다 끊어 놓은 이명박 정부가 그걸 하겠다는 건 앞뒤가 안 맞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전직 당국자는 "현 정부가 한미동맹만을 중시하는 편향 외교를 하고 있는데 대해 중국 못지않게 러시아도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며 "그런 러시아와 가스 공급가 협상이 잘 될 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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