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선생은 금강산 온정각 앞에 세워진 그의 추모비에 이렇게 썼다. 정몽헌 회장. 2003년 8월 4일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대북 송금 특검과 이어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든 것을 떠안고 갔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냉전의 유령이라고. 그리고 민족 문제를 법률적으로 판단하려 했던 사람들의 단견 때문이라고.
8년이 흘렀다. 온정각의 추모비가 올해 더 쓸쓸하다. 금강산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가 벌써 3년이다. 북한은 아예 현대의 관광 독점권을 취소하고, 재산을 정리하겠다고 한다. 정몽헌 회장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해법은 없는가?
관광 재개만이 유일한 해법
북한이 이러면 안 된다. 정주영·정몽헌 회장이 흘린 땀과 눈물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89년 냉전의 한 복판에서 정주영 회장은 고향 사업으로 금강산 관광에 합의했다. 그 시절 정주영 말고 누가 금강산에 투자하겠는가?
정몽헌 회장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민족의 화해와 교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현대의 독점권을 취소하겠다는 결정은 법률의 문제를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은 향후 북한의 외자 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투자한 자산을 보장해 주지 않은 국가에 누가 안심하고 투자하겠는가?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 기업의 재산권 보장'을 주장한다. 국제적인 사법기구에 제소를 검토한다고 한다. 그것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혹은 결정이 내려진다고 해서 북한이 그것을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방법은 있다.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이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면 된다. 관광을 중단시킨 것이 우리 정부이기 때문에, 재개를 결정하는 주체도 역시 우리 정부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시점에서 관광 재개의 조건이 무엇인지조차 불명확해졌다는 점이다.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관광이 중단된 2008년 7월 시점으로 돌아가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당연히 북한이 사과해야 한다. 동시에 재발 방지 대책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에 묻는다.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북한에 제의한 적이 있는가?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의지가 있었다면, 우리 국민이 안심하고 관광을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관광 재개의 의지가 없으면, 당연히 해법을 마련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3년의 세월이 흘렀고, 결국 현재의 파국을 맞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관광 재개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총격 사건에 북한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면 되는가? 아니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까지 포함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하는가? 정부의 입장은 도대체 무엇인가? 최소한 현재 수준에서 실현 가능한 수준의 재개 조건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대라는 사업자가 움직일 공간이 생긴다.
▲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 사후 유가족들이 정 회장의 유분을 금강산 신계사 터에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
평창의 성공을 원하는가? 그럼 금강산부터 풀어라
금강산 관광 재개가 현 시점에서 왜 중요한가? 우선 평창 동계 올림픽과의 연관이 있다. 개최 시점이 아직 멀었지만, 벌써 강원도는 과잉투자의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교통망 확충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알펜시아 리조트 문제로 시름이 깊다. 끝나고 나면 더 문제다. 각종 경기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지속가능한 발전의 계기로 삼기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평창을 설악산과 금강산을 잇는 광역 관광지대로 만들어야 한다. 4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현실에서 동계 올림픽 시설을 활용한 외국 관광객 유치는 한계가 분명하다. 4계절 관광이 가능할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설악산-금강산 연계 관광 방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검토해 왔다. 불가능하지 않다. 의지가 있으면, 방법은 있다.
강원도 동북부에 '광역 관광지대'를 만들어야 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평화다.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제일 곤혹스러웠던 것은 바로 남북관계였다. 군사적 긴장이 이렇게 높은데, 올림픽을 치룰 수 있겠는가? 외신 기자들의 집요한 의구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평창은 접경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심리적 위치감은 그렇지 않다. 더 많은 선수단과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국제사회의 불안감을 한 번에 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금강산 관광 재개다. 금강산 관광이 남북관계의 수준을 반영하는 국제적 지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회랑이 만들어지면, 강원도가 살아난다. 비탄과 한숨이 가득한 금강산 가는 길에 다시 활력이 넘쳐날 것이다. 금강산은 남북 강원도를 이어주는 다리다. 교류와 협력이 지역발전 전략의 핵심이다.
이미 접경지역의 주민들은 지난 강원도 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정부는 강원 도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강원도의 발전을 원하는가? 그리고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바라는가? 그러면 금강산 관광부터 풀어라.
대북정책 전환을 위한 유일한 방법
금강산 관광을 풀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이 대북정책 전환의 가장 확실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북미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부가 대북정책 전환을 검토할 시점이다. 그래서 광복절 경축사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어떤 말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신뢰를 잃은 말이 아니다. 바로 행동이다. 이명박 정부도 남북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은가? 내년 핵 안보 정상회의에 북한을 초청하고 싶은가? 그러면 금강산부터 풀어라. 그 방법 말고는 없다. 불신의 이 깊은 계곡에서 신뢰를 회복할 시간은 이제 없다.
물론 매듭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의지가 있으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북정책의 원칙을 언급한다. 대북정책에서 평화만큼 중요한 원칙이 있는가?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긴장이 아니라, 평화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 재개로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을 한 번에 전환할 수 있다. 그것이 북한을 중국에 잃어버린 정부, 통일을 말하지만 통일을 멀어지게 한 정부, 결정적으로 분단을 고착화시킨 정부라는 역사적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임기가 끝났을 때, 바로 2011년 8월이 마지막 기회였음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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