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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은 희망버스가 아니라 황우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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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부세력'은 희망버스가 아니라 황우여다

[미래연 주간논평] 특권계급의 이익을 정의라 부르지 마라

민주노총의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고공 크레인 위에서 목숨을 걸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류 언론은 이 사건을 철저히 외면해 오다가, 이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국에서 "희망 버스"가 부산으로 몰려오자 마지못해 짤막한 단신으로 보도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허남식 부산시장, 이채필 노동장관, 조현오 경찰청장 등이 "외부세력"의 개입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희망 버스를 외부세력으로 규정하는 어법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통해 확산되었고, 이제는 <한진중공업 외부세력 개입반대 범시민 대책위원회>라는 단체도 생겨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누가 외부세력일까?

▲ ⓒ프레시안(손문상)

이 세상의 모든 집단에는 모종의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 권력은 정당하게 행사될 때도 있지만 부당하게 행사될 때도 있다.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에도 부당한 경우가 있고, 장관이 부하 공무원에게, 중대장이 병사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사장이 노동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에도 부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부당하다고 해서 모두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양해하고 용납하며 인내함으로써 넘어간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당하는 입장에서 저항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힘이 약해서 강한 권력의 소유자에게 당해야만 하는 처지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어떻게 저항할 수가 있을까?

강화도 해병 초소의 총격사건이 반면교사로서 훌륭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집단 내부에서 일방적인 약자의 처지로 전락해서 일상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할 때, 만약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더라면 총기 난사 후 자살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타 금지라는 둥, 병 상호간 명령 지시 금지 따위 사후 약방문을 국방부는 내놓고 있지만, 병영 사회가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어 투명해지지 않는다면 저런 비극은 결코 근절될 수 없다. 문제의 원인은 내부의 권력이 외부세력에 의해 견제 받지 않는 풍토에 있기 때문이다.

총기 난사 사건이라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해병대 내부의 비리에 대해 여론, 즉 외부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제가 여론이라는 외부세력에게 노출되고 나서야 비로소, 중대장도 사단장도 사령관도 국방장관도 대통령도 내부의 비리를 더 이상 유야무야 덮을 수만은 없게 되어,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압박을 받았다. 해병대의 내부 문제를 지탄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아무도 "외부세력 개입금지"를 들먹이지 않았다. 그런대 왜 김진숙 씨를 응원하는 희망 버스는 "외부세력"이라고 매도하는 것일까?

이 배경에는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탄압해온 한국 주류 권력의 악랄한 구조가 있다. "제3자가 개입해 혼란이 일어나는 부분은 자제해 달라"고 말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이야말로 이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제3자 개입금지"는 전두환 시대 노동조합법(12조의 2)과 노동쟁의조정법(13조의 2)에 명문화되어 있던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국내외에서 비난의 표적이 되었던 이력이 있다.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은 1997년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통합되었는데, 문제의 조항은 내용은 그대로 둔 채 이러한 비난 여론을 수용하는 척 "제3자 개입금지"라는 조문의 제목만 "노동관계의 지원"으로 바꿔서 40조로 살아남았다가, 2006년에 40조 전체가 삭제되기에 이른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의 법을 공부해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또 그 시대에 판사를 지냈던 황우여의 사유구조 안에, "제3자 개입금지"가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에 속하는 것이다.

희망 버스를 "외부세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지금도 전두환 시대의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3자 개입을 금지하는 조항이 법률에 들어 있다가 삭제되었다는 것은 노사관계에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다는 진실이 사회적으로 공인되었다는 인식의 진전을 반영한다. 노동쟁의에서 외부의 지원을 배제한다는 것은 곧 사용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세력은 내부로 쳐주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세력은 외부로 간주하는 일방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외부의 눈에 잘 띄지 않게 숨어서 작동하는 사적 권력의 횡포를 내버려 둔다는 것은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악성 종양을 배양하는 셈이라는 깨달음이 반영되어 제3자 개입을 금지하던 법조문이 삭제된 것이다. 하지만 법률이 그렇게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류 권력 집단은 무시로 초법적인 발상과 행태를 드러낸다. 과거에 법 위에 군림하던 권력 아래서 하수인 노릇을 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이제 박정희와 전두환이 사라진 자리를 차고 앉아 박정희와 전두환 흉내를 못내 그리워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심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검찰총장이 되겠다는 사람이 두 차례의 위장전입을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보통 시민으로서 위장전입을 해놓고 사과만 하면 넘어가는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한나라당의 어떤 의원은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회장과 자기 동생의 친분에 관한 의혹을 두고, "동생이 아니라니까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편리하게 정리하는 지능을 과시했다. 의혹이 일 때 부인하기만 하면 그걸로 끝나는 계급이 대한민국에 따로 있다는 증언으로서 이보다 생생한 발언이 달리 없을 것이다.

이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그 계급으로 진입해 보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 보기에 희망 버스는 당연히 외부세력일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못마땅해 하면 국민도 아니라고 말했다는 어떤 차관의 발언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자기네 특권 계급을 무조건 추종하는 부류만이 대한민국 국민이고, 나머지는 외부세력 즉, 반역자로 밀어내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고방식이다.

두 개의 상반되는 계급으로 구분되어, 국가 권력이 지배계급의 이익과 특권을 보호해주는 역할에만 머무르는 사회를 점잖게 말해 신분사회라고 부른다. 신분사회는 공동체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본질적으로 깡패집단의 무력과 다르지 않다는 함의를 가지기 때문이다. 신분사회에서는 정의와 공정의 원칙이 법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계급의 이익을 정의라고 마구 우기는 억지가 국가의 폭력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다. 이런 억지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일수록 선량한 시민으로 우대를 받아야 마땅한데, 신분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외부세력으로 몰아 탄압한다.

대한민국을 특권계급의 사유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이제 누가 진실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외부세력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희망 버스를 가로막고, 김진숙이야 죽든 말든 윽박지르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야말로 외부세력이다. 재벌의 전횡을 정상적인 기업활동이라고 포장해주고, 거기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국가폭력으로 진압하겠다는 자들이야말로 외부세력이다. 오천만 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평화로운 질서를 세우는 책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네 계급적 이익을 위해 법과 공권력을 사유화하기 때문이다.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가장 소중한 영혼의 소유자들에게 "외부세력"이라고 낙인을 찍으려는 자들이야말로 외부세력이다. 인민을 겁박해서 대대손손 노예로 부려먹겠다는 심술 말고는 머리에도 마음에도 들어 있는 게 별로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 원제 : 누가 외부세력인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간논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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