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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텔레비전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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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텔레비전의 우울

[김성민의 'J미디어'] 7월24일 일본 아날로그방송이 종료되던 날

이른 오후, 텔레비전을 켜니 시퍼런 화면이 뜬다. '보고 계신 아날로그 방송 프로그램은 오늘 정오에 종료되었습니다.' 맞다. 작년인가 쿠사나기 츠요시(草薙剛)가 나오는 홍보방송을 볼 때만 해도 까마득하게만 보이던 그 '2011년 7월 24일'이 벌써 오늘이다.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박자를 맞추기 싫기도 하여 그냥 두긴 했지만, 58년 만에 멎어버린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흐르지 않는 텔레비전이라니.

▲ 아날로그 방송 종료 안내화면 ⓒ아사히 TV 화면캡쳐

게으른 필자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쿠사나기 츠요시가 알려준 대로 '미리미리' 디지털화(化)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기회에 새 텔레비전을 장만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튜너를 달았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건물 옥상에 안테나를 세웠을 것이다. 일본 총무성이 2000억 엔을, 방송사들이 1조5000억 엔을 쏟아부은 국책사업 아닌가.

우리집 텔레비전의 디지털화를 마쳤다. '자원과 세금을 낭비하는 국책사업'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소심한 저항으로 텔레비전을 새로 사는 대신 튜너를 달았다. 2003년 2월, 지상파방송 디지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재를 담당했을 때, 많은 이들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가운데 '국책사업'으로 밀어부쳐지는 모습에 '태평양전쟁'의 느낌이 겹쳐져 보였었다. 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시청자들의 이점은 거의 없고, 거액의 세금만 낭비될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기자일기', <마이니치신문> 2011년 7월22일자

하지만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전파의 주파수가 더 효율적으로 사용된다고 해서, 한류 드라마와 야구중계를 고화질의 하이비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고 해서, 비어있는 텔레비전의 뇌와 가슴이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텔레비전에서 저널리즘을 기대할 만큼 그들은 순진하지 않다.

걱정이 되는지 여기저기 신문들이 '전파는 국민의 공공재'라는 훈수를 둔다. 맞다. 전파는 국민의 공공재다. 적어도 그렇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말 전파가 국민의 공공재라면, 3.11 대지진 이후 그렇게 무력하고 불성실하게 정부와 전력회사의 입이 되어온 텔레비전을, 시청률을 위해 황당한 거짓연출 방송을 마다하지 않는 텔레비전을, 권력의 입김에 쉽사리 방송을 포기하는 텔레비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스로 방송사를 소유한 그들은 정말 전파를 국민의 공공재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니 흐르든 멎든 텔레비전의 모습은 우울하다. 하늘도 뚫을 것 같았던 머독의 비참한 말년이, 한 때 경이로움와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웃나라 방송의 어지러운 추락이 보여주듯, 텔레비전은 더이상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다.

한국의 미디어는 일본보다 훨씬 더 성숙해 있어요. 권력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쟁취했다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거든요. 물론 상업주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장의 저널리스트와 시민들에게는 그런 의식이 더 큽니다. 한국과 비교해보면 표현의 자유나 공공성을 저널리즘 내부에서 하나하나 의식화해 온 역사가 일본에는 없는 것 아닌가요.
-노나카 아키히로(野中章弘), <사상>(思想) 2003년 12월호 중

서글픈 건 아무도 저널리즘으로서의 방송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텔레비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국민의 공공재'를 허공에 버려대겠는가. 권력에 대한 비판도, 현실에 대한 성찰도 없는 고화질 하이비전 방송. 효율이라는 허울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텔레비전의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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