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하는 모든 국가들이 이 사태를 주시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적대상태에 있는 국가들 말이다. 비밀협상이 언제든 공개될 수 있다면, 주저할 수밖에 없다. 세계 외교사에 유례가 없는 엽기적 사건이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어떤 파장이 있을까?
예비군 표적지 사건, 코란 불태운 것 마찬가지
북한이 공개한 이유를 먼저 추적해 보자. 첫 번째 이유는 남쪽이 먼저 공개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청와대가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한다는 이른바 베를린 제안을 북한에 전달했다고 먼저 밝혔다. 북한의 이번 공개는 우선 청와대 발표에 대한 대응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몇 번의 비밀접촉이 있었다. 대부분의 접촉은 언론에 공개되었다. 북한은 그동안 '실패한 접촉'에 반응하지 않았다. 추후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판을 깨려고 작정했을까?
두 번째 이유로는 대화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수 있다.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하는 그 순간, 이명박 대통령은 '재스민 혁명'을 거론하면서 북한을 자극했다. 통일부 장관을 유임하면서,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하겠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남북 대화의 역사에서도 혹은 세계 외교사에서도 특사를 파견해 놓고 상대를 자극한 경우는 별로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화를 해 봐야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왜 이 시점일까? 이전의 비밀접촉 또한 남측 대표가 약속한 협상안은 곧바로 부정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북한은 비밀접촉에 지속적으로 응했다. 그런데 이번에 왜 접촉의 종말을 선언했을까?
예비군 훈련장에서 자신의 지도자들을 표적지로 삼은 행위가 직접적 이유다. 북한은 수령제 국가다. 자신의 지도자와 관련된 적대 행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것은 마치 미국의 한 목사가 '코란'을 불태운 사건이 가져온 파장에 비유할 수 있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인내심을 갖고 남북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중국의 고언도 이런 상황에 끼어들기 어렵다.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의 방북과 식량지원을 앞둔 북미관계의 전망도 고려사항이 아니다. 국면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넘어서서 즉자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국방위원회가 직접 나서 대남 강경정책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예비군 훈련장의 표적지는 해프닝일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어쩌면 마지막 대화의 기회를 날려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명박 정부가 비밀접촉에 대한 기본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비밀접촉이 성공하려면, 공개적으로 정책 전환의 신호를 동시에 보내야 한다. 1970년대 초반 닉슨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탁구대표단의 방중을 허락했듯이, 혹은 중국에 대한 무역규제를 일부 완화했듯이 말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56회 현충일 추념식에 앞서 열린 6·25전쟁 전사자 고(故) 이천우 이등중사(병장)의 유해 안장식에 참석해 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아마추어 정권의 한계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1971년 7.4 공동성명을 위한 비밀접촉은 박정희 정부가 적십자 회담을 제안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두환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1984년 북한이 수해물자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 남측이 받겠다고 했다. 대화를 하자는 공개적인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래서 경제회담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이 있었다. 이어 노태우 정부 당시의 비밀접촉은 전두환 정부 때 형성된 박철언-한시해 라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밀접촉이란 무언가를 해보고자 할 때 시도하는 것이다. 정책 전환에 대한 입장정리가 있어야 하고, 비밀접촉에서 공개대화로 전환할 때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전환에 대한 의지다. 내용이 준비되면, 접촉의 형식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지금이 냉전 시기도 아니고, 북한도 남북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던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책 전환의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비밀접촉에 나선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에 그런 정부가 어디에 있는가? 무능한 외교의 결정판이다.
물론 대북정책을 과도하게 국내 정치화했기 때문에, 정책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 이제는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래도 한반도 질서 변화에 눈치가 있으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면 최소한 정책을 전환할 수 있다는 신호라도 보냈어야 했다. 공개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대에게 대화의 의지를 확인시켜준다. 비밀접촉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부적으로도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책을 전환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히면, 관료체제에서는 가능하면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를 삼간다. 베이징에 특사가 간 줄도 모르는 국방부의 일선 부대에서 대통령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하는데, 정책 전환의 가능성을 어떻게 알겠는가?
최소한 비밀접촉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뱃머리를 돌렸어야 했다.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는 대립의 방향이 아니라, 긴장을 완화하고 국제질서에 적응할 수 있는 대화의 방향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왜 비밀접촉을 하려 했는지, 의지를 읽을 수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장난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야 무슨 일이 되겠는가?
대화는 끝났다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최소한 비밀접촉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밝혀야 한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파장을 줄이는 것이다. 이쪽에서 밝히지 않으면, 어차피 북한이 밝힐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북한은 그동안의 비밀접촉에 대한 물증을 제시할 것이다. 대화록이야 이쪽에서 부정하면 그만이지만, 만약에 녹음한 육성을 공개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숨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왜 부끄러워하는가? 애써 그것을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접촉을 부정했다. 그리고 대립을 향해 계속 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외교를 국내정치적 관점에서만 해석해 버렸다. 약간은 열려있는 대화의 문틈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이제 임기 후반기다. 다시 국면을 전환할 시간이 없다. 뱃머리를 돌리고, 대화를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북한은 더욱 까다롭게 나올 것이다. 시간 변수의 측면에서 북한이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다시 생겨도, 훨씬 불리한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전환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번이 막차였다.
좋은 기회를 다 놓쳤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유리한 시점에, 유리한 위치에서, 우리가 원하는 현안들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랬다면, 보수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이제 대화는 끝났다.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최소한 7.4 공동성명 이후 최악의 남북관계를 초래한 정부라고, 그래서 북방의 경제영토를 잃어버린 대통령이라고, 100년 전처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른 채 한반도의 운명을 강대국 정치에 맡겨버린 정부라고, 그리고 남북 경제공동체의 기반을 붕괴시켜 엄청난 통일비용을 후세에게 전가한 정부라고 기록할 것이다.
다만 별일이 없을까? 이 상태라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에 정세 관리의 책임감도 능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은 미국의 몫이고, 중국의 몫이다. 남북관계가 없는 6자회담은 재개되어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중 양국의 한반도 정세 관리에 대한 분발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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