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특수부대가 2일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당시 상황에 대한 미 백악관의 설명과 배치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빈 라덴이 사살될 때 비무장이었다는 사실이 백악관에 의해 확인되면서 미군 작전의 적법성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새로운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인디펜던트> <로이터> 등 영국 언론들은 빈 라덴의 막내딸이 아버지의 피살 장면을 지켜본 것으로 파키스탄 정보 당국이 파악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현장을 목격한 막내딸은 빈 라덴의 5번째 부인에서 태어난 '사피아'로 나이는 12살가량이다. 현재 파키스탄 정보 당국이 보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피아에게 미군들은 아버지의 주검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빈 라덴은 왼쪽 눈에 총을 맞아 두개골 일부가 훼손되고 가슴에도 총을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는 빈 라덴이 미군에 생포됐다가 가족 앞에서 사살됐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보 당국 관리는 "현장에 있었던 빈 라덴 딸(12)의 진술에 따르면 미군은 1층에 있던 빈 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 앞에서 사살했다"고 말했다.
이는 빈 라덴의 저항 때문에 사살했다는 백악관의 설명과 다르다. 미 정부는 당초 빈 라덴이 최후 순간까지 총격전에 참여하며 저항하다 사살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백악관은 3일 빈 라덴이 비무장 상태였다고 전날의 설명을 번복했다.
다만 백악관은 빈 라덴이 비무장이었지만 저항을 하긴 했고, 빈 라덴 외에도 무장한 다른 상대가 있었기 때문에 사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아라비야>의 보도에 따르면 '무장한 다른 상대가 있었다'는 설명은 명백히 다르고, 저항이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러시아의 인터넷 뉴스통신 <RBK>도 파키스탄 언론을 인용해 <알아라비야>와 같은 내용을 전하면서 빈 라덴의 저택을 조사한 파키스탄 경찰도 그가 저항하지 않았으며 미군에겐 단 한 발의 총도 발사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군 특수부대의 헬기 한 대가 작전 중 추락한 것은 지상으로부터 총격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관리는 <알아라비야>에 "헬기를 공격하기 위한 총격은 전혀 없었고 단지 기술적 결함 때문에 추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파키스탄 신경전?
이같은 사실이 파키스탄 정보 당국에 의해 흘러나오면서 미국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파키스탄이 국면을 전환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두 나라는 '대테러 동맹'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리언 파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3일 시사주간 <타임>과 인터뷰에서 "미국 관리들은 파키스탄이 빈 라덴 체포 작전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면서 작전 계획을 파키스탄에 알리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도 전날 "빈 라덴이 수도 외곽 아보타바드에서 있었던 것으로 볼 때 파키스탄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지원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의구심을 제기했다. 빈 라덴의 은신처가 파키스탄 정보국(ISI)의 안가(安家)라는 아랍권 언론의 보도까지 나왔다. 그러자 미 의회에서는 파키스탄에 제공해 온 연간 13억 달러 가량의 지원 예산 삭감을 검토하겠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논란의 와중에 미국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특사 마크 그로스맨이 2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파키스탄 군 및 정보 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로스맨 특사는 이 자리에서 파키스탄에 대한 미 당국자들의 엄중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빈 라덴이 어떻게 파키스탄에 은신할 수 있었는지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그러나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2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파키스탄 정부가 빈 라덴을 보호했다는 미국 안팎의 의혹 제기를 강력히 반박했다. 아울러 파키스탄 정부는 3일 성명을 발표해 자국 내에서 이뤄진 미군의 작전에 대해 "승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행동"이라고 쟁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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