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간담회는 기업들이 국세청장에게 자신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을 직접 건의하고 이에 대해 청장을 비롯한 국세청 간부들이 답변을 하는 보기 드문 행사였다.
하지만 첫번째 건의부터가 이현동 국세청장의 불쾌감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모범납세자로 인정받은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유예 혜택을 부활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모범납세자로 뽑힌 대기업은 세무조사를 유예받았으나, 전임 백용호 국세청장 때부터 매출 5000억 원 이상의 대기업은 무조건 4년 주기로 정기 세무조사를 받는 체제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세무조사 유예 혜택이 없어졌다.
▲ 22일 이현동 국세청장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간담회 도중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에 대해 이 청장은 "대기업은 모범납세자로 인정받는 것을 명예로 생각해야 하는데, 세무조사 혜택이 없어지자 성실납세자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이 급감해 섭섭한 생각이 든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로 인해 첫 건의 때부터 간담회 분위기는 냉냉해졌다. 1시간이 넘게 지속된 건의사항에 대해 국세청 간부들은 "기획재정부에게 건의할 사항들인데, 난처하다"면서 "재정부와 함께 논의를 해보겠다"는 원론적 답변으로 피해가기에 바빴다.
이처럼 납세 의무에 대한 현격한 시각차를 지켜본 참석자들 중에는 "기업과 국세청의 동상이몽을 표출하는 자리였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사실 이현동 청장의 비판적 발언은 최근 국세청 간부을 역임한 세무법인 대표가 들려준 미국의 대기업과 한국의 대기업의 차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미국은 기업이 세무조사를 자진해서 받겠다는 청구제도가 있어서 마치 '기업회계에 대해 정부가 인정하는 건강검진'처럼 세무조사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 스스로 미국 국세청(IRS)에 세무조사를 청구해 성실납세자로 인정을 받으면, 자랑스럽게 이를 공개하고 전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보인 대기업들의 인식은, 탈세를 전제로 하거나 세무조사를 자신들의 기업운영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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