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평도 사태는 명백한 남쪽의 영토를 북이 무단 공격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논란의 대상인 해상의 북방한계선과는 달리 연평도는 북도 인정하는 남쪽의 영토이다. 또한 정규군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연평도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했다는 점도 놀랄 만한 일이다.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남북의 군사적 대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처럼 연평도를 향해, 무고한 주민을 상대로 해안포를 발사하고 인명 피해를 초래한 것은 결코 이해하거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충격과 분노를 넘어 상황 관리와 함께 더 이상의 긴장 고조를 막고 사태를 진정시키는 일이다.
▲ 지난 23일 북한의 포격을 받은 연평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시스 |
북한의 의도는?
우선 북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좀처럼 없었던 새로운 양상의 군사적 도발을 북은 왜 이 시점에 감행했을까? 방북한 미국 학자에게 우라늄 농축 시설과 원심 분리기를 실물 공개한 정황과 연계해 볼 때 북은 지금 새로운 국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태의 제재국면을 벗어나고 6자회담 재개로의 전환을 위해 그동안 대남 유화조치를 취했지만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선(先)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면서 요지부동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북이 원하는 협상 재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대미 대남 압박 카드를 내세워 미국과 한국을 북한 주도의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가장 고강도의 핵능력 과시 카드가 바로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보유 가능성이기 때문에 북은 이번에 원심분리기를 직접 보여 주면서 미국을 압박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를 위협할 수 있는 최고의 압박 카드 역시 서해상의 군사적 도발과 전쟁 위험성의 가시화이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연평도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해안포 사격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최고의 긴장고조를 이용해 한국으로 하여금 협상이냐 전쟁이냐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적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우리의 대처 방식이다. 인명피해까지 동반한 북한의 불법적인 군사 공격에 대해 우리 군은 단호하게 대응함으로써 북의 도발에 대한 억지력을 과시하고 확보해야 한다. 정상적 국가관계에서도 상대방의 영토 확장이나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는 적시에 봉쇄하고 억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확고한 대응으로만은 부족하다. 그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수동적 해결에 머무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가 언제라도 군사적 교전과 전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사실이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태 모두 전쟁이 일시 중단된 상태와 남북 대치의 현실적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본질적으로 한반도 정전 상태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파탄의 남북관계와 상호 대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보다 근본적 해법으로 더 이상의 군사적 도발과 긴장 고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제정치에서 갈등과 분쟁의 근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억지와 상호 확증파괴의 우려 때문에 전쟁이 억지되고 군사적 충돌이 방지되는 것을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라고 개념화한다. 이른바 '불안정한 평화'(unstable peace)다. 냉전 시기 군사적 대치와 간헐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전쟁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소극적 평화이자 불안정한 평화였다.
이에 비해 분쟁의 근원을 해소하고 갈등을 종결시켜서 상호 평화적 관계를 제도화함으로써 전쟁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이루는 것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이고 '안정적 평화'(stable peace)다. 남과 북이 지금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종료하고 상호 공존의 평화상태를 제도화하는 것이 곧 적극적 평화인 셈이다.
결국 연평도 사태 이후 군사적 차원의 무력 증강이라는 대응은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국가의 '안보'는 도발을 막고 억지하는 군사적 차원과 함께 평화로운 관계설정을 통해 근원에서부터 갈등과 분쟁을 해소해내는 관계적 차원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
여성에게도 군복무를 의무화하고 있고 지구상 가장 강도 높은 예비군 제도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의 도발을 억지하고 응징한다는 점에서 군사적 모범은 될지 모르나, 평화로운 관계를 통해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에 분명 '절름발이 안보'의 사례일 뿐이다. 소극적 평화를 넘어 적극적 평화로, 불안정한 평화를 넘어 안정적인 평화로 나아가지 않는 한 우리의 평화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MB정권 출범 후 '절반의 평화' 잃었다
때문에 우리는 군사적 차원의 대응조치 외에도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항구적이고 포괄적이고 안정적인 접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미합동 대잠훈련 등으로 인해 긴장과 대치의 바다가 됐던 서해를 평화와 협력의 바다로 전환하는 지난한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의 이유다. 자주포를 늘리고 군대를 증강하고 전투기를 띄우는 것이 북의 도발을 억지하고 맞대응하는 절반의 평화라면, 남북의 적대와 분노와 갈등관계를 상호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만들어 북으로 하여금 도발을 아예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충분조건으로서의 나머지 절반의 평화다.
남북관계가 지속되고 6자회담이 가동 중일 때는 그래도 남북간 갈등과 쟁점이 관리되고 협상됐으며, 북핵문제 역시 상황이 관리되고 조금씩 개선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파탄나고 6자회담이 중단되면서 3년이 다 돼가는 지금 북의 도발과 상호 적대는 돌이키기 힘든 상태까지 이르렀고 북핵문제 역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건 '북한 버릇고치기'와 강압 정책으로 과연 북의 도발이 없어졌는가? 핵문제가 해결되었는가? 한반도 평화가 진전되었는가? 동북아 협력이 증대되었는가? 아무리 돌이켜봐도 '이명박식' 대북접근으로는 모든 게 최악의 결과를 낳고 있을 뿐이다. 이제 와서 전 정부 탓을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적대적 남북관계와 불안정한 정전상태가 온존된 채 군사적 차원의 조치만으로는 결코 연평도 평화는 달성되지 않는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개성과 해주 공단에서 남북의 근로자가 함께 일하고, 북한 배가 우리 영해를 지나가고, 남북의 어선이 공동어로구역에서 같이 꽃게잡이를 하고, 남북 해군이 그것을 호위하고, 인천 앞바다에서 남북이 함께 한강모래를 채취해 나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연평도의 평화는 이뤄지게 된다. 그 모습과 풍경에서 북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지금은 전쟁을 결심할 때가 아니고 평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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