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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수부 검찰 신화의 몰락… 관료화가 최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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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특수부 검찰 신화의 몰락… 관료화가 최대 원인"

[해외시각]도쿄지검 특수부의 불기소 처분, 시민들이 뒤집기도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이시즈카 겐지 지음. 사과나무 간)가 파헤친 내용이 일본에서 그대로 현실화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성역 없는 수사'를 의미하는 '거악(巨惡)을 잠들게 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신화적 존재가 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현재 완료형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증거가 있기에 기소했을 뿐"이라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증거주의'가 과거의 명성과 달리 지금은 시나리오를 설정해서 증거를 조작하는 일이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집단'으로 변질됐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는 비록 도쿄지검 특수부는 아니지만 오사카지검 특수부 고위층들이 체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특수부 검사들이 체포.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

특수부 검찰은 일본의 50여개의 지방검찰청 가운데에서도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 3곳에만 설치돼 권력형 비리 등을 전담한 소수 정예 부서로 특수부 검사들이 증거 조작 혐의로 체포. 구속된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4일 일본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1일 일본 최고검찰청(대검)은 오사카 특수부 부장과 부부장이 주임 검사의 증거조작을 방조하고 은폐한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이들은 부하인 마에다 쓰네히코(43·구속) 주임검사가 기소를 위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마에다 검사는 지난해 7월 후생노동성 무라키 아쓰코(54·여) 국장이 장애인단체에 허위 증명서를 만들어 주라고 지시했다는 기소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압수한 플로피 디스크의 업데이트 날짜를 고친 혐의로 지난달 21일 체포된 뒤 구속됐다. 이런 증거 조작이 드러나면서 마에다 검사는 구속된 반면, 무라키 국장은 최근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후생노동성에 복직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주임 검사 단독 범행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특수부 최고 수뇌인 특수부 부장과 부부장이 특수부의 젊은 검사 4명이 마에다 검사의 증거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어도 은폐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현재 일본 여론은 검찰총장를 퇴진시키고 특수부 제도를 해체해야 한다는 등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최근 일본 특수부 검찰 신화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출간된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
특수부 검찰의 변질, '관료화 부른 인사 정책'이 초래

하지만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라는 책은 특수부 검찰의 변질이 진행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20년 넘게 검찰 등 관련 부서에서 취재를 해온 이시즈카 겐지 <산케이신문> 기자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예전에는 특수부의 수사에 대한 신뢰감이 있어 특수부 수사본부의 발표를 전달해 오는데 치중했지만, 지금은 특수부라는 조직의 위험한 측면도 세상에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예전의 '특수 검찰'은 이미 붕괴되었으며 다른 조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한탄의 소리까지 들려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특수부 검사들의 조직적인 증거 조작과 은폐가 '과욕'에 따른 것이라는 등 인간적인 측면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특수부 변질'을 초래한 가장 큰 요인을 인사 정책의 변화로 초래된 '특수부의 관료화'에서 찾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특수부 출신 검사들의 권력이 비대해졌다는 인식이 법무성 고위 관료들에게 확산되면서 특수부 출신의 베테랑 검사들이 법무성 고위층 인사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늘어갔으며, 과거 보통 10년 이상이던 특수부 경력 검사들이 거의 사라지고 5년 정도로 보직 순환 기간이 짧아졌다.

이런 인사 정책의 변화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특수부의 힘을 줄이는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특수부의 기능 자체가 흔들리는 사태가 초래됐다.

'특수부의 관료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특수부 부장이나 특수부 부부장 자리가 법무 관료의 경력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고, 베테랑 검사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법무성으로 돌아가 여당 정치가들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은 특수부에서 부부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라고 소개를 받으면 정치가의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면서 "부부장은 관공서 창구 직원처럼 귀찮은 일을 가려서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직 보호 논리'가 최우선이 된 검찰

검찰이 관료화되었다는 것은 내부적으로는 '조직 보호 최우선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른바'스폰서 검사'를 둘러싼 검찰의 감싸기로 특검까지 동원되었도 '면죄부 수사'에 그쳤다는 비난이 크지만, 일본의 특수부 검찰에서도 이미 1998년에 '검찰 관료화'의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한 행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도쿄지검 특수부는 증권사들이 대장성 간부들을 접대한 독직 사건을 수사하던 중 도쿄지검 검사가 접대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상부에 보고하는 의무도 이행하지 않고 문제의 검사를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책에는 특수부 검사가 자백을 강요하는 수법을 직접 겪은 방위산업 로비스트의 수기 일부가 전재되기도 했는데, 검찰이 특정 사건을 언론에 흘리면서 사건의 중요성을 키우고, 이에 맞춰 증거를 만들어내기 위해 피의자의 진술을 받아내서 언론에 흘리는 등 한국의 검찰도 자주 사용한다고 의심받는 사례들이 나온다.

방위성 비리 사건에 연루돼 특수부 검사로부터 진술을 강요받은 로비스트 아키야마는 "검사라는 인간은 자신들이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밀어붙여 그것이 피의자인 나를 위한 일이라고 끈질기게 말하고, 그래도 거부하면 주의 사람들을 들먹이며 협박조로 말해서 관철시켜려 한다"고 수기에 적었다.

특히 그는 미국 법인의 임원으로 등재된 아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게 되면 큰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는 검사의 협박에 못이겨 소득세법 위반을 시인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호소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성역 없는 수사'의 이면

한국의 검찰이 본받을 표상으로 자주 거론되어온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의 '신화'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정계의 실력자들을 구속한 록히드 사건 등도 알고보면 당시 현직 총리의 지시 등 '정치적 의지'에 따라 검찰이 동원됐을 뿐이라는 지적들은 예전부터 있었다.

게다가 도쿄지검 특수부는 일본 집권 민주당의 최대 정치그룹 좌장인 오자와 이치로를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조사하다가 불기소 처분하는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가, 4일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검찰 심사회'가 강제 기소 결정을 내려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있다. 오자와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린 도쿄지검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5월부터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 내에 '검찰 심사회'가 구성돼 기소 결의를 하면 법원이 변호사를 지명해 기소하도록 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시민들이 도쿄지검 특수부가 권력의 힘에 눌려 기소하지 못한 오자와 전 간사장을 강제 기소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일련의 사건으로 일본의 특수부 검찰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면서 '본받을 대상'에서 '타산지석'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의 검찰은 스스로 검사들을 체포하거나 기소독점권 제약을 감수하는 등 아직 자정 능력은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검찰은 '스폰서 검사' 등 비리 검사들을 감싸느라 특검 무용론까지 나오도록 하고, 고위층 수사에 무력한 모습을 자주 보여 검찰을 견제할 고위 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자정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는 대조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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