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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농사 지어 국민을 먹여 살린다?

[김성훈 칼럼]<27> 가속화할 가족농업의 몰락과 그 대안

지금 전국의 농촌 농민단체 사회는 때아닌 '대기업의 영농 참여'와 정부의 'FTA 자금 지원행태'에 대한 성토로 들끓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호와 지원을 받은 모 재벌기업이 경기도 화옹지구 간척지구와 전북의 새만금간척지구에 대단위 농장을 분양받아 확보하고, 먼저 화옹지구에 아마도 단일품목으로는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유리온실 토마토 농사를 착수한 데서 비롯되었다. 더욱이 최근 외국 대기업 농장에선 GMO(유전자조작물질) 토마토 종자 재배면적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하필이면 그 재벌기업이 GMO종자산업 및 맹독성 농약 생산 판매분야에서 초국경 괴물기업으로 알려진 몬산토(Monsanto)회사와의 밀착관계가 의심되는 기업이다보니 더욱 농민들의 저항이 거센 것 같다. 그 사업에 정부는 농지분양 이외에도 소농들의 몫인 FTA 대책예산의 상당액을 직접 지원했다고 한다. 이같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 대기업 지원행위를 지난 정부가 농업의 해외수출 증대와 경쟁력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거침없이 허용한 모양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치권과 새 정부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이지만, 이 기회에 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우리나라 농정철학의 기본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동안 적잖은 기업자본들의 농업ㆍ식품산업 참여가 있어 왔지만, 소규모 가족농가들의 고유분야인 1차산업 영농부문에까지 직접 뛰어든 것은 이 토마토 대단위 유리온실사업이 그 제1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부의 대기업 영농 참여 지원정책이 바꾸어지지 않는 한, 장차 소규모 가족농업에 대신하여 제2, 제3의 대기업들의 영농 겸병행위가 눈사태처럼 불어나 우리나라 농업이 다국적 대기업들의 먹이사냥터로 변질될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 그 이론적인 토대는 '대규모화 = 국제경쟁력 향상' 이라는 신고전학파 경제이론과 '수출증대 = 국부ㆍ국익 증진'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다국적 초국경기업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일부 경제관료와 정치ㆍ언론 세력들이 이를 맞장구치고 부추겨 줄 것이 확실하다. '큰 것이 좋은 것이며,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흰소리들이 요란할 것도 쉽게 상상이 된다. 필자가 정부직에 몸담고 있을 때도 유사한 주장이 몰아쳤었다. IMF 환란기를 맞아 우리농업과 축산분야가 쑥대밭이 되었는데, 그때 정ㆍ관계 요인들과 언론계에 대한 모재벌기업의 간척 농지 전용해 달라는(정부 특혜로 간척한 절대농지를 상공업 용지로 전용허가) 로비가 극에 달했다. 다른 한편 일부 대기업들이 양돈사업 등 축산분야에 대한 직접 진출하는 것을 허용하라고 정부당국을 윽박질렀다.

그 때 등장한 '국민의 정부'의 농정목표가 친환경적인 "가족농(family farm)의 육성"이었다. "가족농의 협동화와 전문화"가 그 캐치프레이즈였다. 수천년 지속돼오던 소규모 가족농업이 새삼스레 국정지표로 내세워진 배경은 이미 그 앞의 정권 때부터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일부 관료들이 정책의 조종간과 조타기(操舵機)를 잡고 우리 농정을 마치 미국식 기업농(Corporate farm)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연히 국토 현실은 지리 인문학적으로, 경제사회적으로 가족농업 체제일 수밖에 없는데도 대규모화 또는 대형 정예농가 육성 구호가 난무하고, 역설적이게도 세계 최고의 높은 땅값과 투기성 부재지주들의 만연상태를 그대로 놔둔 채 단지 국제경쟁력 향상이라는 미명하에 규모화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수한 헛발질을 했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족농업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함으로써 소규모의 불리성을 전문화와 협동화를 통해 대(大)경영의 잇점을 도모케 하자는 대안이었다. 가족농업의 장점도 지키고 대규모 협동경영의 잇점도 살리자는 1석2조를 겨냥한 처방이었다.

농업이란 단순히 경제적 활동(economic activities)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영농자체가 사회적 윤리적 그리고 생태학적 생명의 자기 확인과정이기 때문이다. 농산식품을 생산하고 가공, 유통, 수출하는 경제적 기능이외에도, 그 중요성이 못지않은 무형의 다원적인 공익 기능, 예컨대 환경생태계 보존, 아름다운 경관(景觀)의 유지, 홍수와 가뭄 기후변화 등 자연재해 완화, 상부상조와 협동에 의한 배려와 나눔의 공동체 형성, 위대한 생명 문화와 전통의 계승, 자유와 평화 및 행복의 공유 등 다양한 비교역적인 공익기능(multiple non-trade concerns)을 망라한다. 그것이 가족농업의 존재가치이며, 이는 국가와 민족 형성 및 유지 발전에 있어 최소의 필요조건(minimum national requirement)이다.

농업기능을 단순히 경제적 활동으로만 규정할 경우 규모경제의 유리성(economy of scale)과 대규모화로만 귀결되고, 국제경쟁력이 가격경쟁력의 향상으로만 귀착된다. 그렇게 되면 가족농은 점차 소멸되고 대규모 기업농들이 농업을 지배할 것이다. 우리나라 소농 가족농들은 2, 3차 산업에서 중소상공인들이 걸었던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작은 규모의 가족농들도 협동 협업화를 통해 대규모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유럽 등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전문화와 다양화로 품질향상과 생산성 증대 그리고 종의 다양성 등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농산식품의 국제경쟁력이란 식품수요의 성격상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품질경쟁력과 안전성(safety) 이라는 비가격 경쟁력에 크게 달려 있는 것이다. 가격이나 비용이 높더라도 품질이나 안전성으로 보완하여 소비자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다.

신고전 경제학파의 치명적인 결함인 "다른 조건이 변함없이 동일하다면 (other things being equal)"을 전제로 규모를 키워 국제경쟁력의 우위성을 확보한다거나, 신자유주의 정책의 지고지상의 "이윤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이 우리 농업의 살길이라는 인식은 인구과밀, 국토 협소의 우리나라의 경우 자칫 노생(盧生)의 한단지몽(邯鄲之夢)으로 끝날 수 있다. 농업의 다양한 공익기능을 배제한 이러한 농정발상은 마침내 소농 가족농업의 존립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전체 국민경제와 소비자의 생존권 및 그 안위까지 위협받게 한다. 마치 이솝 우화에 나오는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샘을 지키던 촌부가 아침마다 이슬을 머금고 반짝이는 주변의 나무들이 밤 사이에 샘물을 빨아 마신다는 판단을 내려 그 나무들을 베어버리면 샘물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음과 다름없다.

엄밀히 따져 현재 한국 농가의 거의 전부가 소규모의 가족농업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지만 설사 100여 가족농가를 쫓아내어 그 농지를 한 기업에 몰아줘받자 겨우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의 대형 플란테이션(plantation) 농장 하나만 못하고 특히 턱없이 낮은 농산물의 생산비와 가격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평당 10-20배가 더 넘는 땅값 차이로 가격, 비용면에선 경쟁이 되지 않는다. 품질이나 안전성면에서나 경쟁하면 모를까 가격 및 생산비 경쟁면에선 중국산 하고도 경쟁이 안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나마 노령화와 이농 탈농으로 지난 10년 사이 농가 평균 경지규모가 0.07㏊ 늘어난 호당 1.5㏊에 불과하지만 품질과 안전성 그리고 수익성을 떠난 비교역적 공익기능 덕에 그런대로 버텨내고 있다.아무리 우리나라 정부가 대형 기업농 정책을 추구한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가능성이 희박하고 경제사회적 현실도 그러하다. 하물며 대형농장과 대기업농이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캐나다 농촌에도 아직 농가의 약 80% 이상이 가족농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범세계적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자소작 가족농으로서 비록 그들이 전체 농경지의 24% 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약 70%의 세계인구를 부양하며 건강한 농산식품을 공급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미 2000년대 들어 발표된 수많은 실증적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가족농이 대기업농(Food Inc.) 보다도 더 생산성이 높고, 더 생태적 친환경적이며, 나아가 이들의 생산성이 화학적 관행농업의 생산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요컨대 생태적 가족농업이 단위면적당 가장 생산적이라는 사실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반면, 대단위 관행농법의 피해는 이미 정체상태에서 제자리 걸음 내지 퇴보하고 있는 세계 식량생산고와 인류의 영양 문제 해결에 있어 실패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뒷받침한다. 그리고 각종 인수공통 질병의 빈발, 건강과 생명의 위해성 증대, 분배정의(正義)의 왜곡, 농지와 수질의 오염, 환경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농어촌 공동체의 붕괴 등 다국적 초국경 기업농의 해악은 일일이 나열할 필요 없이 지금 지구촌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스런 현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농가소득 향상과 경제적 지위 향상은 선진제국의 사례에서 보듯 소규모 농업조건이라 할지라ㅗ 가족농끼리의 제대로 된 협동화와 전문화, 다양화 등의 방법으로 경영의 효율성을 대규모 기업농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나라 농협의 기여는 대단히 둔감하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 아래서 농협개혁이랍시고 두 개의 대형 지주회사 체제로 바꿔 놓아 이제 농민의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은 멀어지고 특정인들의 NH로만 남게 되었다.

초대규모의 다국적기업농들에 의한 해외농산물들이 무관세로 홍수처럼 몰려드는 WTO/FTA 체제하에서는 이들 무늬뿐인 우리나라의 대기업 농업들이 소규모 가족농보다도 먼저, 더 잘 쓰러질 개연성이 크다. 정부의 각종 특혜가 사라지면 더 일찍 기사불생(幾死不生)할 것이다. 비싼 토지와 인건비 및 자재가격 등의 이유로 진짜로는 국제적 경쟁력이 형편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농이 망하더라도 그때쯤 높이 치솟은 땅을 팔아 망외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아무튼 현단계 우리 농촌 농업 농민 3농의 조건하에서는 생산ㆍ유통ㆍ어메니티 관광면에서 가족농들의 협동화와 다양화 전문화가 더 현실적이며 지구력이 강하다. 작은 것이 더 강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 한때나마 가족농에 기반을 둔 강소농(强小農) 정책을 추진했던 농촌진흥청장이 불시에 밀려 났지만 그의 판단은 그때나 지금이나 옳았다고 본다.

정책당국의 열정과 결심만 바로 서면 가족농업을 영생화 시킬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가족농을 어엿한 근대적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민주시민으로 양성해 낼 수 있다. 다만 그 필수요인으로서 A.T. 모셰 박사는 다음의 다섯가지 기본요건을 정책당국에 제안하고 있다. ① (친환경 농산물의) 시장 및 판로의 확보, ② 끊임없이 발전하는 새로운 농업기술의 채택, ③ (양질의 현대적) 생산자재와 농기계 기구등을 농촌현장에서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치, ④ 농업생산자에게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 끝으로 ⑤ 통신과 수송등 인프라에 대한 각종 편의 마련 등이다. 거기에 소비자의 건강ㆍ생명ㆍ안전과 자연생태계의 보전을 담보할 친환경 유기농업을 주특기로 하는 가족농업의 발전이 가속을 내게 하려면 공고한 도농연대의 강화, 즉 로컬푸드운동과 고유의 발효식품 중심의 슬로우푸드(slow food)운동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 여기에 윤활유 격인 다음의 다섯가지 촉진요인이 추가된다면 비단 위에 꽃수를 놓은 것과 같다. 다름 아닌 ① 새로운 기술지식에 대한 계속적인 교육, ② 적절한 금융지원, ③ 단체적 협동활동의 적극적인 육성, ④ 농지보전과 개량 및 확대, 끝으로 ⑤ (매 5년 단위의 가족농) 발전계획수립과 철저한 이행 등이다.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의 친환경 가족농업이 바람직한 6차산업으로 비상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리하여 생산(1차산업), 가공(2차산업), 유통 및 관광(3차산업)을 아우르고, IT(정보화기술), BT(생물학기술), GT(녹색관광), CT(청정기술)을 수렴하도록 민관이 협력한다면 우리 가족농업이 작은 규모 위에서도 보다 큰 경영, 보다 높은 소득을 성취할 지혜를 달궈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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