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안전을 위해 도입된 '자동차 부품 자기 인증제'를 한국 정부가 미국산 자동차에는 예외를 허용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정부가 미국 자동차 업계 부담을 고려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없는 특혜를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미국 측에 제공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동차 부품 자기 인증제는 제작사가 부품을 생산·판매하기 전 반드시 안전 기준을 국토해양부에 신고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제작사에 리콜과 같은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위험한 저급·불량 부품 유통을 막고자 도입됐다. 브레이크 호스, 좌석 안전띠, 등화 장치, 후부 반사기, 후부 안전판 등 5개 품목이 제도의 대상이다.
이 제도는 지난 2월 22일부터 시행됐지만, 미국산 자동차 부품은 3개월간 제도 준수 유예를 허용받았다. 이는 지난해 6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통상 협의에서, 미국 측이 해당 제도가 미국 자동차 업계에 부담을 준다며 예외를 요구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주선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아 20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미국은 한국 정부에 자기 인증제 인증 표식인 'KC 마크'를 미국산 부품에 대해서는 예외를 허용하거나 스티커 부착 방식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예외 인정은 곤란하나, 제도 시행에 따른 기업 부담을 감안해 현재 생산 중인 부품에 한해서는 스티커 부착 방식을 인정한다고 미국 측에 밝혔다. 또 미국 자동차 부품 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제도 시행도 오는 5월 21일까지 3개월간 유예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최근 발효 1년을 맞은 한미FTA는, 연간 2만 5000대 이하로 수입되는 미국산 완성차에 한해 미국 안전 기준을 준수했다고 인증 받았다면 한국 안전 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간주하는 '동등성 기준'을 적용토록 했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은 한미FTA 동등성 기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완성차에 적용되는 동등성 기준을 임의로 유권 해석해 자동차 부품에도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주선 의원은 "완성차에 대해서만 동등성 기준을 적용키로 합의한 것을 한국 정부가 자의적으로 부품에까지 확대 해석했다"며 "이는 미국의 통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특히 이런 미국 측과 합의 과정을 국회와 국민에게 일절 알리지 않은 정부의 행태는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정부가 한미FTA 협정문을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운용하는 사례가 이 외에도 더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송기호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는 "정부가 FTA를 통해 미국과 합의하지 않은 제도나 정책은 국회의 통제를 받으며 시행해야 한다"며 "이번 자동차 부품 자기 인증제와 마찬가지로, 행정부가 미국 측 통상 압력에 굴복해 자의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정책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이 지난해 6월 한국 측에 예외를 요구한 것에 대해 "미국에 대한 한국산 자동차 부품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상쇄하기 위해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부는 미국산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 자기 인증제 예외를 적용한 데 대한 법적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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