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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 대표자회의, '문제는 경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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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 당 대표자회의, '문제는 경제야'"

[한반도 브리핑] '선군정치'에서 '강성대국'으로 가는 문

북한의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가 임박했다. 북한은 지난 6월 노동당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9월 상순 당 대표자회 소집을 공고했다. 북한에서 상순은 1일부터 15일까지임을 감안할 때 대표자회의는 늦어도 15일에는 열릴 것이다. 이번 대표자회의는 1966년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 열린 제2차 회의 이후 약 44년 만에 열리는 것으로, 북한의 미래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에도 매우 심대한 의미와 파장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주류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후계자 구도 수립이 이번 회의를 여는 핵심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재 70세인 김정일의 나이와 유일지도체제라는 북한의 독특한 통치 구조를 고려할 때 김정일 이후의 후계 체제는 북한 국가 차원에서 중대한 일이다. 따라서 이번 대표자회가 1958년, 1966년에 이어 3번째지만 1980년 제6차 당 대회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중앙 차원의 당 회의라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안건이다.

그러나 북한을 둘러싼 외부적 변화와 그에 대한 북한의 대응, 또 그동안의 김정일의 행보와 북한 당국의 발표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번 대표자회의는 직접적으로 후계 구도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북한이 목표로 하고 있는 '강성대국' 건설에 맞추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 위기에서 투자 위기 문제로 전환

북한의 당 규약 제30조에 따르면 "당 대표자회에서는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긴급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며,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 또는 준후보위원을 제명하고 그 결원을 보선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 "당 중앙위원회가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당 대표자회를 소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어, 이번 당 대표자회의는 1980년 10월 10~14일 열린 제6차 당대회 이후 열리는 것으로, 앞으로 열릴 제7차 당대회에 대비한 일종의 사전 조율 및 준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당 대표자회의의 성격인데, 당 규약대로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 전술에 관한 긴급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하고 당 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 준후보위원을 제명하거나 보선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인원 충족 문제는 제6차 당대회 이후 30년 동안 공식적으로는 최고지도기관 선거가 없었음을 감안(당시 선출된 당 중앙위원 145명 가운데 77명이 사망 또는 해임되었고 지금은 68명만 남았다. 그나마도 대부분 70~80대의 고령으로 사실상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했을 때, 매우 절박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더욱 중요한 토의·결정 내용은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것이다. 무엇이 긴급한 문제일까? 6월 30일자 <로동신문>은 "조선노동당의 영도는 선군혁명의 생명선이며 민족만대의 번영을 위한 근본담보"라면서 "이번 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혁명과 건설에 대한 당의 영도가 더욱 확고히 보장되고 우리의 강성대국 건설에서는 보다 큰 비약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결국 긴급한 문제는 '강성대국 건설'인 것이다.

북한은 강성대국을 건설하기위해서 3가지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고 한다. 그 고지는 사상·정치, 군사, 경제인데 북한 당국은 이미 사상·정치, 군사의 고지는 점령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경제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는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고난의 행군'이란 용어가 말해주듯 매우 열악하고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자립 노선을 고집한 북한은 만성적인 안보 위기(security crisis)와 투자 위기(investment crisis)를 안고 왔는데 소련으로부터 석유와 코스탄과 등 경제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데 필수적인 원자재가 끊기면서 경제의 추락은 가속화되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라는 일종의 비상체계를 가동시켜 안보 위기를 우선 해결하려고 했다. 따라서 경제, 특히 식량과 관련된 민수 분야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생필품과 관련된 민수 경제에 대한 북한 당국의 투자가 극소화되자 시장이 자생적으로 생기기 시작했고, 많은 주민들은 그것을 통해 생필품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원래 노동당은 정치를 비롯한 모든 생활을 규제하는 최고 지위의 권력 중추다. 북한 헌법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못 박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내각, 국방위원회 등 국가 기구도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의 집행자역할을 하는 하위 기구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선군정치라는 비상체계 속에서 노동당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었다. 선군정치의 최종 목적은 선군정치의 완성과 실현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당을 정상적으로 작동시켜 당을 통해 자신들의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목표를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서 보다 구체적인 '강성대국' 건설로 책정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이 노동당의 정상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선군정치라는 비상체계를 일정하게 마무리하거나 개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선군정치가 안보 위기와 투자 위기로 야기되었다는 사실에 미루어 볼 때, 안보 위기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한 북한이 주력할 것은 경제, 구체적으로 경제 성장에 필요한 투자 문제이다.

▲ 북한의 조선중앙TV는 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관련한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지난 8월 29일 하얼빈전기그룹을 방문한 김 위원장이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경제 합리화·정상화 넘어 '급속한 성장'으로

북한은 2002년 실시된 7.1 조치 이후 경제의 정상화를 조심스럽게 추구해왔다. 북한에서 나온 자료들을 분석해 보았을 때 북한에서 경제의 정상화란 크게 두 가지로 보이는데 계획의 정상화(normalization)와 합리화(rationalization)이다. 계획의 정상화란 공공공급체제(public distribution system)를 재개한다는 의미이며, 합리화란 독립채산제와 계획의 지방 분권화를 적절히 활용해 계획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강성대국은 경제의 정상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강성대국에는 경제의 급속한 성장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의 자본 유입이 불가피하다. 북한은 이를 위해 1990년대 초반부터 나진·선봉지역을 경제특구를 선정하는 등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제재가 계속되는 한 북한의 노력은 뚜렷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북한에서 해외직접투자(FDI)와 같은 외국의 투자를 담당하는 기관은 대풍그룹으로 이미 2005년부터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풍그룹의 활동 대상에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적대적 국가들도 포함하고 있었다. 대풍그룹이 투자처를 처음부터 다양화하려했던 이유는 중국에 의존도를 가능하면 줄이면서 자립 노선을 유지하려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풍그룹의 의도는 북한에 대해 더욱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약해졌으며, 천안함 사태로 완전히 침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북한은 강성대국 건설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의 많은 부분을 중국에 의지하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8월 말 방중 기간 항일 유적지와 함께 창춘, 지린, 투먼 등 이른바 '창지투(長吉圖) 개발·개방 선도구'의 산업시설들을 시찰했다. 북·중간에는 지난해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에서 이미 북한 신의주 개발을 포함하는 '연해경제벨트경제권'과 및 '창지투 선도구'와 관련한 합의가 이루어져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중국의 나진항 진출 등이 시간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논의가 있었으며, 그 후 7월말 양국간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이 맺어졌는가 하면 후정웨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이끄는 고위급 대표단이 방북해 협의를 진전시키기도 했다.

양국 정상이 공식적으로 나눈 대화에서도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협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후 주석은 "중국은 북한의 안정 유지, 경제 발전, 민생 개선을 위해 취한 조치에 대해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했다"면서도 "경제 발전은 자력갱생도 있지만 대외 협력도 필요하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고 국가 발전을 가속화하는 필연적인 경로이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개혁·개방 후 중국은 신속한 발전을 했으며 곳곳에서 왕성한 활기가 넘쳤다. 나는 이 역사 과정의 증인이다"고 적극적으로 화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북한은 현재 경제 발전, 민생 개선에 힘을 가하며 중국과 교류·협력을 강화할 것을 희망한다"고 말해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본격화·가속화 할 것임을 기정사실화했다.

또한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는 당에서 태종수, 장성택, 김양건(대풍국제투자그룹 이사장) 부장 등 경제 분야 관계자들과 북·중 접경지역 도당 책임비서인 최용해(함남), 김평해(평북), 박도춘(자강) 등이 배석했다. 중국 측은 경제 계획 책임자인 장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과 천더밍 상무부장이 배석해 경제 협력이 주요한 의제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의 의미는 2일 <노동신문> 사설에 잘 나타나 있다. 사설은 이번 중국 방문이 "사회주의건 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조·중 두 당, 두 나라 인민의 성스러운 투쟁을 힘 있게 추동하는 획기적인 사변으로서 두 나라 인민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고무를 안겨주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설은 이어 "우리 인민은 새로운 신심과 낙관에 넘쳐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총진군을 힘차게 다그치고 있다"면서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탄생 100돌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제끼려는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웅대한 구상은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당 대표자회의에서 다루어질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긴급한 문제들"이 경제에 관련된 것이고 이것은 노동당의 정상화임을 간접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는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입구(gateway)와 같은 지형적인 특성을 갖고 있으며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늘 교차하는 곳이다. 60년이 넘게 따로 살아온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서로의 경제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평화체제를 이루고 공생해야 한다.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로 38선이 휴전선으로, 즉 전쟁을 잠시 중지하는 분단의 선으로 남는다면 대륙과 해양 세력을 이어주기는커녕 갈등을 부추기고 분쟁을 조장하는 선이 될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과 북 모두에 가게 될 것이다.

맹방을 위시로 한 동맹 강화, 편 가르기 정책과 대북 대결·적대시 정책은 북한이 더욱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낳아버렸다. 그리고 휴전선을 이제 신 냉전 체제의 두 세력이 나누어지고 대결하는 국제적 갈등의 선이 되려고 한다. 더 늦기 전 평화와 공생이 대북정책의 기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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