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는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에 이은 또 하나의 '천안함 외교' 무대로 ARF 의장성명에 천안함 관련 문구가 어떻게 들어갈지가 관심이었다. 결과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지지"로 마무리됨으로써 남북 모두 겉으로는 불만이 없게 됐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자체에 치명적 약점이 있고 '규탄' 표현은 아예 빠지게 돼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보기에 안보리 의장성명보다 후퇴한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지 못한 또 한 번의 '외교 실패'로 기록될 전망이다.
▲ ARF에 참석한 박의춘 북한 외상(가운데) ⓒ로이터=뉴시스 |
ARF 의장성명은 한반도 문제를 다룬 8항에서 "2010년 3월 26일 공격으로 초래된 대한민국 함정 천안함의 침몰에 '깊은 우려(deep concern)'를 표명"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이 사건에 따른 인명 손실에 대해 애도를 표하였다"고 밝혔다.
8항은 이어 "장관들은 한반도와 지역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련 당사국들이 모든 분쟁을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할 것으로 촉구했다"며 "이런 맥락에서 장관들은 7월 9일 발표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의장성명은 또 9항에서 북핵 문제와 6자회담 문제를 언급, "장관들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고 당사국들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권고하였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오자 남북은 각자 자기들의 외교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이번 ARF 의장성명에 대해서도 역시 남북은 '외교전 성공'이란 평가를 내리는 게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은 천안함 사건을 '공격'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그 공격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정부는 성명의 전체 맥락으로 볼 때 북한에 의한 공격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았다고 강변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졌다.
따라서 그런 결정적인 약점을 가진 안보리 의장성명을 ARF 무대에서 다시 한 번 공인받았다고 한들 한국 외교의 승리라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는 들어있던 '규탄'이라는 표현이 이번 ARF 의장성명에는 빠졌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울러 ARF 의장성명이 "모든 분쟁을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한 것은 25일부터 동해에서 열리는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이 훈련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권고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위반'이란 입장을 밝혀 왔는데, 그와 유사한 입장이 ARF 의장성명에 들어간 것이다.
또한 ARF 의장성명이 9항에서 6자회담 복귀를 권고한 것도 한·미의 현재 입장과 충돌한다. 한·미 외교장관들은 지난 21일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6자회담 재개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최근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데, ARF 의장성명은 북한 쪽 입장에 가깝다.
이같의 의장성명이 나오자 북한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북한 대표단 일원으로 ARF에 온 북한 외무성의 한 관리는 의장성명의 천안함 관련 부분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25일 전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이번 의장성명은 북한의 도발과 공격을 규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무력 사용을 하지 말라는 충분한 메시지가 담겼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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