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 전문가이자 평화학의 권위자인 박한식 미 조지아대(UGA) 석좌교수는 현 상황에 천안함 해법이나 출구는 없다며 이제 천안함 이후의 한반도 평화를 논하자고 제안했다.
박한식 교수는 13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장관도, 청와대 수석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천안함 사건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말한 것은 마지막 카드를 쓴 것"이었다며 "천안함 출구는 이 대통령이 직접 막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50여 차례 방북했고 최근에는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 다녀온 박 교수는 북한 인사들은 자신들이 천안함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철저히 믿고 있다면서 "천안함의 진상은 역사가 규명하거나, 몇 가지의 시나리오만 있는 채로 묻힐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 박한식 조지아대학교 석좌교수 ⓒ연합뉴스 |
박 교수는 지난 10일 나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천안함 의장성명을 언급하며 "양쪽 모두 받아들일 수 있게 돼 있는 마스터피스라(최고의 작품)고 생각한다"며 그것을 지렛대로 남북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측에서 그 정도(의장성명이)면 그냥 넘어갈 수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의장성명이 나온 후 실제로 북한이 6자회담을 거론하고 나온 점을 들었다.
그는 또 "북측 인사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정상화를 원하고 있으며 남북간 정부·비정부 교류를 천안함 이전으로 돌리길 원한다고 했다"면서 "그들에게 남북 정상회담 의사를 물었더니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나 유엔 안보리 제재가 없으면 가만히 있겠다(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북측은 실무회담, 장관급 회담부터 단계적으로 한 뒤에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남측 지인들에게 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위에서 만나서 한꺼번에 풀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정상회담이 마지막 과정이 될지 첫 과정이 될지를 포함해서 어쨌든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일 사후에도 북한체제 붕괴 안할 것"
박한식 교수는 남측 보수진영에 만연해 있는 북한 붕괴론적 시각에 대해 "북한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박 교수는 "북한은 개인을 우상화하는 나라, 세습 체제의 나라지만 김정일의 나라는 아니다. 김일성의 나라다"라면서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우리가 상상 못할 만큼 무거운 나라에서, 김정일 한 사람이 없어진다고 군사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논박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 혼자 모든 걸 결정하는 것 같지만 북한은 집단결정체제"라며 "지금 김 위원장이 사망한다고 가정해도 그 쇼크는 김일성 사망 때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평양에서 들은 얘기로는 김 위원장이 최근 이틀에 한 번 꼴로 현지 시찰을 다닌다", "러시아에서 온 이들은 적어도 10년은 간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하는 등 김정일 건강이상설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은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 내일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 전문가들은 많지만, 북한을 진짜 이해하려면 북한의 정신 문화와 권력 구조를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왜 그리 한 사람의 건강에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박한식 교수는 지난 4월 1일 미국의 흑인 명문대학 모어하우스대학으로부터 한반도 평화 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간디.킹.이케다 평화상'(Gandhi, King, Ikeda Community Builder's Prize)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
"이질성 클수록 평화 잠재성도 크다"
박 교수는 지난해 7월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 여기자 석방 당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을 비롯해 1994년 1차 북핵 위기, 2003년 2차 북핵 위기 때에도 북·미간 교량역할을 한 공로로 지난 4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강연회에서도 박 교수는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00년 동안 인류의 질서를 유지해 온 것은 안보·주종(主從)·힘·통솔의 질서였지만 이제 완전히 낡을 대로 낡았다"면서 "이제 '피스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역사를 지탱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평화는 다양성, 즉 이질성을 수용하는 조화에서 가능하다"면서 "이질성이 클수록 평화의 잠재성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남과 북이 이렇게 이질적 사회가 된 것은 평화를 위해 긍정적 발전"이라면서 "평화의 안경을 쓰고 보면 이질적인 남과 북도 보완관계로 보이지 경쟁관계나 적대관계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또 남북을 체제·헌법·경제의 발전 정도와 같은 '양'의 측면이 아니라 사람과 가치관 등 '질'의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개인과 자유를 중시하는 남측과 집단과 평등을 중시하는 북측이 서로의 가치관에서 보완할 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질성을 인정하면서 같이 살아 보고, 그 과정에서 더 높은 차원의 동질성이 생기면 그때 통일하자는 것이 6·15 공동선언이었다"면서 남북의 역사 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이벤트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기·질투 없이 서로를 인정한 다음에야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컨센서스가 가능하다"며 "오랜 시간을 두고 남북이 서로의 이질성을 수용하고 동질성을 만들어 가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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